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열왕기하 10장 강해(아합의 아들들의 피살과 예후의 부족함)

호걸영웅 2019. 7. 11. 02:25

열왕기하 10장 강해(아합의 아들들의 피살과 예후의 부족함)

 

서론)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세벨이 예후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세벨의 죄 그늘에 있던 아합과 그 후손들을 멸절한 내용과 아합의 집안을 진멸하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다 죽인 예후가 여로보암의 금 송아지 숭배의 죄에서 온전히 떠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론)

 

)아합의 아들들의 피살(10:1-17)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예후가 요람과 아하시야와 이세벨을 죽인 후에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있는 사마리아에 편지를 보냅니다. 예후는 이스르엘 방백 곧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왕으로 세워 아합의 집을 위하여 싸우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후를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심히 두려워하며 “두 왕이 저를 감당치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명하는 것을 우리가 행하고 아무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고 당신의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있었고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한 명을 왕으로 세우고 예후와 싸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후가 이미 두 왕을 이기고 이세벨 까지 죽였기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왕을 세우지 않고 예후의 처분대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여호와의 심판이 집행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0절과 17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6-7절을 보면 예후가 다시 저희에게 편지를 부칩니다.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 된 사람들의 머리를 취하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왕자 칠십 인이 성중에서 그 교육하는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왕자를 교육하던 자들과 존귀한 자들이 왕자 칠십 인을 잡아 몰수히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에 있는 예후에게로 보내었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후는 이세벨을 죽일 때도, 아합의 아들들을 죽일 때도 자신이 직접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백성들을 동참시켰습니다.

 

 오늘 본문 8-11절을 보면 칠십 명의 왕자들의 머리를 이스라엘 성문어귀에 두 무더기로 쌓아둡니다. 백성들이 성읍을 출입하면서 그 끔찍한 장면을 다 보게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예후가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의롭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지만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고 합니다(9).

 

이 말에는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도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왕을 배반하였지만 그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며, 인간적으로 볼 때엔 자신은 의롭지 못하지만, 백성들은 의롭다고 말합니다.

윤리적을만 볼 때는 왕을 모반하는 그릇된 일에는 자신이 가담 하였지만 악한 아합왕과 이셀벨의 자녀인 왕자들을 죽이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의 귀족들과 왕자를 가르치는 자들이 이렇게 죽인 것은 결국엔 옳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왕자를 죽인 자들이 혹 변심하거나 두려워 떨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후는 이렇게 된 것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금 이루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10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아합의 칠십 명의 아들들이 다 죽임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일입니다.

 

  오늘 본문 12-14= 이스르엘을 접수한 예후는 사마리아로 갑니다. 가는 도중에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납니다. 이들은 요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상하려고 온 것입니다. 아하시야도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사마리아로 가는 것은 이미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들이 결혼을 함으로 아합의 집과 함께 연락하게 되었다는 것을 반증해 줍니다. 예후가 이들을 사로잡게 하여 죽이니 사십이 명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예후에 의하여 요람과 함께 한 아하시야가 죽임을 당하고 그 아하시야의 형제들도 다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아합과 이세벨에 속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5-17절을 보면 예후가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죽이고 그곳을 떠나가는데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예후를 맞이하려고 옵니다. 예후가 안부를 묻고 자신의 마음이 여호나답을 향하여 진실한 만큼 너의 마음도 진실하냐고 묻습니다. 여호나답이 그렇다고 하자 예후가 자기 병거에 여호나답을 끌어올리고서는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고 합니다. 이에 여호나답과 함께 사마리아로 가서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합니다. 이렇게 된 것도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17). 10절과 17절에 두 번이나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후의 아들들과 아하시야의 아들들이 다 죽임을 당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과정에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예후와 함께 합니다. 그러면 레갑은 어떤 족속입니까? 그들은 갈렙의 후손입니다(대상 2:42, 55). 이들은 겐 족속의 일파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겐 족속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목민이었는데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와 정착을 하였지만 레갑에 의해 유목민으로 살아간 것입니다. 이들이 레갑의 명을 따라 집을 짓지 않고 살며 포도주도 마시지 말라고 한 것이 남 유다의 멸망 직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밝혀집니다. (예레미야 35:1-10)

 

오늘 본문의 여호나답이 요나답과 같은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줄이면 ‘요’나 ‘야’로 발음이 됩니다.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자극하고 선동하고 강요한다는 뜻입니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예후(10:18-36)

 

오늘 본문 18-24절을 보면, 예후가 집권을 하고나서 자신은 아합보다 더 바알을 섬기겠다고 하면서 전국의 바알 선지자를 다 불러 모읍니다. 오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여 전국에서 다 불러 모아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게 하고 예복을 입게 합니다. 그리고 예후와 여호나답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만 남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에 있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후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다 죽이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24절에 보면 예후는 팔십인을 밖에 두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손에 붙이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겠다”고 합니다.

 

25-29절을 보면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호위병과 장관들이 칼로 저희를 죽여 밖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당이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 바알을 완전히 멸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9절에 보면 예후 자신은 이스라엘에게 범죄 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을 진멸한 예후였지만 자신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30-3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잘 행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의 집에 다 행하였기에 네 자손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후가 왕이 된 후,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에 비로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땅을 찢어 잘라내기 시작합니다. 아람 왕 하사엘로 이스라엘의 영토를 공격하게 하되 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을 공격합니다.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비산까지 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예후는 28년을 통치하고 죽습니다. 예후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모든 권세는 역대지략에 기록되고 열조와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토록 이스라엘 왕들이 떠나지 못했던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9절에서 잠시 봤습니다만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게 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12:25-32절 말씀=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팔월 곧 그 달 십 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왕상 12:25-32)고 했습니다.

 

. 그렇습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아닌 일반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절기를 만들어서 금송아지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이 이렇게 한 것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러 갔다가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갈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곧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위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대체신앙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로보암의 죄가 되어서 온통 북 이스라엘로 물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지 못하도록 꾀를 내어 이단적 행위를 했습니다.

 

결론)

 

그러면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의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신전을 만들고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여로보암의 죄가 됩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우상이란 어떤 형상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탐심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3:5).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형상물을 만들지 않더라도 나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과 활동들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말은 성경의 하나님을 말하고 성경의 예수님을 말하지만 그 내용이 나를 위한 신이며, 우리 자신을 위한 신이라면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통일교,여호와 증인, 전도관, JMS, 다락방, 몰몬교 등등의 이단들).

 

오늘 우리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것은 곧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062519 안익선 목사/ 참고:창원한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