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통로가 된 사람 (창39:1-5)
서론) 1.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한 부류는 아브라함같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가룟유다처럼 악한일, 저주의 통로로 쓰임 받는 사람들입니다.
2. 여러분, 20기에 최대로 악하게 쓰임 받은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세 사람만 든다면 1)소련의 ‘스탈린’2)나찌 독일의 ‘히틀러’3)캄보디아의 ‘폴포트’와 같은 독재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캄보디아의 폴포트는 ‘킬링필드’의 장본인으로서 폴 포트는 200만 명을 죽였습니 다. 2)독일의 히틀러는 유대인 600만 명을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독가스실에서 사람을 수없이 죽여 기름을 짜 그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3)소련의 스탈린은 자그마치 3,500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처음부터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이에요. 두 사람은 성직자가 되려고 했었다 합니다.
1)폴포트는 불교 사원에서 6년간을 지냈는데 그 당시의 그는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대에 국비를 지원받아 파리에 가서 공부하다가 그가 접하게 된 공산주의에 물들면서 그렇게 잔인하게 변했습니다.
2)스탈린은 어려서부터 성경공부를 무척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는 성직자가 되려고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다닐 때는 노래 잘 하는 세 명중 한 명으로 뽑혀 예배 시간에 찬송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던 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코스에서 정치운동에 참여하여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습니다. 그 후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이 들어간 것입니다.
3). 히틀러도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마을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인 ‘베네딕트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그 수도원에서 수도원 학교에 다닐 정도로 신앙이 철저하고, 앞으로 성직자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 히틀러였습니다. /노래도 잘해서 소년합창단에 다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나쁜 사상이 들어갔습니다. 유태인을 미워하고 자기 종족이 세계 최고의 종족이라는 등의 사상이었습니다.
3. 또 한 가지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가 자신의 환경과 처지를 비관하고 /마음속에 유태인에 대한 미움과 /타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불행하게도 가룟유다와 같이 악한 저주의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4. 오늘 본문에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은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꿈과는 반대로 형들의 시기로 인신매매가 되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시위대장 집에 종으로 일하다가 여주인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갑니다.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살았기에 애굽의 국무총리에 이르게 됩니다. /흉년을 대비하여 양식을 예비하였다가 굶주린 애굽과 이웃 나라를 살렸습니다. /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도 살렸습니다.
5. 요셉이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복이 임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고/ 죄수들이 복을 받고 /바로의 왕궁이 복을 받고, 애굽이 복을 받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자기 가족과 근방의 모든 나라들이 대기근에서 살아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축복의 통로가 된 비결이 과연 어디 있을까요? )
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에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현이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2절“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했고 3***절에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고 * 21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했고 23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축복의 통로가 되고 형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남보다 탁월한 지혜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삶에 간섭하시고, 그의 꿈까지도 지켜주십니다. 요셉은 잡초 만도 못한 자기 인생 위에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환경을 보면 요셉은 원망 불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손가락질을 하며 ‘하나님 해도 너무 하십니다.’라고 소리칠 수도 있습니다. 1)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2)비록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정절을 지키려다가 감옥에 갔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3)자신에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합니다. 4)요셉은 다시 밑 바닥까지 추락했지만 실망하지 않습니다. /거기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엇습니다.
나)요셉의 하나님은 신실하나님 이셨습니다.
비록 믿음을 지키다가 감옥에 갔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드라마를 펼쳐가는 반전무대가 됩니다. 그가 갇힌 감옥은 폭력배나 소인배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정치가나 고위관리들이 잘못을 저질러 잡혀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당시에 애굽의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감옥입니다. 요셉은 여기서 특별한 정치와 외교와 경제에 관한 개인교습을 받고 새로운 인맥을 만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요셉을 외면하거나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달라스 신학교의 총장이었던 ‘찰스 스윈돌’ 목사님은 요셉의 특징을 한마디로 “Integrity and Forgiveness” 라고 말합니다. “성실함과 용서”가 요셉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요셉은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할 때 얼마나 원망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까요? 그런데도 요셉은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합니다. 2)하나님을 모르는 보디발도 보기에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는 것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형통하게 됩니다.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손을 대는 곳마다 형통하여 보디발의 모든 집 관리를 다 맡겼습니다.
다) 요셉은 용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된 이후 주목해야 할 삶은 ‘용서의 삶’입니다. 요셉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가장 멋진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흉년이 들자 야곱이 아들들을 보내서 곡식을 사러 보냅니다. 형들을 본 요셉은 금방 그들이 형들임을 알아챕니다. 그리고 막내 베냐민을 보기 위해 형들을 본의 아니게 골탕을 먹입니다. /두 번째 형들이 왔을 때 요셉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다 못해 결국 자기신분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남자입니까? 원수조차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습 아닙니까?
요셉은 과거에 매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섭리를 읽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나쁜 기억이나 상처에 매여서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불행한 인생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과거에 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밑바닥의 고난과 상처를 생명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 삼는 줄 믿습니다.
훗날 야곱은 임종 전에 창 49:22절에서 요셉에게 이렇게 축복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여 그를 쏘며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이 축복의 말 같이 담장을 넘어 복을 무성하게 나눠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샌디애고에서 훈련 중이던 전투기가 고장으로 주택을 덮쳤습니다. 안타깝게도 재미동포인 윤동윤 씨의 집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서울에서 잠시 와 있던 장모님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죽음입니까? /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이런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윤동윤씨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투기 조종사는 사고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1)모든 사람들이 분노와 증오의 말을 쏟아내리라 기대했는데 뜻 밖에도 탈출한 조종사를 용서하고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조종사에게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했습니다. 그의 말에 모든 미국 사람들이 놀랐고 감명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아내가 생전에 도왔던 어린이 재단과 기독교 단체에 후원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가해자를 용서하고 기도함으로 미국 사회에 하나님의 평화를 선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됐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여러분 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살고 있다 하여도 우리 삶 속엔 하나님의 역전 드라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럼 누가 요셉처럼 역전인생의 주인공, 축복의 주인공이 이 될 수 있을까요? 고난 속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닫고,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길 힘쓰는 자에게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사명을 붙잡고 나아가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이 자리에 왜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을 이 땅에서 살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은 한번 밖에 없는 인생에 우리들을 축복의 통로가 되며 빛의 통로가 되도록 하려 하심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곳에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예수 이름으로 당부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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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박민재/ 편집:익선 1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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