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 (딤후 4:7~10)

호걸영웅 2022. 8. 18. 02:36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 (딤후 4:7~10)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 갈라디아,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서론)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사람에 따라서 사는 날수가 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침례 요한은 삼십을 조금 넘게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값진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런가하면 모세는 120살까지 오래 살면서 보람된 일을 많이 했지만 사실 80세 이후에 집중된 삶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애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일생을 참으로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적 성공여부를 따진다면 한다면 솔로몬을 능가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귀영화와 향락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탁월한 지혜의 소유자였고, 부강한 이스라엘의 군왕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고 다 누려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노년에 저술한 전도서를 보면 후회로 가득합니다. 그는 탄식하기를 “( 1:2)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 했고 또 14절에서도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솔로몬처럼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했고 권력자도 아니었지만 솔로몬보다 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말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딤후 4: 7,8)=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라고 했습니다. (고로 오늘 저는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인생”의 삶이 될것인가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본론)

)첫 번째로,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서 사는 삶이 후회 없는 삶이 됩니다.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전혀 후회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 믿습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특히, 그는 기독교를 이단들로부터 지켜내는데 크게 신학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의 저작들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주 예수의 일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청년시기를 매우 방탕하게 살아 사생아를 낳았고, 또 마니교라는 사교(邪敎)에 빠져서 하나님을 대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에 힘입어서 회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그의 지난날을 진심으로 후회했습니다. 어거스틴의 생애는 크게 두 기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기는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았던 시기이고, 후기는 회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았던 시기입니다. 전자는 후회 막급한 세월이었고, 후자는 후회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한때 사도 바울은 예수를 대적하던 사람으로서 그 이름을 사울이라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 당할 때 돌을 던지는 유대인들의 옷을 맡아 지키기도 했습니다. 이는 그가 그 사건의 증인을 자처했음을 의미합니다. 또 그는 대제사장에게서 권한을 위임 받아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여 옥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일꾼으로 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 날 사울은 자기가 핍박하였던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다메섹 사건을 통해 그 이후의 바울의 살은 후회 없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죽도록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 13절에서 그는 자기의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3)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영광스럽게 변화되었습니다.

고로 그가 감히 종국엔 말하기를 로마서 8:18에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 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인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영원히 후회함이 없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제 구원받은 성도들은 또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 예수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구원과 관련이 있으나,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영원한 상급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지만 그 소속은 하늘에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 3:20)은 말씀합니다. 어느 나라 시민이든 시민권을 받은 자는 그 나라를 위해 힘써 일하고 세금을 내고 봉사해야만 합니다. 안 그러면 반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시민이므로 비록 이 땅에 잠시 살지만 천국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 예수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지상의 삶은 비유컨대 잠시 여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휴가철에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떠날 때,  며칠 여행하기 위해 타지에 집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호텔이나 민박과 같은 곳에 머물다가 옵니다. 좀 불편하지만 잠시 휴가 기간에만 머물 것이므로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도의 삶인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야곱이 말년에 흉년이 심각한 가나안을 떠나 애굽에서 총리로 있던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갔을 때도 바로왕 앞에서 한 말은 너무나도 의미심장합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나이가 얼마냐고 물었을 때,  야곱 이 바로에게 고하기를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47:).
영원한 하늘나라가 곧 우리의 참된 안식처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 15절 이하에서 이같이 권면합니다.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큰일을 이룩할지라도 주 예수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 니까? 장차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칭찬하실 만한 삶을 살아 가시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인생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딤후 3:1~5= 1)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 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 다.

말세에도 사람들이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대상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 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합니다. 여기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성경이 우리에게 사랑하지 말라고 명한 것들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은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만드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사랑으로는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없으며, 상처 입은 사람들 의 마음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더 추하게 만들고, 상처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인생이 될까요? 알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과 같은 사람들은 군대의 힘으로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저들의 정복욕 때문에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죽어갔고, 수많은 도시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더 이상 정복할 나라가 없어서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과연 후회 없는 인생을 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은 임종을 앞둔 시점에서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서 후회와 인생의 허무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로소 죽음 앞에서 빈손 들고 떠나야 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실패한 인생으로 생을 마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들이 하나님과  또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을 몰랐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됩니다.

반면, 예수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무력으로 남의 나라를 정복하려고 하신 적이 없으셨습 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해도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접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다른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몰려오는 병자들을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일일이 고쳐 주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 다. 배고픈 무리에게 떡을 주셨습니다. 종국에는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귀한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10) 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 한 마디, 행동 하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오로지 사랑의 동기에서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직전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복자들이 남긴 마지막 말과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비교해 보십시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쁨으로 벅차셨을까요? 사랑으로 사셨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면 운명할 수 있었습니다.

)
네 번째로, 사명을 위해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인생입니다.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정에서 맡은 사명이 있습니다.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아내와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 할 일이 있습니다. 온 가족이 각자의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복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더라 도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못해 출근하고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고 퇴근하는 식이 되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면 자기의 사명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누구나 성도라도 성도답게 거룩하게 살아갈 사명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5:13~16)=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10절에선 데마가 바울을 버리고 세상으로 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명을 저버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교회의 지체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해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 하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고, 성도들을 몸의 지체들이라고 합니다. 몸의 수많은 지체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때 비로소 온전한 몸이 되듯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각자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귀한 것은 불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것은 그들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종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사는 육신의 생명을 살릴 뿐입니다. 육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생명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냐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영혼이 소중한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은 오직 복음을 전함으로써만 가능함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결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원하십니까?  오늘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키며, 주님 예수를 위해 살며, 사랑을 실천하며, 사명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생 마지막 고백에서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모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옵소서, 내 영혼을 기쁘게 받으소서! 라고 외치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81022 안익선 목사/참고:김양인 목사 & http://mission.bz/2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