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눅 9 : 57 – 62)

호걸영웅 2016. 3. 12. 00:40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 9 : 57 62)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서론)

1.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엄밀하게 따지면 조금 다릅니다. 천국’은 황금 길과 열두 진주 문이 있고, 수정 같은 생명수가 흐르고, 강가에 열두 과실이 열리고 죄나 질병이나 죽음과 밤도 없는 곳이요 하나님을 모시고 성도들이 늘 찬송을 부르며 영원히 사는 곳이 하늘 위의 장소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는 모든 장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으니라”(17:20,21)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 나라’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가정이나, 마음 자체도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3. 본문 말씀에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곧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곧 예수를 따르는 자라야만 하늘나라 백성의 자격이 있다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예수께서‘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핑계로 따르지 않을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1. 오늘 본문에서 한 사람은 스스로 자원해서 예수님께“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57)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이 사람을 ‘한 서기관’(8:19)이 라고 했습니다. 그는 단순히‘내가 따르리이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열정적으로 ‘어디를 가시든지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5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이 사람이 따라나서야 할 길이 결코 화려하지도 안락하지도 않은 매우 험난한 길임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 다시 말하면 나를 따르는 것은 장미꽃 핀 정원을 거니는 것이 아니라, 가시밭과 같은 고난과 심지어는 죽음의 길을 걷는 것이라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즉시 그 서기관은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기를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2. 이제 예수님은 또 다른 어느 한 사람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용히 있던 어떤 사람에게 갑자기‘너는 나를 따르라’고 지명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랬을 때, 베드로나 요한처럼 ‘예, 따르겠습니다’ 라고 하며 당장 따랐다면  그는 하늘나라의 위대한 소유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조건이 있었습니다.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소서’(59) 라고 했습니다.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따를 마음이 아직 없어 변명을 한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의 장례식을 엄숙히 수행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합당한 도리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엔 아직 망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해하기 쉽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도리를 완전히 저버려도 된다는 것처럼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의 의미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또 복음 전파의 사역이 매우 시급하니 세상의 어떤 일보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또는 두 번 다시 예수를 또 만날 기회가 너에겐 없으리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세 번째로 그의 부친은 어차피 구원받지 못했으며 그 가족들도 예수를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니 그들이 죽은 자나 마찬가지므로 그들이 장례를 치름이 마땅하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4. 미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아프리카의 어느 똑똑한 청년 하나를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전액 장학금을 줄 터이니 와서 공부를 하라는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청년에게는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런데 그는‘나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님 장례를 치른 다음에 가겠다’는 회답이 왔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그의 부모가 임종을 맞은 줄 알고 그러면 부모님의 지금 형편이 어떠신가?를 물었더니, 대답인즉 부모의 나이 40세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부모가 죽을 날이 멀었는데, 그 부모가 죽어 장례를 치르고 가겠다는 말은, 곧 나는 가지 않겠다는 말인 것이지요.

 

)오늘날 따르길 초청하시는 예수님

1. 오늘날도 예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나를 따르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순종의 기회는 결코 많지 않습니다. 내일도 아니요 모레도 아닙니다. 이 모습 이대로, 죄인이든 아니든, 부족하든 말든 상관없이 따르라고 하실 때 ‘네!’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좋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도 갈 수 있다는 것도 대충 들어서 압니다. 그런데 조건이 많아요. 지금은 젊기 때문에, 인생을 즐겨야 하므로, 또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죽을 때 즈음이나 예수를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2. 예수님은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했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게 되면 더 이상 가족들과 만날 시간이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작별인사를 하고 오겠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아주 가정적이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 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 영혼의 문제는 가족들과 상의할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하늘 나 라를 위해 부르심 받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모님이 반대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겐 그의 부모가 하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영원한 지옥이냐 천국이냐 또는 구원이냐 지옥 심판이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앞에 두고, 인정에 끌리고 가족들 때문에 끌려가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을 향하여 예수께선“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62)고 말씀하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마음이 분리되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3. 1519년에 스페인의 탐험가요 장교인 헤르만 코르테스 (Herman Cortes)라고 하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분 때문에 유럽과 세계에 바닐라나 해바라기 따위가 전래되었고 수에즈 운하에 대한 설계가 시작 되었습니다. 당시 스페인 군대가 태양신을 숭배하던 멕시코의 잉카제국의 군대와 싸움을 하는데, 멕시코 군대는 수가 매우 많았고 코르테스의 스페인 군대의 수는 매우 적었기 때문에 전세가 불리했습니다. 그러자 스페인 군인들이 사기가 떨어지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들 소동을 부립니다. 그러자 코르테스는 충복 몇 사람을 불러, 자기들이 타고 온 배들을 모조리 불 살라버리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타고 왔던 배들이 모조리 불 타 버렸으니 더 이상 그 누구도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코르테스 장군은 장병들에게 ‘자! 우리는 이제 이 나라를 정복을 하거나, 죽거나 둘 중에 하나뿐이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우리에겐 없다.’ 라고 외치면서 진군을 명령했습니다. 장병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승리한 후 다시 배를 만드는 길 밖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병들은 온 힘과 지혜를 다해 전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전쟁에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4. 중국 속담에 ‘개가 급하면 담장을 넘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을 걸고 하는 일에는 엄청난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예수를 따른다고 있지는 않습니까? 생각해 볼 일입니다.

 

5. 고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는 전적으로 예수를 참 주인으로 모시고 전적으로 주를 따르고 생명과 모든 것을 위탁한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심히 많이 잡은 고기와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했습니다(5:11). 세관에 앉은 레위를 보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레위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5:28).

 

5. 요한계시록에서도 예수께서는 너희가 덥든지 차갑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아니하여 미지근하면 토해낸다 했습니다. 믿으려면 뜨겁게 믿고 안 그러면 그만두라는 거예요. 여러분 가슴에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까? 그 놀라운 사랑에 감격함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삶의 최우선순위 놓고 있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에수를 섬기고 계십니까? 주께서 부르실 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진 않습니까?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결론)

1.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그러면 여러분은 대답은 어떤 것인지요? 이런 저런 핑계를 말하며 따르기를 거절할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를 것입니까?

 

2.‘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라는 부름입니다. 예수께서 혹은 성령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실 때, 이런 저런 핑계를 하며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3. 여러분은 어느 길을 택할 것입니까? 저는 바라건대 우리 모두가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며, 기쁨으로 섬기는 자들이 되어 장차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큰 복락과 상급을 받아 누리기에 합당한 자들이 반드시 되어지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축원 드립니다.

 

 

참조: 허창수/편집: 익선 0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