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력하여 선을 이루다(롬8:28)
28절“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
여 선을 이루느니라.”
서론)
1. 미국 동남부에는 땅콩의 생산지로 이름난 앨라배마 주가 있습니다. 그 주의 한 마을에 가면 특이한 기념탑이 있는데, ‘목화를 갉아먹는 벌레’들을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 비문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대들은 우리에게 번영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또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고 하는 신념을 일으켜 주었다. 목화 벌레들이여,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대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별난 비문이죠? 목화의 해충인 벌레들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비를 세우다니요. 과거 앨라배마 주는 목화 생산지로 유명했습니다. 목화 재배 때가 되면 주변에 있는 많은 일꾼들이 앨라배마로 모이고 , 많은 흑인 노동자들이 가혹할 정도로 목화 농장에서 노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어디서 수많은 벌레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목화를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이 벌레들 때문에 그 해 농사는 완전히 망쳐서 목화 수확이 없었습니다. 목화 때문에 몰려왔던 일꾼들도 뿔뿔이 다른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해도 또 벌레들이 날아왔습니다. 역시 목화를 모두 갉아먹는 바람에 손도 쓰지 못하고 농사를 죄다 망쳐버렸습니다.
2년째 계속해서 흉작이 들자 주민들의 형편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병들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민심도 흉흉해져서 살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때 그 앨라배마 주의 목사와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를 하다가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서 로마서 8장 28절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백하기를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런 시련을 주셔서 2년째 계속하여 목화 벌레가 날아와서 목화를 다 갉아먹으므로 우리가 이제는 수입이 없어 헐벗고 굶주리고 처자들이 굶어 죽는 처지까지 이르렀으되, 이는 하나님이 합력하여 유익을 이루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참 좋은 하나님이시다. 현실적으로 눈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이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시련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자!”라고 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 마음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목화농사만 지으면 벌레들이 와서 먹어버리니 목화 대신에 이 넓은 땅에 땅콩을 심자는 아이디어입니다. 그래서 땅콩을 심기 시작하니 비옥한 땅에 땅콩이 엄청나게 잘되고 풍년이 들어 그들은 굉장히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나일론 실’이 발명되었습니다. 그러자 목화는 한 물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주들에서도 목화밭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 망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앨라배마 주에서는 땅콩 농사를 지어서 ‘땅콩 부자’들이 된 것입니다. (본론) 가)우리가 알거니와 1. 본문 28절의 “우리가 알거니와”에서 ‘안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오이다멘”이라는 단어로서, 경험적이며,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지혜로 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을 통해서 아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 말씀과 계시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알게 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모든 일에 반드시 선한 결과, 좋은 것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란 것입니다.
나)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1. 선을 이루게 하시는 그 대상은 누굽니까? 여기서 ‘선하다’는 말의 의미는 “아름답다, 보기에 좋다. 해피엔딩이다”(헬=아가쏘스)라는 의미입니다.
*28절에 보면,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부르심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선택됐다는 말은 곧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뜻을 따라 선택하십니다. 우리의 노력과 상관이 없습니다. 1)왜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섬기던 집안의 아브라함을 택하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2)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에서는 버리시고, 꾀 많고 사기꾼 같은 야곱을 택하셨는지? 3)우리는 왜 하나님이 여리고 성안에 똑똑한 사람들이 즐비한데 하필 기생인 ‘라합’만을 택하셔서 구원하셨는지 우리는 이해가 안됩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1)학급에서 반장으로 선택 받아도 기쁩니다. 2)국가 대표 선수가 되어도 영광입니다. 3)국민들에게 대통령으로 선택 받는다면 지극히 영광스런 일입니다. *하물며 내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부르심을 받았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영광스런 일이겠습니까? 너무도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감사하지요?
다)택하심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잘나고 특별해서 선택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예수님의 수 제자였던 베드로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오히려 실수를 더 많이 하고 성급하고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2)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는 어떻습니까? 오죽 악한 강도 짓을 했으면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합니까? 그런데도 구원을 얻었습니다. 3)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어떻습니까? 그는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며 살았던, 부정한 여자들 중에 부정한 여자였습니다. 4)바울은 어떻습니까?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구타하고 핍박하던 테러리스트?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일꾼과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오직 은혜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엡 2:8-9에서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아멘!!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믿음도 내가 노력해서 억지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기에 믿어지는 것입니다.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믿음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수원교도소에서 사형을 담당하던 한 직원이 예수를 믿게 된 간증을 했습니다. 자신은 사형수 들이 죽는 그 마지막 순간을 많이 보아왔다고 합니다. 1)감옥에서는 사형수들을 전도하는 선교회가 있는데, 거기서 전도를 받고, 그 악하던 사형수들이 회개하고 새 사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믿음을 갖게 된 것은 사형수들이 마지막 죽는 순간 때문이었답니다. 보통 아무 종교도 갖지 않은 독한 인성을 가진 불신자들은 국가와 법을 저주하고 악을 쓰고 이를 갈며 교수대에 오른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워서 오줌을 지리는 사람도 있고, 천주교를 믿는 사람도, 신부가 아무리 안심하라고 해도 막상 교수대의 밧줄을 보는 순간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은 벌벌 떨면서 스님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한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믿고 변화된 사형수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며 환한 표정을 지으며 “목사님! 먼저 갑니다. 천국에서 만나요.” 하면서 찬송을 부르며 죽는답니다. 그들이 죽기 전에 제일 많이 부르는 찬송이 305장으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고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렇게 흉악하던 죄수들이 찬송을 부르며 죽는 모습을 보면서, 아!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도 예수를 믿으면 저렇게 죽음 앞에서도 평안할 수 있겠구나, 구원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하나님께서 전혀 죄 없는 완전한 의인만을 부르셨다면, 여기 있는 우리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의의 수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본문에서“합력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서로 연관되어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모든 일들이 서로 맞물려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모든 일들 속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시고 미리 정하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 요셉의 경우를 보십시오. 요셉의 형들이 그를 질투하고 미워하여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상인이 있어 노예로 팔았습니다. 정말 우연히 그들을 만났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그를 애굽의 장군인 보디발의 집에 팔았습니다. 역시 우연이었을까요? 또 거기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다가 그만 감옥에 갇혀버립니다. 그것도 역시 우연이었을까요? 감옥 안에서는 어떻습니까? 왕의 곁에서 가까이 있었던 신하들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역시 우연한 일이었을까요? 거기서 요셉이 해몽을 잘 해 주어 훗날 바로 왕 앞에 서게 됩니다. 창 41:1절에 보니 그러기 직전에는 2년 동안을 그렇게 감옥에서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고 해석자를 찾지 못하자, 그제야 그 신하가 요셉을 기억하고 그를 불러내어 바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한 순간이 있기까지 어떻게 보면 요셉에겐 우연한 불행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바로의 꿈을 통해서 요셉을 이끌어 내시고 국무총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일들이 서로 합력한다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요셉이 당한 일들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이루기 위한 일들이었듯이, 오늘날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도 역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연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창50: 2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셉이 가로되“형님들이여!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화니 크로스비(Fanny J. Crosby)라고 하는 유명한 찬송 작곡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녀는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불멸의 업적을 남긴 분입니다. 그녀는 평생에 무려 9000 편의 찬송을 작곡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도 그녀의 곡이 무려 22편이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평소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나의 갈길 다 가도록,’/ ‘나의 생명 되신 주,’/‘오 놀라운 구세주,’/‘나의 영원하신 기업,’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등 주옥 같은 찬송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그녀가 맹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병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실수로 해서 그만 실명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만약 우리 같으면 그런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했을까요? 얼마나 좌절하고 하나님과 세상을 원망하고 불평하겠습니까? 앞도 못 보는 내 인생은 이제 끝장났다고 생각하고 날마다 신세를 한탄하며 자학하는 삶을 살았지 않겠어요? 물론 그녀도 처음에는 괴로워했겠지요.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불행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고난을 극복하여 주 예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간증은 이렇습니다. “나는 나의 눈이 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믿는다.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괴로운 조건 때문에 나는 오히려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게 되었고, 그리고 성전의 기둥으로서 주님 앞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처럼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셨기에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복음과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걱정 근심 무거운 짐도 많았고 몸도 맘도 연약했지만, 주님께서 날마다 새 힘을 주셔서 지금까지 사랑하며 살고 인내하며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더 위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이 걱정되십니까? 무슨 근심이 있으십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시고 두려움과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화를 복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멋진 인생 되게 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찬송하고 새 힘을 얻어, 영광에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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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박종태, 내 마음의 나침반/편집: 익선 03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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