설교모음(Korean sermons)

잘 마치는 인생이 되려면( 시90:9-17)

호걸영웅 2014. 9. 4. 00:49

잘 마치는 인생이 되려면( 90:9-17)

 

[] 90: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90:11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 90: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 90:14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 90:15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 90:16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 90: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서론)1. 오늘은 모세의 시편을 통하여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고 보람 있게 맞는 자가 될까를 생각하면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2. 미드라쉬라는 유대의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왕 다윗이 보석 세공인에게 반지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감정을 조절할 수 있고, 동시에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내게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보석 세공인은 여러 날 고민했지만 어떤 글을 넣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아 여러 날 고민했습니다. 고민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 당시 지혜롭기로 소문난 다윗의 왕자 솔로몬을 찾아갔습니다. 솔로몬은 웃으면서 보석 세공인에게 이 한마디 글을 새겨 넣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글귀가 무엇이었을까요?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이 문구는 문장만 다르지 솔로몬의 전도서에 나오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면 굉장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당하고 있든지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을 한다면 교만할 수도 절망할 수도 낙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이 말씀 하나가 다윗을 온전케 하고, 또 우리들까지 영적으로 강건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그런 맥락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 때 이렇게 말합시다. 함께 따라서 합시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3. 오늘 본문에도 그와 같이 지혜로운 말씀 나타납니다. 본문에 모세는 “날 수를 계수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 가운데는 속히 지나가는 인생 허송세월 보내지 않고 매일매일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신약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예수님 만난 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주님 앞에서 받을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소망 중에 기다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의 지난 삶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정말 값진 날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날 수가 진정 얼마나 될까요? 나아가 우리의 생을 다 마치고 죽음 앞에 서 있을 때 그간 얼마나 값진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잘 마치는 인생이 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1.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9절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라고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모세를 봅니다.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말씀이겠지요? 우리 일생이 하나님 자녀다운 생활한 번 못해보고 온갖 연단만 받다가, 아니 좋은 말로해서 연단이지, 바로 말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은 없이 징계의 채찍만 받다가 끝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

 

모세는 본문 13-15절에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도 기쁘시고 우리도 기뻐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모세는 여호와께서 돌아와 주십사 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이 불신앙으로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기에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떠나시면 참 기쁨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광야 40년이 세월 얼마나 아쉬운 세월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이 믿음이 있었다면 40년의 세월,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세월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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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방황하다 죽어가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애굽을 나온 수백만의 자기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불신과 반역으로 광야에서 다 죽고 2세 백성만 데리고 요단 강 앞에까지 이르렀을 때 모세의 마음 얼마나 허탈하고 안타깝고 죄송하고 심적 고통이 컸겠습니까? 그래서 죄 중에서 가장 큰 죄가 믿음 없는 죄입니다.

 

신약 본문7절에서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어떠한 장소나 환경에 구애를 받지 않고 그가 받은 사명을 감당하고 믿음을 지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온갖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을 번 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심지어는 아무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혔지만 거기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차디찬 감옥 속에서 내가 육체적으로는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지만 나는 믿음을 지키므로 이제 후로는 나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자신 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쓰고 있습니까? 자기의 명예와 재산을 지키느라고 얼마나 머리를 쓰고 있습니까? 그러나 정말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내게 참 기쁨이 없음을 알고 남은 생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2.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뒤 사명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치 않으려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기 위해 애굽의 바로 왕을 대항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쫓아오는 애굽의 군사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불신앙의 동족들과 싸워야 했고, 대적하는 아멜렉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사명을 따라 선한 싸움을 잘 마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 본문 7절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생애는 일평생 싸우는 생애요 날마다 사선을 넘는 삶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선한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에베소서 6: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 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멋있게 승리하였습니다.

 

이러한 승리가 있었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을 하였습니다. 정말 앞장서 간 훌륭한 신앙의 사람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처절한 문제인 것으로 알고 때로는 생명을 내걸고 싸웠습니다. 이러한 피나는 싸움에서 기어이 승리하고 이제 후로는 나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경주 장에서 달려가는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들도 이렇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얼마나 싸웠습니까? 어떠한 자세로 싸움에 임하였습니까? 우리의 원수 마귀는 영리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마귀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싸워 이기려고 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대충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생명을 걸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길뿐임을 알면서도 우리가 얼마나 기도의 무릎을 꿇었으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하였습니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적인 나와의 싸움에서 얼마나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습니까?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단언하였지만 저부터도 날마다 죽기는커녕 혈기나 부리고 육신의 편안함만을 위하여 살아온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다. 그리고 우리의 힘은 약하나 하나님의 힘의 능력으로 악의 영들과의 싸움에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기를 우리의 대장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인내로 끝까지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앞까지 인도하여 오기까지 참 우여 곡절이 많았습니다. 믿음 없는 완악한 백성들의 공격을 받아 때로 돌을 들어 치려고 했을 때도 참았습니다. 시내 산에서 40일간 말씀을 받아 내려왔을 때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고 하는 한심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그래도 인내하며 목숨 건 기도로 백성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져냈습니다. 다시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백성들을 선동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참아야 했습니다. 그는 120세 되는 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비록 약속의 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그 땅을 소망 중에 바라보면서 자기를 이어 그 땅으로 인도할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는 사명까지 감당하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 본문 7절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가는 경주자의 생애였습니다. 마치 마라톤 경주자가 정하여진 코스를 다 달려서 결승테이프를 끊은 것처럼 바울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 중에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처럼 위대한 말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통쾌한 승리의 선언을 통하여 우리들이 죄 사함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다 닦아 놓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경주 장에서 달려가는 경주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경주도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입니다. 단판 승부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끝까지 달려가는 인내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칠전팔기"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금년 한해도 믿음의 경주 장에서 달려오면서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경주하는 경기는 장거리 마라톤 같은 경기에다 또한 장애물 경기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거리 경주하는 것만도 피곤한 일인데 거기에 사단이 만들어 놓은 장애물까지 겹쳤으니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러기에 우리들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의 경주 장에서 달음박질 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베드로가 바다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어갔을 때에는 물위로 걸어갔습니다만 파도가 이는 바다물결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물속에 빠져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장애물이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 바라보고 인내로 달려갈 길을 마쳐야 승리자가 될 수 있고,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12:2-3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오직 주님 바라보면서 인내로 달려 갈 길을 다 마치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4.끝으로 잘 마치려면 좋은 비전을 가지고 끝까지 힘써야 합니다.

 

모세는 구약 본문 16-17절에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자손들에게 나타나고 우리 손의 행한 일이 헛되지 않고 견고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상급이 되고 면류관이 되고 영원한 찬송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모세나 바울처럼 끝까지 힘써야 합니다.

 

신약 본문 6-8절을 보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바울 사도의 최후 간증을 들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바울 사도의 황혼을 말해주는 산 고백입니다.

 

 하루해가 아침과 낮이 있으면 반드시 저녁 황혼이 오는 것입니다. 일 년의 계절이 봄과 여름이 지나가면 반드시 가을, 겨울이 오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일생도 청년과 장년기가 지나가면 반드시 노년기, 인생의 후반이 오는 것입니다. 청소년기가 인생의 시작인 아침이요 봄이라고 한다면 노년기는 인생의 마침이 되는 저녁과 가을, 겨울이라고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번 아들이 근무하는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면서 썬쎗 광광 코스가 있었는데 석양 저녁노을이 정말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인생의 노년도 주님 안에서는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일 년의 계절가운데 봄과 여름도 모두 아름답지만 가을의 풍요가 주는 아름다움은 좀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의 눈으로 덮인 순백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은 "관제(灌祭)와 같이 벌써 나의 부음이 되어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고 했습니다. 관제(灌祭)는 피를 제단 위에 부어 드리는 제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피를 하나님의 제단 앞에 부어 드리는 제물이 기꺼이 되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는 이미 그리스도 앞에 땀과 눈물을 모두 바쳤습니다. 이젠 나머지 피까지 바치리라고 하는 비장한 결심입니다. 바울 사도의 후반이야말로 장엄합니다. 순결합니다. 흠모할 만한 인격이 있습니다. 겸손합니다. 하늘 소망으로 넘칩니다. 아름답습니다. 아주 거룩합니다. 바울 사도의 노후는 결코 늙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서는 늙음을 볼 수가 없습니다. 늙어서는 아니 됩니다. 생각이 늙어 버리고 용기가 늙어 버리고, 활동이 늙어 버리고, 의욕이 늙어 버리고, 계획이 늙어 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에게는 오직 "성숙(成熟)"이 있어야 할 뿐입니다. 인생의 무르익은 경험의 과실을 따는 때가 인생 후반기여야 합니다.

 

사실 인생의 후반을 계속해서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면 늘 새로운 것을 내다보고 배워야 합니다. 흥미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처럼 뒤에 것을 잊고 앞을 향해서 전진하는데 전력을 다 해야 합니다. 바울의 후반은 휴식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만년 젊은이였습니다. 나이를 세지 마십시다. 연륜을 자랑하지 맙시다. 남은 때를 아껴서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기도하고, 선을 행하고, 할 수 있는 대로 교회 봉사에 믿음의 활동에 더 깊이 매진하는 성도가 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잘 마치는 인생이 되려면

1.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2.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인내로 끝까지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 끝으로 잘 마치려면 좋은 비전을 가지고 끝까지 힘써야 합니다. 할렐루야!

 

참고:호현낙선/편집:익선 08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