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사랑을 위한 조언 (잠15: 16-17)

호걸영웅 2015. 3. 11. 01:33

사랑을 위한 조언 (15: 16-17)

15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서론)

 

1. 인간이 태어나게 된 대개의 원인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 때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부부가 된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형제로서 살아가는 것도, 성도 간에 만나서 서로서로 알고 지내면서 서로 돕고 의지하는 것도 다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랑이 없이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사랑의 삶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법을 모르거나 훈련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살전 5 13절에 보면,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족관계든, 성도들 관계든, 이웃관계든 사랑이 넘쳐 흐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한 사랑의 공식 몇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 첫째, 함께하십시오.
아무리 우리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이 없다면 사랑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늘 생각합니다. 왜 결혼을 합니까? 전혀 모르던 사이가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면 같이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려워서 아쉬워하면서도 헤어집니다. 그러면 곧 전화를 합니다. 잘 들어갔어? 내 꿈 꿰? 등등의 연락을 주고 받습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질수록 함께 있고 싶어서 결국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생활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함께 있으려고 결혼했는데 함께 있지 못하면 사랑이 식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언어중의 가장 우선적인 것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있기 싫어졌다면 사랑이 식어졌다는 증거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서 2:25-30절에 보면, 바울이 에바브로 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에바브로 디도를 빌립보에 보내는 것은 바울이 사랑하는 동역자이면서도 빌립보 교인들 간절히 사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에바브로 디도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셔서 고쳐주셨기에, 빌립보교회에 빨리 보내서 빌립교회 성도들이 그를 보고 기뻐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에베브로 디도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에바브로 디도를 사랑하고, 에바브로 디도도 빌립보교인들을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에, 직접 만나 함께 하는 시간을 갖도록 바울은 에바브라 디도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기에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오심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다’라는 뜻이 임마누엘입니다.


)둘째, 스킨십을 하십시오.
사랑이 깊은 관계일수록 스킨십을 하게 되고 오래하게 됩니다. 사랑하거나 참으로 보고 싶은 가족이든지 친구든지 어떤 관계든지 만나면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할 때 보면 놓지를 못합니다.

 

사랑이 보통일 때는 포옹도 가볍고 짧습니다. 그러나 깊은 관계일수록 포옹의 시간이 길어집니다. 창세기33장에 보면 요셉이 형님 에서의 미움을 피하여 외삼촌 집에 가서 20년 동안 있다가 금의환향 하는 가운데 만났습니다. 이때 이들의 모습을 3-4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역시 밉기 한이 없던 동생이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니, 형답게 또 남자답게 안아주었다는 것이지요.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법입니다.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했기에 더욱 미운 법이지요?


창세기45장에 보면,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서 총리가 된 후에, 고국의 형님들이 양식 사러 왔을 때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됩니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는, 혼자 속절없는 눈물만 흘렸지만, 두 번째 왔을 때는 친동생 베냐민을 만나서는 얼마나 사랑하며 보고 싶었던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14-15).


창세기46장에서는 요셉이 식구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게 한 후에 올라가서 아버지 야곱을 만났을 때 같은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 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29)

마가복음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하신 말씀이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를 하실 때 보면 집 나간 아들이 방탕한 삶으로 가지고 간 재물 다 써버리고 돌아오는 아들을 본 아버지가 어떻게 했습니까?
20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사도행전20장에도 보면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에 보내어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해서 마지막 설교를 한 후에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할 때 장로들과 성도들이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크게 울었다: 했습니다. (36-38)

아동 발달 과정을 연구한 많은 보고서에 따르면, 육체적인 접촉을 전혀 갖지 않고 지낸 아이들보다는 안아 주거나 키스를 해 준 아이들이 훨씬 건강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손을 잡아 주거나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는 것도 사랑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족이나 성도들을 만나거든 꼬옥 포옹을 해주고 손을 잡아주면서 사랑함을 표현하기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가 큰 사랑을 느끼게 하십시오.

) 선물을 준비하십시오.
사랑의 언어 중의 하나가 선물입니다. 잠언 196절 말씀,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선물을 주기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물 받고 좋아하지 않을 사람 없습니다. 또 사랑하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를 평소에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선물도 크게 작용합니다. 사랑이 작은 사람에게도 때로는 선물이 큰 사랑으로 발전하게 합니다. 거기에서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넷째, 인정하십시오.
오랜만에 만나든 자주 만나든 사랑하는 관계라면 서로가 말을 건넵니다. 그런데 말을 건넬 때 참으로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인정하는 말을 하십시오. 요한복음 1 4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빌립을 만난 후에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이때 나다나엘이 이렇게 응수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다시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말하기를 ‘와서 보라’즉 ‘와 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다나엘이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시고는 나다나엘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인정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49)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인정하는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지금은 좀 어설프고 부족한 것이 많이 보이고 어리게 보인다 할지라도 미래를 보면서 보다 긍정적인 말로 그를 인정해주는 말을 함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믿음이 무엇으로 나타나는 것입니까? 우선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말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가리켜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을 극찬했습니다. 그리고 축복해 주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17-19).


마크 트웨인도 "나는 한 번 칭찬을 받으면 두 달간은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일 년에 여섯 번 칭찬을 받으면 일 년 동안 사랑의 그릇을 일정한 수준 유지하면서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의 감정을 말로 전달하고 싶으면 온유한 말을 써야 합니다. 사랑은 온유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것 보다 더 기분은 좋은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가족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고 크게 작용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진하고도 가장 질긴 운명, 바로 가족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고마움도 당연하게 넘겨버리고, 미안함도 대충 지나가버립니다. 가족이라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희생과 배려들, 가족이라서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았던 상처들, 그걸 알면서도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 있습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축복한다, 입니다. 가족이라서 더더욱 서로에게 인색했던 이런 말을 남들보다도 가족들에게 더 자주 더 많이 사용하도록 합시다.

)다섯째, 봉사하기에 힘쓰십시오.
마가복음21-5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어떤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에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주셨습 니다.
이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원하는 바를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알아서 섬겨준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그렇게도 애지중지 하며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목욕시켜 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좋은 의복과 음식을 먹이려는 봉사는 분명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봉사합니다. 어떤 것을 요구하더라도 다 들어줍니다. 하늘에 별이라도 따다 준다 합니다. 그러므로 섬기는 일에 힘 쓰시길 바랍니다.

 

결론)

잠언15: 17절에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입니다. 잠언171절의 아가페 쉬운 번역에서는

[] 17:1

마른 빵 한 조각만 있어도 화목한 것이, 먹을 것을 많이 차려 놓고 싸우는 집안보다 낫다- 고 했습니다.

겨울이 깊고 더욱 추울수록 우리는 더욱 사랑하기에 힘쓰십시다. 그러면 추위 즈음은 별것이 아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참고: 오세원 /편집: 익선 02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