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꽃을 피우라(욥 17: 1-16)
[욥] 17:1 |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
[욥] 17:2 |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
[욥] 17:3 |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
[욥] 17:4 |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
[욥] 17:5 |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 |
[욥] 17:6 |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
[욥] 17:7 |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
[욥] 17:8 |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
[욥] 17:9 |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
[욥] 17:10 |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
[욥] 17:11 |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
[욥] 17:12 |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
[욥] 17:13 |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
[욥] 17:14 |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
[욥] 17:15 |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
[욥] 17:16 |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
서론)
1.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종종 고난의 삶이 찾아옵니다.
사과 한 그루의 나무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 일 없이 비도 없고 바람도 없고 눈보라도 없다면? 참 좋을 것 같지요? 그러나 달콤하고 향기로운 사과를 맺으려면 이런 것들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뜨거운 뙤약볕도 추위와 비바람도 다 필요합니다. 우리는 역경이 찾아와도 역경을 뚫고 나갈 소망의 길이 항상 열려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싸우는 것입니다. 여름에는 더위와 싸우고 겨울에는 추위와 싸웁니다. 우리의 생명은 온갖 질병의 병균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모든 악이나 온갖 적과 싸워야 합니다.
2.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을 보면 절망과 희망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대체로 먼저 절망적인 사건이 있은 후에 희망이 예언되거나 희망을 주는 사건이 따르게 되는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네 자손이 창대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는 절망스럽고도 답답한 긴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절망이 유혹하는 긴 터널을
통과한 끝에 이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말할 수 없는 큰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에게 430년은 너무나 긴 절망의 시기였습니다. 또한 출 애굽을 하였지만,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까지 또다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광야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마침내 가나안을 차지하게 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엘리바스가 한 두 번째 공방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욥의 비참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더욱 가까이 이른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
본론)
가)죽음이 가까워 옴에 대한 절망
1. 그는 본문 1절에서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절망은 종말을 내다보는 망원경과 같습니다. 사무엘상 20장 3절에 보면, 다윗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절망 중에는 누구에게나 사망은 항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2. 오늘 본문에서 욥은 너무 심한 고통 속에서 이런 절망적인 말을 합니다.
“내 눈은 근심으로 하여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졌구나.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이 어두운데 가깝다 하는구나. 내 소망이 음부로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 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찐대 , 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는 무덤도 이젠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친족처럼 하나로 느껴지고, 구더기 조차도 자연스런 죽음의 일부요 내 육신을 도네션 받을? 인생의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욥의 깊은 절망감을 더욱 느낄 수 있겠지요?
2. 사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병들고 늙고 후패합니다. 후패한다는 것은 세포가 죽어가고 늙는다는 말이지요?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속 사람이 더욱 새로워지기 때문에” 육신의 눈은 흐려질 찌라도 영혼의 눈은 밝아지게 된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보톡스를 맞아서 겉으로는 젊어 보여도 속은 늙는 것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오장육부는 속일 수 없지요? 육신의 귀가 어두워지지만 신령한 귀는 더욱 분명해져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보이는 육신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혼만은 영원한 존재 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잠깐 사는 세상에서도 우리를 향하신 기대가 있으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살 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나)절망에서 소망을 볼 줄 알라
1. 우리의 인생길에는 크고 작은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옵니다. 때로는 해와 달과 별들도 보이지 않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이 덮칠 때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음할 때도 있습니다. 경제적 궁핍으로 힘들어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을 보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밤이 찾아오듯 누구에게나 새벽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기도 없이 맞이하는 새벽과, 기도로 씨름한 새벽은 야곱의 경우와 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2.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절망은 하나님을 찾으라는 싸인”이라고 보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무릎을 꿇으라는 싸인”입니다.
아침햇살이 비추이면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듯,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 절망은 희망이 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당신의 증인을 계시다
1. 오늘 본문에 보면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무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절망적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희망의 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3절입니다. 개역개정의 번역은 좀 물질적인 표현의 단어가 사용되어있지요? 그러나 새번역=“주님, 주님께서 친히 내 담보물(보증)이 되어 주십시오. 내 보증이 되실 분은 주님 밖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라고 간구합니다. 이 번역이 더욱 좋은 번역이라고 보입니다. 욥은 자신의 보증이 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절망 속에 피어난 한 송이 희망의 꽃이었습니다. 친구들도 그에게 소망이 될 수 없었고, 세상의 지혜도 그에게 기쁨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히10: 34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히] 10:34 |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
[히] 10:35 |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
[히] 10:36 |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
[히] 10:37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
[히] 10:38 |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히] 10:39 |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했습니다.
참고:(침륜: 아가페 쉬운 번역=멸망/kjv= perdition (죽은 후에) 영원히 계속되는 벌, 지옥에 떨어지는 벌) |
그러므로 절망 중에라도 그리스도를 붙잡기만 하면 소망의 꽃을 볼 줄 믿습니다.
2. 임마누엘 칸트는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자세히 보면 별 하나는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기도의 방석을 펴고, 믿음의 눈으로 자세히 벼랑을 살펴보십시오. 붙잡고 내려갈 나뭇가지나 돌 바위나 틈바구니가 보일 것입니다. 삶이 힘들수록 얍복 강가에서의 야곱처럼 하나님과 씨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소망의 빛을 보게 됩니다.
(EBS생존프로에서 보니, 영하 30도의 눈 쌓인 한겨울에 나무 밑 땅을 파니, 썩은 나뭇잎 더미 밑에서 굼벵이를 찾았고, 마 뿌리와 당귀를 찾아 먹음, 얼음물 밑에서 송어를 잡아먹을 수 있었음)
아무리 캄캄한 밤에도 희망의 별, 가능성의 별 하나쯤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결론)
내가 보증으로 삼고 있는 세상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러한 보증은 영원하지도 무한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물질이나 지위는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의지했던 가족과 친구도 언젠가는 제 곁을 떠나야만 합니다.
인생의 고난과 절망에서 면제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봄과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성령의 안위하심이 있습니다. 또 궁극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날, 주님은 이 세상의 모든 불공평을 깨뜨리고, 우리의 고통과 절망을 천국의 영광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유한하기에 우리에게 참 소망이 될 수 없고, 오르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만이 절망에서 피어나는 소망의 꽃이 되심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활이요, 영원한 생명 되시는 예수 안에서 언제나 승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참조: yourcrown /편집: 익선 0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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