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열왕기하 13장 강해(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은 요아스)

호걸영웅 2019. 8. 7. 05:46

열왕기하 13장 강해(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은 요아스)

 

서론)지난 시간에 우리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그의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고 우상숭배의 길로 행하는 남 유다 왕 요아스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북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와 요아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동명이인).

 

본론)

)북 이스라엘은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남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23년에 북 이스라엘은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17년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그 왕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행한 악은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간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언약을 배반함으로 반역으로 인해서 그 왕조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열한 번째 왕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제사하러 갔다가 르호보암에게로 갈 것이 두려워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유사 종교를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자기에게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늘 아람 왕 하사엘과 벤하닷에게 붙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늘’ 여로보암의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면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니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학대받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예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저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저 두었더라”고 합니다. 여호아하스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살만하니까 또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그들을 어떻게 하십니까? 7절을 보면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고 합니다.

 

)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것과 그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합니다. 결국 여호아하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10-13절을 보면 “유다 왕 요아스의 삼십 칠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륙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위에 앉으니라”고 합니다. 이 요아스가 죽고 나자 그 아들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 왕이 여로보암 2세입니다.

 

왕하 13:22-23절을 보면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고 합니다.

 

)엘리사와 요아스의 만남(열왕기하 13:14-25)

   14-17절을 보면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습니다. 이에 요아스가 죽을 병이 든 엘리사에게 내려가서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합니다.

 

열왕기하 2:12절에도 보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한 말은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요아스는 자신이 왕이고 군대가 있는데도 엘리사 선지자를 보고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은 눈에 보이는 병거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선지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16년 동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었습니다. 그러면 왜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믿었겠습니까?

 

그 이유를 열왕기하 13:7절에 보면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람왕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와서 그 백성을 진멸하고 여호아하스에게 마병 오십과 병거 십승과 보병 일만만 남겨 두었습니다. 한 나라의 군대가 이 정도로 줄었다면 정말 힘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아스가 엘리사가 병들어 죽게 되자 그에게 와서 눈물을 흘리며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요아스가 병거와 말이 솔로몬 시대만큼 많았다면 엘리사를 찾아 왔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었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약해지는 것이 요아스에게 복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약함으로 인하여 엘리사를 찾기 때문입니다.

 

 본문 14-17= 요아스가 죽을 병이 들어 죽어가는 엘리사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 이에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말하기를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활과 화살을 잡으라고 하고서는 엘리사가 그 손 위에 얹습니다. 곧 안수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쪽 창을 열고 쏘라고 합니다. 그렇게 화살을 쏘자 엘리사가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8-19절을 보면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요아스가 왕이 세 번을 치고 그쳤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노하여 왕이 대 여섯 번을 쳤다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을 것이지만 이제 세 번만 칠 것이라고 합니다. 17절에 보면 엘리사가 말할 때에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구원을 의지하는 행위가 화살로 땅을 치라는 말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세 번만 친 것입니다. 요아스가 왜 세 번만쳤을까요? 이게 무슨 짓이냐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하였지만 대단한 약속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겨우 세 번만 친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말을 여호와의 구원으로 받았다면 수도 없이 내려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들을 치는 것이 절박할수록 멈추라고 할 때 까지 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겨우 세 번 친 것은 요아스의 무력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20-21=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 섰더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죽고 일 년이 지났습니다. 모압 도적 때들이 이스라엘 땅에 왔습니다. 그때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 넣습니다. 이스라엘은 땅에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굴과 같은 곳에 시신을 놓아두기에 장사를 지내다가 적이 오자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지고 도망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던져진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엘리사는 죽을 병이 걸려서 죽어 시체가 섞었습니다. 이는 그 선지자가 살아서는 얼마나 능력이 있는 자였는가를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죽으셨던 그리스도시지만 그 능력을 힘입어 영원한 생을 얻습니다.

 

본문 22-25=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그 성읍들을 회복시킨 것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화살을 세 번 쳤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엘리사는 죽어서 뼈가 다 드러난 시체가 되었지만 그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071619 안익선 목사/참고: 창원한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