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성공? (시 73:2-9, 16-17)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1)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2)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중략)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서론)
본문은 ‘아삽’이란 분이 지은
시입니다. 아삽은 레위자손으로 성전에서 찬양대장으로 활동하였던 아주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시대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의 어려운 형편을 보고 눈물로 기도하던 정결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 아삽이 이 세상에서 악한 사람이 형통하는 것을 목격하고 회의를 느끼고 시험을 받고 때로 분노도 하고 실망하였던 마음을 시73편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로 본문 2절에서“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4절에선“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라고 했어요. 이쯤 되면 약이 오릅니다.(요새 일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듦)
. 그래서 아삽은 “내가 그 모습을 볼 때 넘어질 뻔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
본론)
가)하나님은 선하신데 어찌 악인은 번성한가?
본문에서 아삽은 현대 오늘 우리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느끼고 있는 것과 똑같은 갈등이요
고민입니다. 하나님은 선의 하나님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정결한
사람에게만 복을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악인은
실패하게 하시고 벌을 내리시고 책임을 물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 시인은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악인은 망해야 하는데... 오히려 형통한 것을 목격하고 납득이 되지 않아서 “넘어질 뻔하였고 미끄러질 뻔하였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두 눈 뜨고 바라보고 계실텐데 왜 악인이 계속 형통하는 것입니까?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때로 선한 사람들에게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힘이 강건“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고난도 없고 그들에게는 재앙도”(5) 없다 했습니다. 오히려 형통? 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아삽의 얼마나 속이 상합니까!
또 그들은 목걸이가 있었는데“교만이 그들의 목걸이”(6)였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이요, 갑질을 해대는데 습관이 되어 있어요!
또“그들의 입은 하늘이요 그들의 입은 땅에 두루 다니도다”(9). 그들은 또 돌아다니며 진리를 다 안다고 큰소리치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닙니다. 오늘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왜 자꾸 일본이 생각나죠?
그런데 더 속이 상하는 것은, 생각 없고 지각 없는 백성들이 그런 모습을 흉내 내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그의
백성이 ...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11-12).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기 까지 합니다.
간혹 보면 오늘도 세상적 형통을
좇는 줏대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회사에서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낼 때 넙죽 엎드려 절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오늘날의 한국영화계). 딸을 시집
보낼 때엔 택일하기 위해서 점쟁이 집을 드나듭니다. 변질된 교인들이 활개를 칩니다. 어잿든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마땅히 망해야 하고 재앙을 만나야 하는데 오히려 더 편하고 재물은 날로 더욱
불어납니다(12).
그러니까 더 화가 나고 하나님을 향해서 의심이 되고 회의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아삽이 13절에서 말하기를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한탄을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무질서하게 거리를 다니는데 나 혼자 교통법규를 지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람들이 모두 산에 오물을 버리고 다니는데 나 혼자만 자연보호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삽은 16절에서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 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다“(16)고 했습니다.
아삽이 그렇게 낙심하고 실망하고
마침내 넘어질 뻔하기까지 갈등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이 그런 악한 사람들을 그냥 놔두시는 이유를 깨달아 알게 됩니다.
언제요?
아삽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도다”(17)고 합니다.
성경을 보니까, 악인과
죄인과 불법 자들이 형통하는데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냥 놔두시는 이유와 그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하기를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18-19)하고 고백합니다.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셨다는 말씀은
“악인은 여차하면 망한다,혹은 결국엔 망한다”는 말입니다.
아삽은 비로소 깨닫고 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죄송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아삽이 고백하기를 “내 마음이 산란하여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21) 하고 말합니다. 알고 보니까 악인에겐 너무 두렵고 충격적인
일이 장차 있을텐데...그걸 모르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마음이 찔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삽은 자신을 우매한 짐승에 비유(22)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모습을 보고 시험을 받고 유혹을 받고 하마터면 미끄러져서 하나님을 부인할 뻔하였는데 그렇게
넘어지지 않은 것도 주님께서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셨기 때문(23)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성소에서 깨달은
두 가지
그래서 아삽은 여기서 결론으로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악인도 형통할 수 있다”
악인도 누구 보다 더 잘 살
수도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하나님은 왜 저런 악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가? 이해가 안 되고 의심이 들고 시험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정직하게 기도를 많이 하면서 양심껏 살아가는데도 아픔이 있고 고난이 있고 때로 실패도 경험하였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데...... 왜 저 악한 사람들은 잘 살고 평안할까 하는 실망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탄은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섭게 나타나거나 찾아오지 않습니다. 와서 신앙인들을 넘어지게 하고 부러지게 하고 망하게 하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제 사탄의 작전도 상당히 현대화하였고 지능화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탄은 마음에 시험되도록 다가옵니다. 회의에 빠지게 하고 의심나게 해서 스스로 무너지게 하고 스스로 하나님 곁을 떠나가게 합니다. 이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2)감추어진 깊은 부분이 있다
아삽이 악인들이 형통함을 보고
스스로 시험되고 낙심하다가 마침내 악인들이 죽을 때에도 편히 죽는 것을 보고 분노까지 느끼게 되어 넘어지고 실족할 뻔하였는데... 그 아삽이 성전에서 예배하고 말씀을 읽고 기도 하던 중에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아삽이 깨달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악인들을 그냥 놔뒀다가
어느 날 한꺼번에 책임을 물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삽은 그 잠시 놔두는 동안 악인들의 형통하는
모습을 보고 영원한 형통으로 착각해 스스로 시험 들었고 낙심하였고 불평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짐승이라”고 고백합니다.
# 여러분, 이 경우를 이렇게 이해하면 빠를 것입니다. 옛날 어느 목사님 어렸을
때 보니까 ......추석 보름 전쯤부터 어른들이 암퇘지에게는 먹이를 조금 주었습니다. 그런데 수퇘지에게는 먹이를 많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암퇘지는 배고파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댔고 수퇘지는 아주 게걸스럽게 혼자 그 많은 먹이를 다 먹어 치웠답니다. 그래서
수퇘지는 살이 뒤룩뒤룩 쪄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분이 어렸을 때라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수퇘지에게만 먹이를 많이 준 이유를 추석 전날에 가서야 그가 비로소 알았답니다. 어느 순간이 되니까 그렇게 편안하게 먹을 것을 많이 줘서 살이 찌게 된 돼지를 잡아서! 삶아서 ! 제사 상에 올리는 것을 보고서야 모든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라고 한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사형수는 감옥 안에 있지만
잠자고 눕고 운동도 하고 놀기도 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여러분, 사형수가
평안하다고 사형수가 되고 싶습니까? 사형수들에게는 그렇게 평안하게 지내게 하고 실컷 먹게 해 주지만
어느 날 한꺼번에 처형을 당합니다. 이 시편 기자가 바로 그 점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무릎을 탁 친 것입니다.
그리고 본 시편 끝부분에 가서 결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은
망할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다”(27-28)라구요.
요한계시록 20:11~15= 이렇게 말씀합니다.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여기에 더 붙일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생각이 짧고 지혜가 짧아서 좀 깊이 감추어있는 것들은 볼 수도, 알 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이생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생은 길어야 백년이예요. 하늘나라의 삶은 영생이요 지옥의 삶은
영벌입니다. 형통한 하루살이가 그리 부럽습니까? 그런데도
그 짧은 생각으로 스스로 판단해서 스스로가 시험이 되고 낙심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풀리지 않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좀 놔두고 생각하다 보면... 하나님이 깨달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지혜도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깊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알게
하시고 깨달아 따르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찬송을 받으십니다.
결론)
아삽도 우리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그 시대를 살면서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낙심하고 갈등하고 넘어질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갈 때, 비로소 그 깊으신 하나님의 뜻과 숨겨진 섭리를 비로소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이 고백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아픈 것이 무엇입니까? 억울한
것이 무어냐고요? 속상해 마시고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다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께는 더 나은 방법이 있으십니다.
참아 기다리십시오! 때가 되면 이루십니다. 가을이
되면 참된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추수하십니다. 기도하십시다.
071619 안익선 목사/ 참고: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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