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7층 집 (벧후1:3~11)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서론) 1. 옛날 미국의 어떤 믿음의 부부가 아들과 함께 서커스 구경을 갔습니다. 아주 어려운 시절인지라 큰 맘 먹지 않고는 갈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줄을 서서 표를 사려하는데 마침 줄 앞에 8명의 자녀를 데리고 와서 줄을 선 어느 흑인 가정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가정도 모처럼 온 가족이 서커스 구경을 왔는지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 당당히 서 있었고 자식들은 서커스 구경에 흥분해 있었습니다. 이제 순서가 되어 앞에 있는 그 가정의 남편이 표를 사려는데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돈이 모자란 것입니다. 남편은 입장권이 그렇게 비싼 줄 생각을 못한 것입니다. 그때 뒤에 서있던 믿음의 부부 남편이 눈치를 채고는 얼른 호주머니에서 20달러짜리를 꺼내 그 당황해 하는 아버지 앞에 가서 땅에서 줍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돈이 여기 떨어져 있군요. 선생님 돈을 이렇게 흘리시면 어쩝니까?” 하면서 그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때 앞에 선 흑인 아빠는 눈치를 챘습니다. 그러면서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하면서 손을 잡고는 아이들과 함께 표를 사가지고 그 서커스 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그 뒤에 섰던 믿음의 부부는 서커스 구경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서커스를 본 것 보다는 더 기뻤었답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이 참 믿음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사람을 향해 베푸는 은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우리 성도는 세상 사람과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예수님께서 들어와 계시기에 그렇습니다. 고로 주의 성령이 내속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속에 하나님이 거하고 예수님이 함께 하는데 어떻게 세상 사람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과는 생각도 달라야 하고 삶의 방식도, 가치관도 달라져야 합니다.
고로 믿는 성도들의 삶은 마치 건축물과도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집을 지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이죠? 기초를 닦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집을 지어 올립니다. 기둥을 만들고 벽을 쌓으면서 한 층 한 층 쌓아갑니다.
우리 성도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신앙 생활하는 것도 일종의 믿음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집을 지어야 할까요? 저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 성도는 7층짜리 믿음의 집,곧 7층 빌딩을 짓는 사람과 같다 고 보았습니다. (그럼 과연 7층짜리 믿음의 집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
3. 먼저는“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집입니다. 곧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고 했죠?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는데 이 약속은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신의 성품을 닮아가 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이렇습니다. 5절~7절을 보세요.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했습니다.
(믿음이라는 기초 위에 모두 칠층 집을 짓는 것입니다. 곧 믿음 기초 위에 덕-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우애-사랑을 쌓아 올립니다. 이것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론) 가)먼저 1층은 “덕(德)”입니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초요소입니다. 이 믿음 위에 덕을 세웁니다. 덕은 다른 사람의 약점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마치 보자기로 모든 것을 싸고 덮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말합니다. 삼국지에 의하면 유비가 관우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그런데도 형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가 왕손이기도 했지만 갖추고 있던 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비는 진실로 백성과 부하를 사랑하고 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덕은 지략과 용맹을 앞섭니다. 우리 믿음에 덕을 더하여 성숙한 믿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나)제 2층은 덕 위에 세운 지식(知識) 입니다. 덕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깨달아 알아야 제대로 된 순서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그러기에 이 지식은 이해되는 지식을 말합니다. 말씀이 이해되는 지식, 성경을 보다 더 잘 아는 지식을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은 있는데 덕이 없다면 그 지식은 마치 물렁뼈 없는 무릎 관절 같아서 삐걱거리며 심한 통증과 아픔을 유발할 뿐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또 부족하다면 이는 눈먼 소경이 향방을 모르고 마구 걸어가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단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작은 어려움이 찾아와도 쉽게 흔들려 신앙의 삶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바로 잘 배워 덕 위에 지식을 갖추고 살아야 합니다.
다)3층은 지식 위에 세운 절제(節制)입니다. 절제가 뭡니까? 이것은 “통제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지나침이나 부족함이 없이 적절히 조절되는 것을 말합니다. self-control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사람이 누굽니까?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또 절제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이것이 고장 나면 심각해집니다. 이게 고장 난 사람들이 누굽니까? 대개 중독자들입니다. 알코올 중독, 담배, 마약중독, 도박, 절도와 강도 등입니다. 자기가 통제가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고로 말과 행동에 있어서 절제의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라)4층은 절제 위에 세워진 인내(忍耐)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인내의 생활이 없이는 참된 절제의 생활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내가 무너지면 절제도 무너집니다. 그러기에 절제와 인내는 서로 돕는 동지와 친구입니다. 이 둘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경은 인내를 상당히 중요한 덕목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이 두 가지 모습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다 했습니다.
구약에서 이삭은 온유와 인내의 모범자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요셉은 인내로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욥도 인내로서 승리한 대표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내함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5층은 인내 위에 세워진 경건(敬虔) 입니다. 여러분! 경건이 뭡니까? “예의”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태도요 도리라고 하면 ‘경건’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지켜야 하는 태도요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경건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래서 딤전 4:7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했습니다. 이 말은 ‘경건’이라는 것은 단시간에 저절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애써서 땀 흘려 훈련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생활습관입니다. 날마다의 예배, 성경읽기, 기도, 봉사가 다 훈련입니다. 땀을 흘리며 거듭 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딤전 4:8에는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경건은 말로만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실천되어야만 합니다.
바)6층은 경건 위에 세워진 형제우애(兄弟友愛)입니다. 이 형제우애는 구약에는 "화목"이라고 번역되었던 말씀입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가정이란 조직사회를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 간에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화목입니다.
화음이 뭐지요? 악기가 연주될 때 한 가지 음만으로는 결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음들이 함께 어울릴 때, 그 음들이 조화를 이룰 때 정말 아름다운 합창이나 오케스트라 음악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 우애는 모든 것을 서로 아름답게 어울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넘칠 때 교회는 행복한 공동체가 됩니다.
사)마지막, 7층은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며, 성령의 열매 중에서도 가장 제일인 것이 사랑입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예수님 같아지는 단곕니다. 왜요? 사랑은 신앙의 결정체요 금강석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출발하여 사랑으로 결말을 짓는 것이 신앙생활의 과정입니다. 사랑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다른 것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사랑이 풍성하여 이를 감싸주면 무엇이든 충분히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4: 8에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했고, 골3: 14에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히 매는 띠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옷들이라도 사랑의 띠를 뗘야 단정하고 맵시가 납니다. 이 사랑은 세상을 이겨 나갈 힘이 됩니다.
결론) 믿음의 7층집은 무엇입니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집이 오늘 말씀대로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집으로 잘 지어짐으로써 하나님이 성품을 그대로 쏙 빼 닮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참조: 최일환/편집: 익선 04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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