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강해

요엘 2 장 강해 (요엘 2:1-32,회개한 자의 축복)

호걸영웅 2017. 9. 29. 23:56

요엘 2 장 강해 (요엘 2:1-32,회개한 자의 축복)

 
서론)요엘서 2장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데, 1-11절까지는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음을 강조하고 따라서 12-17절에서는 다시금 회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18-27절에서는 회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금 그 축복과 사랑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증거했고, 28-32절에서는 장차 임할 성령의 강림과 충만에 대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11
: 여기서 요엘 선지자는 1 15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날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메뚜기 떼의 위용과 호전적인 모습을 임박한 침입군의 그것과 유사하게 묘사합니다.

 

2-5절에서는 그 위용이 나오고 6-8절에서는 그들의 조직적인 행동이 서술됩니다. 9-11절에서는 그들로 인해 초래될 엄청난 재앙 등이 기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1차적으로는 메뚜기 떼가 이스라엘 국토를 황폐케 함을 표현하였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멸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날을 묘사하는 2중적인 예언입니다.

본론)
1
: 성경에서 나팔을 부는 경우는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알리는 경종을 알리는 신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나팔은 종말론적으로 볼 때 고전 15:51-52의 말씀처럼 ‘마지막 나팔’과 연결됩니다. 이 마지막 나팔이 불 때 불신자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홀연히 변화하여 주님과 같이 영화로운 구원의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2
: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큰 재난이 발생할 것을 말씀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사건은 에스겔 등에 의해 예언된 북방 왕의 침공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참조 겔 38:15; 11:40). 여기서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란 여호와의 날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용어입니다( 5:18, 20). ‘어둠이 산등성이를 넘어 온다’는 표현은 메뚜기 떼가 새벽빛처럼 동쪽에서 몰려와 유다 땅을 다 덮어 버리는 철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3
: 팔레스틴 땅은 침입 전에는 에덴동산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웠으나 침입 후에는 황무한 들과 같이 될 것입니다.

4
: 메뚜기 떼가 덤벼드는 것이 마치 전쟁할 때 기병들의 진군과 같이 질서 있게 그리고 빨리 달리고 있음을 말합니다.


5
: 산봉우리는 보통 사람에게는 큰 걸림돌이 되지만 메뚜기 떼 같이 강한 군대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6,7: 메뚜기 재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낯빛이 모두 창백해짐을 말합니다.

 

8:메뚜기 떼의 일사불란함은 곧 그 강함과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9:견고한 성도 그들의 공격엔 무용지물이란 의미입니다

 

10: 땅이 진동하고, 온 하늘이 흔들리며, 해와 달과 별들이 캄캄해지는 징조가 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메뚜기가 침입하는 실제적인 사건에서도 사용되고 또한 종말에 임할 최후의 심판과도 연결시켜 설명합니다.

11
: 그 군대는 여호와의 군대로서 심판이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임할 것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12-17
: 여기서 요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함과 동시에, 우리에게는 회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배에 있어 외적인 형식보다는 마음 상태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를 의미합니다.

진실한 회개만이 죄악을 이기며, 하나님의 징계를 은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13
: 선지자 요엘은 외적인 표시보다는 더욱 간절한 중심으로 하나님께 참회할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51:17).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14
: 인간이 하나님께 그 마음을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여 그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3:9). 진실한 회개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곡식 제물과 부어드리는 제사도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즉 참된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가 새롭게 회복될 것을 말씀합니다.

15
: 여기서 뿔 나팔을 또 부는 것은 1절과 달리 경고를 위한 나팔이 아니라 회개를 위해 모이자는 나팔입니다.

16
: 새신랑은 결혼 후 1년간 모든 의무에서 면제( 20:7; 24:5)되었지만 죄를 회개하는 것에서는 제외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린아이조차도 또는 갓 결혼한 사람들도 빠져서는 안 되는 성회에서 민족적인 회개에의 부름입니다(참조 신 24:5).

17
: 본 절은 제사장들이 먼저 회개함으로써 모범을 보일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알고 회개하며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기도야말로 요엘서 전체를 통해 가장 고귀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중보 기도라고 생각됩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 창 18장에서 롯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모세가 신 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까지도 감수하고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은 정말 진정한 지도자의 희생적인 기도의 모범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주님도 요 17장에서 우리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18
: 본 절부터는 요엘서에서 가장 중요한 요절로서, 그들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그 심판을 거두시고 그 대신 풍성한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마음 아파하시고 (개역 성경: 중심이 뜨거우시며)’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특히 본 절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긍휼은 백성들에 대한 축복으로 나타나며 지금도 믿는 자에 대한 ‘구원’의 은총으로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축복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20
: ‘북쪽에서 온 메뚜기 군대’는 북쪽에서 침입해 온 자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침공한 적들은 주로 북쪽에서 왔고 종말론적인 적( 38:6, 15)들도 북편에서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이 말씀을 ‘마지막 시간’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메마르고 황량한 땅’이란 유다 남방을 말합니다. 그리고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는 것은 이미 메뚜기 떼들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21
: 1 10절에 탄식하고 있던 땅은 두려움이 없어지고 이제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이 옵니다. 1 5, 8, 13절에 슬퍼하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이제 21-23절에는 다시 세 가지 종류로 기뻐합니다. 즉 땅이 기뻐하고(21), 들짐승들도 기뻐하며(22), 시온의 자녀들도 기뻐합니다(23).

 

22: 들짐승들도 이제는 푸른 초장을 만나고 땅들도 이제는 새롭게 과실을 맺게 됩니다.

23
: ‘가을비’는 11월경에 팔레스틴 지방에 내리는 비로 파종기에 필수적인 비이며, ‘봄비’는 3월경에 내리는 비로 곡식의 결실에 필요한 비입니다( 11:14; 5:24). 여기서 이 이른 가을비와 늦은 봄비는 모두 하나님의 성령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24
: 젖과 꿀은 유목민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축복이지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농부에게 가장 큰 축복입니다.

25
:

26
: 이전에는 메뚜기 재난과 가뭄 재앙을 당하여 이방인들로부터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그와 같은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적적으로 먹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와 같은 놀라운 능력으로 먹이시며 그 땅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27
: ‘내가 너희 가운데 있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중 깊이

임재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 언약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모든 수치를 제하신다는 약속입니다.


28
: “그런 다음에“라는 말씀은 30절의 여러 가지 이적들로 입증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초림 그리고 재림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이 앞으로 회개와 회복(참조 슥 12:10; 13:1)을 한 후에는 하나님을 믿는 남은 자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32).


29
: 구약 시대에는 성령이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에게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백성들은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말세엔 성령이 모든 남녀노소는 물론 종에게까지 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도 그의 오순절 설교에서 이 요엘의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2:17-21).


30, 31
: 심판의 날 이전에 많은 이적들이 발생될 것을 가리킵니다. ‘피와 불과 연기 구름’ 등은 신약의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전쟁과 지진과 기근 등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13:7, 8)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요엘서는 비록 몇 장 되지는 않지만 구약의 종말론을 이해하는 데에는 매우 중요한 책 임을 알 수 있습니다.

32
: 하나님의 이름을 찾아 부른다는 것은 메뚜기 재난을 피하는 길이며 동시에 최후 심판을 피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10:12).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에게 우리의 중심을 드려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 니다. 죄와 불의를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잠시 의인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의 때에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공의가 실현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 그리고 긍휼이 충만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십 니다. 탕자처럼 방황하는 아들을 끝까지 기다리시며 우리가 중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올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통회함으로 엎드릴 때 하나님은 그 중심이 뜨거워지시며 긍휼히 여기사 우리를 죄에서 회복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땅과 자연 환경까지도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신 사랑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들은 더욱 우리의 남은 삶을 더욱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092717 안익선 목사/참고: Y.J.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