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강해

정금 같은 믿음이 되자(욥 23: )

호걸영웅 2015. 3. 11. 01:45

정금 같은 믿음이 되자( 23: )

 

[] 23:1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 23:2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

[] 23: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 23:4

그 앞에서 호소하며 변백할 말을 입에 채우고

[] 23:5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리라

[] 23: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로 더불어 다투실까 아니라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 23:7

거기서는 정직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영히 벗어나리라

[] 23: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 23:9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23: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 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 23: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 23: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 23:15

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는구나

[] 23:16

하나님이 나로 낙심케 하시며 전능자가 나로 두렵게 하시나니

[] 23:17

이는 어두움으로 나를 끊지 아니하셨고 흑암으로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셨음이니라

 


서론)

1. 오늘도 22장은 살짝 건너 뜁니다. 그래도 대충 내용은 집고 넘어가야겠지요?

22장은 엘리바스의 세 번째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언급을 몇 개 짚어보면~

 

2. 하찮은 인간이 하나님께 끼치는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하다. 그럼에도 욥을 벌하심은 그 죄가 극악하기 때문이다 라 했고 , 욥의 죄를 추측하여 언급하였는데 5~11절입니다.

 

[] 22: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극하니라

[] 22:6

까닭없이 형제의 물건을 볼모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 22:7

갈한 자에게 물을 마시우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 22:8

권세 있는 자가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가 거기서 사는구나

[] 22:9

네가 과부를 공수로 돌아가게 하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 22:10

이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홀연히 너를 침범하며

[] 22:11

어두움이 너로 보지 못하게 하고 창수가 너를 덮느니라

그리하여 엘리바스는 욥을 권면하되,하나님과 화목하라 합니다.21.22절부터 28절 까지는 화목하면 받을 복을 열거합니다.

[] 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 22:22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 22:23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 22:24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 22: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 22: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 22:27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 22:28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했습니다.

 

                            

 본론)

1. 오늘 본문 23장은 엘리바스의 주장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욥은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또 의로운 사람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고난이 몰려왔고 그의 모든 소유와 가족들을 잃는 극히 절망적인 상황에 몰리면서 온 몸에는 극한 헌데를 앓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욥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 혹은 친구들에 대한 반항심? 혹은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소망이란 지극히 미미해 보입니다.

 

그래도 그 미미한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있음을 23장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만날 수만 있다면 속 시원하게 다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듣고 싶었지만,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께서 도무지 만나주지 않으십니다. (욥기 23:8-9)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욥이 하나님을 안 찾은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보려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습니다. 우리도 종종 그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답을 주시지 않는 것이죠. 이럴 때는 너무 너무 힘듭니다.

 

2. 이렇게 욥은 문제를 가지고 싸우지만 해답을 얻지 못하다가 결국 새로운 답을 찾게 됩니다.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그럼 욥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어떤 해답을 찾게 됩니까? )


) 하나님이 나의 가는 길을 아신다.

1. 사실 우리 인생은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한치 앞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내일 내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내 인생인데도 내가 모릅니다. 하물며 1년 뒤를, 10년 뒤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내가 가는 길을 모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세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2.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우리의 갈 길을 아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몇 천년 전부터 우리 인류 역사에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고, 어떤 경우에는 미래에 몇 백 년 후 아니, 몇 천년 후에 태어날 자에 대해 성경에 다 기록해 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어디서 태어날지, 처녀의 몸에서 날것이며 왜 태어날지, 어떤 사역을 할것인지? 또 어떻게 죽을지, 어떻게 부활 승천할지, 왜 그런 일이 생길런지 그리고 성령이 초대교회 부어질 것과 복음이 땅 끝 까지 잔해질 것 등등과 말세에 이 세상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다 알고 계시고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열심으로 일하신다는 등등의 말씀을 다 해놓으신 것입니다.

 

[] 45:20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한가지로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니라

[] 45:21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3. 때로 애매히 고난 받는다고 느껴질 때, 우린 욥과 같이 내 마음을 딴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만은 아셔! 라고 스스로 에게 말해 주시길 바랍니다. 온 천지에 단 한 분,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 나를 아신다, 내 진심, 내 참된 억울한 마음을 아신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십시오. 그럴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 그분이 나를 인도해 주신다.

 

[]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 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 40:4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내가 가야 할 길을 아시기만 하고 그냥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 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 길로 가는 길이 좋다 생각하고 그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앞을 다 보고 계신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그 길로 쭉 가면 앞에 위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십니다. 혹은 그 안전한 길이 빠른 길이 아니라 빙빙 둘러가는 더 더디고 어려운 길입니다. 광야 40년의 여정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지만, 우리가 가장 좋은 길로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욥은 그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 그분은 나를 연단하신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를 향한 특별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무슨 목적이 있을까? 우리의 신앙이 순금과 같은 신앙으로 변화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순금은 어떻게 만들어 질까? 원래 금광석에는 100% 금이 아니다. 어느 금광석에서는 금이 10%인 경우도 있고, 30%인 경우, 80~90%인 경우, 혹은 1%도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금광석을 가루처럼 갈아서 물에 흘리거나 뜨거운 용광로에 넣고 여러 번의 제련 과정을 거쳐 잡석을 걸러내야 합니다.  그러면 점점 불순물은 빠져나가고 순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번의 제련의 과정을 거쳐서 순금이 나오는 것이다.

 고대시대엔 일곱 번을 그렇게 반복을 해야 했습니다.


2.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은 잘 모르지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얼마나 모나고 미숙하고 인격은 부족하고, 신앙도 너무나 있는 듯 없는 듯 할 때가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끊임없이 다듬어서 또 다듬으셔서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향기가 그윽히 드러나는 그런 성도들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바로 연단인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힘들게 신앙생활 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개역) 고 오늘 본문 10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지금 당하고 있는 위기와 고통은 자기를 영화롭게 만드는 것이요, 자기를 복되게 하는 것이요, 영적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는 과정이라고 믿었습니다.

 

4. 대덕천 신부로 알려진 아쳐 토레이 박사는 중국 선교사로 일할 때 자동차 사고로 한쪽 팔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불행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토레이 박사는 6.25전쟁으로 팔다리를 잃은 많은 한국 청년들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1951년부터 의수족 사업을 하고 전도 사업을 하면서 한국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알고 1965년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을 설립하여 한국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가 한쪽 팔을 잃지 않았다면 그런 고귀한 일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내 뜻을 이루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더 기뻐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론)

 혹자는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캄캄한 밤중에 환한 아침을 준비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역경 가운데 있을 지라도 보이지 않게 일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나를 더욱 성결케 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뵐 수 있는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정금과 같은 순도 100%의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참조: 미션 & yourcrown/ 편집:익선 03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