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신앙 (사 4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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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
[사] 40:28 |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
[사] 40:29 |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
[사] 40:30 |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
[사] 40:31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
우리는 가끔 비행기 사고에 대한 뉴스를 듣습니다. 사실 비행기 사고는 자동차 사고 보다 그 비율이 낮지만 사고의 치명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비행기 사고는 매우 두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행기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때는 비행기가 뜰 때와 착륙할 때라고 합니다. 조종사들은 ‘마의 11분’이라 하여 항공기 이륙 3분, 착륙 8분 전이 가장 위험하다고 합니다. 실제 항공 사고의 74%가 이 때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지상에서 이륙할 때 연료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고 합니다. 항력과 중력의 방해를 보다 강하게 받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머물러 있는 현실에서 탈피하여 비상하는 일은 매우 많은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각각 망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했지만, 해방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상황은 더욱 어둡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망 가운데 좌절하여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 소망을 불어넣었던 사람이 바로, 이사야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도 독수리처럼 비상해야 하는데, 우리를 세상에 묶어두려는 세상과 죄와 육신과 사탄의 방해가 그 못지 않게 강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믿음이 어떻게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는 믿음이 될 수 있을까요?
1. 현실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27절을 보면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라며 이사야는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모세도 호렙산 가시덤불 불꽃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시작하자마자 침체에 빠져버립니다. 강퍅한 바로 왕도 그렇고, 자기 백성들의 불신도 그렇지만, 더 문제는 자기의 무능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까”(출6:30) 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자신의 현실에 너무 집착한
까닥입니다.
심리학자 ‘맥스웰 말프’는 사람의 95%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환경의 악함과 자신의 부족이 비상치 못하는 믿음의 원인이 되지 못합니다.
독일의 ‘란게이이히바움’이라는 사람이 천재 78명을 조사해보았더니, 그 중 83%가 육체적, 정신적, 가족관계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세계 역사 상 유명세를 떨치던 인물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잔 다크, 대 조각가 미켈란젤로, 종교개혁가였던 루터, 수학자 파스칼, 과학자 뉴튼, 철학자 루소, 대문호 괴테, 음악가 바그너, 철권 통치자 비스마르크, 마리아 라이너 릴케 같은 시인 등 모두 약점이 있었습니다. 시인 바이런은 기형아였고, 줄리어스 시저는 간질병 환자였고, 베토벤은 청각 장애자였고,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습니다(155cm). 토스카니니는 눈이 안 좋았고, 모차르트는 폐병환자, 대통령 루스벨트는 소아마비였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는 말처럼, 긍정적인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알고 비상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보이는 것만을 문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음도 현실에만 매이면 하늘로 비상할 수 없습니다. 현실을 극복하려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한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고 깊이 알아야 합니다.
28-29절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알되 나와 관련하여 아시기 바랍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 그냥 능력자가 아니라 나의 능력자, 그냥 인도자가 아니라 나의 인도자, 이렇게 나와 관련시키면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이 생겨납니다.
부흥사 무디의 간증입니다.
“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믿음이 어느 날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뚝 떨어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도무지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 17절을 읽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온다.'는 말씀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까지 내가 성경을 덮어놓고 믿음을 위하여 기도했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내가 성경을 공부하는 동안 내 믿음이 줄곧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낙심은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한데서 온 것이요 성경을 가볍게 생각한 데서 온 것이요, 그것은 곧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1:1-3절은 말합니다
[시] 1:1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시] 1:2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시] 1:3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
또
[호] 6:1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
[호] 6:2 |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
[호] 6:3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고 깊이 알기를 힘쓰며 신앙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는 형통의 길이 열릴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30-31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새 힘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다이너마이트’처럼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자동차를 생산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자동차 시승식을 위해 온 나라의 국민과 관료들은 물론 대통령까지 참석하여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서 시승식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출발한 차가 300m도 가지 못해 '퍽퍽' 하더니 시동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당황할 때 기술자들이 자동차를 점검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우리 믿음도 성령의 동력이 없으면 기름 떨어진 차와 같습니다.
31절의 '앙망'이란 히브리어로 '카바'란 단어를 쓰고 있는데,이는’간절히 바라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함께 묶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상을 얼마나 갈망하면 생각 속에서 그 대상을 나와 함께 묶어버릴 정도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시42:1의 다윗의 고백처럼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중력과 죄악의 항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갈망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면 하나님의 은사와 선물과 좋은 모든 것을 함께 받을 줄 믿습니다.
13세기에 신학대전을 저술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평생 예수를 증거하는 글을 썼습니다. 어느 날 노년의 아퀴나스가 성전의 십자가 상 아래에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너는 나에 대해서 잘도 글을 썼더구나, 그런데 너는 무엇을 내게 원하느냐?'라고 하시더랍니다. 그 말에 아퀴나스는 '저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는 오직 당신뿐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대개 우리의 갈망은 기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이 됩니다.
과거,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에 ‘황중선 집사’란 분이 부대장으로 있을 때, 그분은 매일 새벽기도 나와서 두 시간을 쿠르드 족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부대의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라크가 얼마나 위험한 곳입니까? 아직도 그곳에서 테러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요?
그런데도 그 분이 부대장으로 있었던 1년 반 동안 아무 사고가 없었답니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지 한 달 만에, 쿠르드 족의 폭탄테러가 바로 그 부대 앞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서 30명이 죽었고 5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어서 그 부대에 장교 한 사람이 자살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기도의 차이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날, 21세기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정신분석학, 상담심리학에 더 공감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보다 정보의 기술의 통치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의 영향력이 커가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물질이 없어 망하였나요? 아니죠? 물질만능 사회는 곧 무너지고 마는 모래 위의 집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지상에 속하여 죄악과 절망과 슬픔 가운데 헤매고 있습니까? 현실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실만 바라보는 것은 불신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와 관련하여 더 깊이 알고 더 바로 알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갈망하므로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독수리처럼 힘차게 하늘 높이 비상하는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조; 축복은혜 기도원님/편집:익선 10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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