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열왕기하 15장 강해(유다왕 아사랴의 행적과 4대만에 끝난 예후왕조)

호걸영웅 2019. 8. 7. 05:44

열왕기하 15장 강해(유다왕 아사랴의 행적과 4대만에 끝난 예후왕조)

 

서론)

오늘 말씀은 남 유다 왕 아사랴의 행적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사랴가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산당은 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사랴를 치심으로 그가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에 예후 왕조는 4대만에 왕조가 마감되었습니다. 불완전한 순종의 결과였다 했습니다.

 

본론)

)유다 왕 아사랴의 행적 

1절을 보면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이십 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됩니다. 아사랴는 웃시야로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사랴보다는 웃시야가 더 잘 알려진 이름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름이 두 개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도 어릴 때 부르는 이름과 호적의 이름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어릴 때 이름과 왕으로 등극할 때 이름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아사랴의 아버지 아마샤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웃시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절을 보면 웃시야가 왕이 될 때 나이가 16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오십 이년간 다스립니다. 남 유다 왕 중에서는 두 번째 오랜 기간 동안 다스린 왕입니다(므낫세는 55년 통치. 왕하 21). 오랜 기간 왕으로 다스렸다고 해서 좋은 왕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무론 아닙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도 산당을 제거하지 못함으로 결국은 신하들의 손에 의해 살해 당하고 웃시야가 왕으로 추대 되었습니다. 이 때 웃시야의 나이가 16세였는데 웃시야가 왕이 되었어도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산당제사를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그들에게는 성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백성들의 민간신앙을 건드리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다고 합니다.

 

6-7절을 보면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지 아니하였느냐. 아사랴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아사랴 왕이 하나님의 치심으로 문둥병이 들었기 때문에 별궁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요담이 실제로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아사랴 왕은 섭정을 하였겠지만 백성들 앞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사야 6:1-5절을 보면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했습니다.

 

웃시야가 문둥병자로 별궁에 거하다가 죽던 해에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영광을 성전에게 보게 됩니다. 

웃시야는 왕으로서 백성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고 외국에서도 대단한 왕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하나 못 마땅한 것은 성전의 제사를 자신이 직접 주도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사장을 제쳐놓고 자신이 직접 분향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역대하 26:17-20절을 보면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왕이 분향 하려고 하자 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왕의 뒤를 따라가서 웃시야에게 말하기를 웃시야 왕이여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웃시야여! 라고 부릅니다. 왕의 존칭도 떼 버렸습니다. 감히 성전에서 자신의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분향하려고 한 이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이 분향할 것이니 왕은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왕이 화를 냅니다. 왜 화를 내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형통한 때입니다. 백성들도 존경하는 왕입니다. 영토가 회복되고 경제는 잘 돌아가고 국방이 튼튼합니다. 이에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져서 제사도 자신이 직접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왕을 말리는 제사장들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이를 보고 급히 쫒아 냅니다. 감히 문둥병이 든 주제에 여호와의 성전에서 분향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성전에 나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접촉하는 것이 다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가장 형통한 때에 그의 속 모습은 문둥병자였습니다. 여호와께서도 그런 왕을 치시니 왕이 속히 물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대하 26:21-23절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이 외에 웃시야의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웃시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저는 문둥이라 하여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사대 만에 끝난 예후의 왕조(15:8-12)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유다 왕 아사랴의 삼십 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여섯 달을 치리하며 그 열조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스가랴를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통해서 징치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저를 모반하여 백성 앞에서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반역을 하여서 스가랴를 쳐 죽이고 자신이 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예후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이스라엘 위를 이어 사대까지 이르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고 했습니다.

 

)살룸과 므나헴과 브가히야의 행적 (15:13-26)

 

 예후의 왕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대 만에 끝이 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예후의 왕조는 예후의 통치 기간을 포함하면 100년간 통치한 왕조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조는 여로보암부터 호세아까지 209년간 반역으로 인하여 9번이나 왕조가 바뀝니다. 그런데 예후의 왕조가 그 절반이나 되는 기간 동안 이어진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후를 통하여 아합과 이세벨의 집안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3-15절을 보면 “유다 왕 웃시야 삼십 구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 달을 치리하니라.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 모반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고 했습니다.

 

예후왕조가 끝나자 그 뒤를 이어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스가랴를 죽이고 사마라아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룸이 왕이 된지 한 달 만에 다시 반역으로 인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바로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살룸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 왕 노릇한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 모반한 일들은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 되었습니다.

 

16-18절을 보면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저희가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치고 그 가운데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유다 왕 아사랴 삼십 구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십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19-22절을 보면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저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토색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돌이키고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므나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므나헴이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앗수르 제국이 힘을 발휘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왕 불이 북 이스라엘을 치려고 합니다. 이에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줍니다. 그런데 그 은을 모든 큰 부자에게서 토색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습니다. 이에 앗수르 왕 불이 물러갔습니다. 므나헴은 부자들에게 강제로 돈을 내게 하였습니다. 이런 왕의 행위는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지지를 받을 일이었습니다.

 

23-26절을 보면 “유다 왕 아사랴 오십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명으로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고 했습니다.

결론)

하나님이 안 계신 북 이스라엘의 왕들의 통치는 반역과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이하 생략!  유다의 왕들도 산당을 온전히 제거 못하여 수시로 어려움들을 당하였습니다.

 

072219 안익선 목사/ 참조:창원한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