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성령이 계십니다(롬8:26~28)

호걸영웅 2015. 7. 28. 04:21

성령이 계십니다(8:26~28)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서론)

 1. 9 1~19절에 보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체포하려는 사울이라는 청년과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인 다메섹(다마스커스)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던  "아나니아" 하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잠시 성경을 보겠습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고 했습니다.

 

 

오순절 이후, 아나니아 선지자는 매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느  예수 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부르셔서  “일어나 ‘직가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라는 이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니, 그는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전하 고, 그를 위해 기도하여 보이지 않던 눈을 치유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이미 아나니아라는 자가 사울을 찾아와 안수하여 눈을 보게 해 주리라는 계시를
  하나님께로 받았다 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가 직가 유다의 집을 찾았더니, 과연 거기에 예수의 말씀대로 청년 사울이 앞을 보지 못한 채 식음을 전폐하고 고통 중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고로 아나니아가 그에게 안수하며 말하길, “형제 사울아!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노라 “ 라고 하며 기도하였더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 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 지니라." 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바울 예수님의 성령 충만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2. 세상사람과 성도에게 다른 것 3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이 주인이시 것이고, 둘째는 예수로 인한 구원이 다는 것이며, 셋째는 성령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부분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며, 즐거운 인지요! 

 

사실 인간은 누구나 악하면서도 약합니다. 인간이 범죄하는 이유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악하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두 번째로는 약해서라고도 합니다.

 

 뉴저지에서 시무하는 윤 목사란 분이 그의 설교 중에 북한의 군부 서열 제2위의 현영철이 김정은 앞에서 졸다가 대공포로 총살된 사건을 이야기했는데, 그가 왜 졸았겠느냐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연 현영철이 정말 김정은을 우습게 보아서이냐? 졸지 말라는 명령을 몰라서냐? 둘 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영철 씨의 나이가 65세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졸린다는 것이지요. 연로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력이 약해져 이야기하다가다 졸고 설교 듣다가다 졸고 연속극 보다가 졸게 되는 것입니다. 30세의 김정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3.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로마군병들이 곧 들어 닥침을 미리 아신 상태에서 , 로마군인들 에게 곧 체포되실 것을 아신 상태에서 기도하실 때, 베드로와 요한 같은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부탁하십니다. 피눈물로 기도하던 예수님이 제자들이 있는 곳에 잠시 와보니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피로를 이기지 못해서이지요. 한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마26: 40~46에서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우리는 다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고 다 연약한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시라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실수하고 넘어지고 죄짓고 두려워하고 나약하여 집니다. 우리는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하는데, 늘 육신에 지고 감정에 지고 돈에 지고 인정에 무너지기 일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 강한 믿음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 여기 하나님의 비밀병기가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


본론)
)위로자 되시는 보혜사 성령. 

1. 14:26절에 "보혜사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했습니다.

  "보혜사" 영어로 "위로자라고 합니다. 영어엔 캄포덜 (Comforter)"이라고 발음하지요?  영어권에선 어린 젖먹이 아기를 달래기 위한 "고무 젖꼭지" " 캄포덜 "라고 합니다.   고무 젖꼭지를 물려주면은 젖먹이 아이는 곧 조용해지거나 잠이 들어버리고 맙니다.  성령은 바로 젖먹이들의 엄마 젖꼭지와 같은 역할을 하십니다
.

  또 영어권에서는 또한 "깃털 이불"이나 (오리 , 닭 털 침낭) 담요를 " 캄포덜 "라고 합니다.

 추운 겨울에 야영을 하는 군인들에게 침낭은 바로 생명과도 같은 것이지요.

 

   슬픔과 괴로운 일을 당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위로가 필요하고, 위로해 줄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때로 우리는 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나와 함께 하는 친구가 내 곁엔 아무도 안보이네! 라면서 외롭기 그지 없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외로워 마십시오. 여러분에겐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 성령님은 곧 예수의 영이십니다. 예수께선 제자들에게 마 28:20절에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고. 어떻게요?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지요.

2. 성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정확하게 짚어 주시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상처를 싸매 주시고, 위험할 때 보호해 주시고, 슬플  위로해 주시고, 갈 길을 보여주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어찌 위로가 아니겠습니까? 감옥 속에서도 위로자가 되시고 병중에서도, 전쟁터에서도, 고난 가운데와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 소망과 지혜와 위로를 주시고 새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을 새롭게 하시고 치유 하셨듯이 여러분의 모든 삶 속에 역사하시는 분이 곧,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시는 성령 하나님. 

1.8: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중보 기도를 받지 않을  없어요. 

태중에서는 어머니의 기도를, 어릴 때에는 부모의 기도를, 교회학교에서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기도를, 신앙생활에서는 기도 자들의 기도를, 교회 안에서는 목사의 축복기도를 받으면서 살아가지 않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는 성령님께서 우리 위하여 해주시는 기도입니다. 

 2.    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곧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3.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안요한 목사가 원래는 목사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미국에 취직하여 여봐라 하며 잘 살려고 했었지요?  미국에서 초청장도 받아 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멀어 직장을 잃고 아내는 떠나버립니다. 자살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엌 천장에 있는 못에 넥타이를 걸었습니다. 발 밑의 의자를 걷어차 밀어내고 공중에 휘익 매달립니다. 그런데 좀 있다가 못이 휘어지면서 땅 바닥에 떨어져 살게 됩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며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붙들어주리라!

그리고 안요한은 새 힘을 얻습니다. 집을 나섭니다.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그리고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신학공부의 뜻을 결국 이루어 목사가 되어 결국 맹인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분은 수술만 하면 앞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거절하고 맹인들을 열심히 돕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4. 조용기 목사를 세계적인 여의도 순복음교회 담임이 되도록 후원한 일등 공신이 바로 최자실 목사입니다. 그의 간증서를 보니, 최자실 목사도 한 때는 자살하려고 산에 들어가 약봉지를 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바람이 휙 불어오더니 그 약이 시냇물에 몽땅 빠지게 됩니다. 또 다시 다른 약봉지를 폈습니다. 그리고 그 약을 먹으려는데 또 바람이 휙 불더니 약봉지의 약이 시냇물 속으로 또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찬송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산속에서 부흥회를 하고 있었던 거지요. 거기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교회 다니다가 신학을 하고 조용기 목사를 만나 사위를 삼습니다. 여의도에 세계적인 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할렐루야! 

그녀를 살리시려는 성령님의 기도와 역사가 있었다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1. 성령의 역사에 대해 우리가 가장 곤란함을 느끼는 것은 성령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성령이라는 단어의 헬라어의 의미는 바람이란 뜻입니다. 프뉴마라는 단어입니다. 성령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눈엔 안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활동합니다. 토네이도를 보십시오. 자동차도 막 날아가고 집 수백 채의 집도 순식간에 박살이 납니다. 성령님도 그러하십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성령에 충만 하려 했느냐 입니다. 얼마나 기도하느냐입니다.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느냐입니다.

 

2. 다윗도 자기도 알지 못하는 중에 행여나 성령을 근심시키지나 않았나  염려했습니다. 

성령은 소멸하며, 근심시키는 자들을 떠나시기 때문입니다. 51:10-11절에 다윗은 

 "하나님이여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늘 기도 했습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도 성령님은 우리 곁에 반드시 계시며, 또 언제나 우리를 돕기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령님을 부인하고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치 않으면 성령님도 역사하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께서 마음의 문을 여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무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난 한 주간 성령님을 얼마나 내 삶에 초대하였는가?  죄의 짐이 무겁지 아니한가? 나는 얼마나 성령님을 기뻐하였는가? 성령께서 쓰시기엔 합당한 그릇이었는가? 말로는 하나님이 주님이라고 하였지만, 실제 내 삶 속에서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은 아니었나? 왜 나는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했는가? 스스로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내 힘으로만 뭔가를 하려고 하진 않았습니까? 우리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여야 합니다.  그분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그것이 곧 우리 삶을 능력있게 하는 길이요 승리의 길이 될 줄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이 말씀에 순종하기 힘쓰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참조: 박봉웅, 윤명호 /편집:익선 06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