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목의 교훈 (신 10:1-5)
[신] 10:1 |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
[신] 10:2 |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
[신] 10:3 |
내가 싯딤나무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에 들고 산에 오르매 |
[신] 10:4 |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
[신] 10:5 |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
이 시간엔 “조각목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그 안에 십계명 돌 판을 넣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물건 중 하나가 “하나님의 법궤”인데, 조각목이 법궤를 만드는 재료였었으니 그 조각목이야말로 참으로 귀한 것에 쓰임을 받았다 할 수 있습니다. ‘조각목’이란 나무는 성막과 연관되어 출애굽기에만 26번이 나오고, 신명기에도 한 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막에서 아주 귀한 기구들인 법궤(출25:10), 떡상(25:23), 분향단(출30:1) 등 성전 안에 있는 기구들과 성전 밖에 있던 번제단(27:1)과 그들을 운반할 때 쓰는 채들을 모두 조각목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성전의 벽을 이루는 널판(26:15)과 띠(26:26), 사방의 기둥들(26:32), 휘장문의 기둥들(26:37)도 역시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박을 입히도록 하셨으니, 성막을 지을 때 사용된 모든 목재가 조각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전시대에 와서도 ‘백향목’도 귀히 쓰임 받았지만, 성전의 내용물이 되는 기구들은 역시
조각목이었다는 점에서, 백향목도 조각목을 능가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귀히 쓰신 조각목은 어떤 나무이며 어떤 교훈이 있는가에 대해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가) 사실 조각목은 쓸모가 별로 없는 나무였습니다.
출4:13에 모세는 말하기를“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자신을 낮추어 말하였습니다. 당시 모세는 사람인지 양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일에 묻혀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고귀한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시피 했지요.
조각목이 그렇습니다. 조각목은 나무로서 너무나 부족한 나무입니다. 개역성경에 조각목을 ‘싯딤나무’라고 했는데, 영어 성경(NIV)에서 '아카시아 나무'(acacia wood)라 했습니다. 이 나무는 다루기도 힘들고 그 목재자체가 울퉁불퉁 꾸불꾸불하여 바르지 않고 딱딱하다 보니, 목수들이 아주 다루기 싫어하는 나무임이 분명합니다.
광야에서 자라는 이 나무는 커 봐야 높이가 3m내외로서, 가지가 밑둥부터 여러 갈래 갈라져 있기 일수이고 잔가지와 가시가 많아 다루기 매우 어렵습니다. 잎은 지극히 작아 사료로 쓰기도 별로 좋지 않고 땔감으로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무가 하나님의 성막에 쓰일 성구의 재료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하나님이 쓰시는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쓸모 없는 죄인, 비뚤어질 때로 비뚤어진 내 인격, 성질머리? 나의 변덕스러움, 나의 탐욕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나를 부르시고, 나를 목재로 삼으시고, 나를 새롭게 하시고, 나를 다듬으시고, 나를 반듯하게 깎으시고, 금박을 입히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부족함을 알고 겸손하여 지고 우리 자신을 드리기 힘쓰면,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가 모나고 비뚤어져 있어도 귀하게 쓰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 하나님을 만나면 귀히 쓰임 받습니다.
조각목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가 이런 나쁜 땅에서 자랄 수 있는 이유는, 그 뿌리를 땅 속으로 깊이 내려 지하의 아주 작은 양의 수분도 빨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조각목은 지상의 건조함과 모래바람 등 혹독한 시련에 굴하지 않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뿌리를 깊이 내려 위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가 수십 미터에서 수백 미터까지 뻗어 내려간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골2:6-7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했듯이,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만난 테러리스트요 핍박자였던 바울을 귀히 쓰셨습니다. 욥도 하나님을 만나고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가장 귀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다)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10:38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조각목이 그런 나무입니다. 싯딤나무는 못생겼고 쓸모도 없지만 오랜 세월 광야에서 연단을 받아 목질이 변형되지 않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평범한 환경에서 자란 보통 나무보다는 높은 산에서 온갖 시련을 견디고 자란 나무들을 취하여 예술품을 만듭니다. 조각목이 바로 그런 성질의 나무입니다.
성경에 조각목은 皂角木(검을조, 뿔각, 나무목)이란 한자를 씁니다. 검은 뿔 같은 나무라는 것이죠. 물소 뿔처럼 강한 나무입니다. 작지만 변형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귀하게 쓰인 것입니다. 참된 성도들은 이처럼 어떤 고난 속에서도 변질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는 그런 사람들의 믿음이 여러 번 기록돼 있습니다.
다니엘처럼 사자 굴에 던져진다 해도 감사와 기도를 쉬지 않는 믿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처럼 용광로에 들어간다 해도 변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던 믿음, 죽으면 죽으리라며 왕 앞에 나아갔던 에스더 왕비와 같은 믿음!
우리가 주여! 주여! 한다고 그저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불 시험을 통과하고 물 시험을 잘 통과하여야만 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처럼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십자가라도 기꺼이 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라) 겸손하게 드려질 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입습니다.
조각목은 그 자체로만 그냥 사용한 된 것이 아닙니다. 출37:15에 "또 조각목으로 상 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조각목은 금으로 온전히 감추어 주십니다. 요즘 금값이 얼마나 비쌉니까?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길 힘쓸 줄 알아야 합니다.
[시] 91:14 |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
[시] 91:15 |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
[시] 91:16 |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했습니다. |
그런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핑계만 있으면 하나님에게서 도망 가려 하고, 쾌락을 좇아 달아나기 일수이지만 그래서는 참된 하늘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온전히 나 자신을 드릴 때라야 만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수 있습니다.
l 이런 신앙동화 하나 들려드리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옛날, 어느 중동지역에 올리브나무와 삼나무와 소나무 이 세 나무가 살았답니다. 올리브나무는 왕궁에서 사용되는 귀한 가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수가 다가와서는 올리브나무를 베어, 구유 통(가축의 여물통)을 만들었답니다. 그 올리브 나무는 너무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니 나를 하필이면! 지저분한 소나 나귀의 밥통을 만들다니! 왕궁에 멋진 난간이라도 되었어야지! 올리브나무의 꿈이 좌절되는 순간,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있는 마굿간에 젊은 부부 한 쌍이 들어섰습니다. 이들은 여관방을 구하지 못하여 마굿간에서 하룻밤을 지내려는 요셉과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가 해산하여 아기를 그 구유에 눕혔습니다. 그 아기는 누구셨을까요? 바로 예수님이셨어요. 구유가 된 그 올리브 나무는 이 세상의 어떤 임금보다 더욱 높으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잠자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어떤 삼나무 이야기입니다. 삼나무는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큰 군함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삼나무는 사람들로부터 베어져 조그만 고깃배가 되었습니다. 삼나무는 매일 어부들과 함께 바다로 나아가 비린내 나는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로 사람들이 모여 들더니, 예수님께서 그 배를 오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삼나무는 너무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 태우다니.."
그 삼나무는 세상에 어떤 해군보다 더 높고 위대하신 예수님을 태워드렸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소나무 이야기입니다. 소나무도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서, 사시사철 나의 푸르른 모습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 줄 거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더니 벼락이 꽝하고 내리쳐서, 하필이면 그 소나무에게 떨어졌답니다. 소나무는 깨지고 다치고 번개에 그을려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험상궂게 생긴 나무꾼이 도끼를 들고 다가오더니, "음~, 이 소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네. 불이나 피워야겠네."라고 하며, 나무꾼은 소나무를 잘라 질질 끌고 가더니, 헛간 한 구석에 꿍하고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렇게 된 소나무가 한숨을 쉬며 슬피 지내던 어느 날, 로마의 군병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군병 몇이 헛간으로 들어와 소나무를 실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소나무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어야만 할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는 십자가가 되었기에 너무도 슬퍼 울어야 했답니다. 그러나 삼일 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고, 그 십자가로 인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죄의 저주에서 구원을 얻고, 용기와 소망을 가졌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결국 자기의 꿈이 더욱 크게 이루어진 것을 보며 하나님께 큰 영광과 찬송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부족하고 조각목 같은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더 기뻐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힘써 드리는 여러분이 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여러분이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참으로 놀라운 영광에서 영광으로 축복하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 되기를 축원합니다!
참고: 축복 은혜 기도원/편집:익선 10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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