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누가 예수의 참 제자인가?(눅14:25-30)

호걸영웅 2022. 9. 16. 04:09
              누가 예수의 참 제자인가?(14:25-30)
25.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서론)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도' 혹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도 쓰지만, 그러나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현은 '제자'라는 말입니다. 특히 신약성경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흔히 교회에서 '제자'라고 하면 예수님의 12제자만을 생각하지 만, 성경에 서는 '70인의 제자'를 비롯해, 모든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제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교인도 많고, 신자도 많은데 제자는 적다." 라는 말입니다. 대충 무슨 뜻인지 아실 줄 믿습니다. 교인은 그저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다. 일 년에 교회에 한 번을 다니든, 두 번을 다니든 상관없습니다. 또 신자는 글자 그대로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 성경을 믿습니다. 그런데 잘 믿는 신자가 있고, 적당히 믿거나 매우 불성실하게 믿는 신자가 있습니다( 소위 나일론 신자?). 그런데 '교인' '신자'를 넘어 '제자'라고 하면 그 의미가 좀 더 깊어집니다. 예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성도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신자훈련'이나 '교인훈련'이라는 말은 없고  '제자훈련'이 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예수전도단'이라는 단체에서 즐겨 사용하는 단어가 '제자'라는 말입니 다. 그래서 그들이 12주 강의와 12주 전도여행으로 구성해 놓은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한국말로 '제자 훈련 학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예배, 중보기도(영적전쟁), 내적치유와 다림줄, 아버지의 사랑, 영적성숙, 성령으로 사는 삶, 재정(권리포기), 충성과 위탁, 영적권위, 성경적 세계관, 전도 및 선교... 입니다.

물론 예수전도단에서 하는 DTS(제자훈련학교) 강의가 모든 교단과 모든 교회에 다 맞지는 않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들은 교단마다 다 조금씩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제자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제자훈련-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조직이나 훈련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구역장 및 조장 훈련, 목자 훈련, 새신자 훈련, 지도자 훈련, Cell Leader Training... 등등 입니다. 아무튼 모든 교회의 목표 중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즉 전도와 선교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극대화하기 위한 교육 및 훈련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12제자를 불러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12 제자들은 제자가 되는 과정이 좀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서 "사부님, 제발 저를 제자로 삼아주십시 오.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시기까지 저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겠습니다." 라고 간청을 하면, 스승은 약간의 테스트를 한 후, 마지못해 허락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예수님이 직접 그들을 찾아가 제자로 삼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15:16)고요. 즉 예수님은 직접 우리를 일일이 부르시고 열매를 많이 맺는 좋은 제자로 만들기를 원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그러면 누가 좋은 제자고, 누가 참 제자일까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알아봄으로 같이 교훈을 얻길 원합니다.)

본론)

)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

먼저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6-27)고 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은 기독교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꼬투리 잡아 비난하는 사람들이 예로 드는 전형적인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비난합니다. "- 이 성경 구절을 보아라. 기독교는 에미 애비도 모르는 못된 자들이 아니냐? 예수 믿고 제자가 되려면 부모든 아내든 자식이든 형제든 모조리 미워하라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라고요.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의미를 잘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문장 일부만 떼어서 문자적인 것만 들여다보고 이런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이 말씀을 그들처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을 믿으면 당연히 집안싸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 대한 이런 단편적이고 문자적인 이해는 교회에서나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즉 이 말씀을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가족이고 뭐고 다 버려야 된다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의 의도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가족이든, 친구든, 부모든, 자녀든 다 미워하고, 돌보지 않고, 버리고, 싸우라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오히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6:1-3)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잘 돌보고, 좋은 친구를 사귀고, 형제간에 우애하라는 말씀이 가득히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의 문맥 내용은 보지 않고 부분 부분만 따서 "기독교가 왜 이리 비도덕적이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 본문의 가족이나 심지어 자신까지도 미워하라는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참고로 신명기 13:6-9를 보겠습니다.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고 하십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따르는 일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를 말씀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제 막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동체가 형성되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만  반드시 섬겨야 한다고 독려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신명기 말씀을 인용한 것이 오늘 본문 누가복음 14장의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표현된 '미워하라'는 말은 무턱대고 원수같이 대적하고 멀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그것을 좇지 말라, 절대 따라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가족이든 누구든 그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막는다면, 그가 아무리 중요하고 사랑스럽고 피를 나눈 형제와 같더라도 그들의 말을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자들의 길, 제자들이 선택해야 할 올바른 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란 한 마디로 스승을 닮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가르친다고 예수님처럼 대접 받을 순 없습니다.즉 제자훈 련을 하면서 어떤 사람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은 참 제자가 되기 위한 자세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27)

 이 구절에 대하여 마가복음 8:34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 말은 말하거나 듣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기 멋에 산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것은 분명 아닌데, 그 사람은 그것이 좋아 죽습 니다.

즉 내 생각과 스승인 주님의 생각이 다를 때, 내 생각을 포기하고 주님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참 제자입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들까요? 주일입니다. 각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장신구를 달고 교회에 옵니다. 어떤 옷을 입고 와야 스승인 주님의 마음에 들까요? 핫팬티나 수영복같 은 옷, 파자마 같은 옷은 어떻습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옷보다 스승인 주님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오는 것이 제자의 모습입니다. 특히 교회에 올 때에는 예배를 드리러 옵니다. 우리의 스승이시고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집중 조명을 받아야 하는데, 제자가 너무 튀는 옷을 입고 장신구를 달고 오면 사람들이 주인 공이신 예수님에게 집중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주인공되신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내가 더 주목을 끌고 영광을 받게 될 지경입니다. 제자가 스승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 됩니다.

스승을 따르기 위해 내 생각, 내 방식, 내 주장을 포기하는 것이 참 제자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부인하 고 자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즉 고통입니다. 싫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좋아도 스승이 싫으면 스승을 따라가야 참 제자입니다.

때로는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일 수 있습니다. 순교를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처참히 순교를 당해야 하는데, 나는 폼 나게 부티나게 좀 더 오래 살겠다고 하면? 당신은 이미 예수님의 참 제자가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늘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의 성도들은 십자가의 고난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고난에는 될수록 동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일곱 길로 도망갑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졌는데 왜 내가 십자가를 또 져야 하느냐? 나는 편하게 축복만 받고 예수님을 믿겠다 말합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있고, 내가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이 있고, 내가 당해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스승인 주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는 모범을 보였는데, 제자는 자기가 지고 갈 십자가를 팽개쳐 버리고 도망가면 참 제자가 아닙니다. 영어로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No Cross, No Crown." , "고난 없이 축복도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참 제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스승인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습니다. 주님 말씀하신대로 나를 부인하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디 그게 내 뜻대로, 내 힘대로 됩니까? 베드로는 분명 "다른 이는 다 주를 버려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용감하고 충성돼 보이던 베드로도 주 예수를 버렸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때로는 큰 고난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훗날 성령의 충만을 받자, 자신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감옥에 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모두 순교의 길, 참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는 단지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나 신자로서 만족하지 말고 참 제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고집, 자기 방식을 부인하고, 성령 충만 받고 ,더 나아가 자기가 져야 할 십자가를 이곳 워터타운에서도 묵묵히 지고 가는 아름다운 주님의 참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자기의 것'라는 소유조차 버릴 수 있는 자가 참 제자다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내 자신, 내 자녀, 내 부모, 내 돈, 내 직업, 내 생각, 내 판단... 등을 스승의 뜻에 맡긴 사람이 참 제자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너라."고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들은 자기 직업(어부, 세리)을 떠났고, 부모를 떠났어요. 학문도 떠났고 세상 부귀영화도 떠났어요. ? 예수는 그런 것보다 더 크고 귀하신 아들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얻기 위해 자신이 당대에 힘써서 배운 학문들을 배설물처럼 버렸다 했어요. 세상 것에 얽매여 있으면 결코 예수의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야 너 그거 버려라 하시면 언제든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진 않습니다. 십일조하고 각종 선교헌금 등등에 참예하라! 정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생업을 아예 포기하고 예수님의 일을 하라 부르시기도 합니다. 저도 다 버리고 예수를 좇았지만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헐벗지 않았습니다. 잘만 살고 있지 않습니까? 다 버리라고 하시면 그만큼 그 이상 채워주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영혼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참 제자이다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했어요.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가르치신 최대의 덕목은 사랑입니다: 원수조차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인 우리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고소하며 살면 예수님의 참 제자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도 다 눈살을 찌푸리더라고요.

 

)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사람이 참 제자다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라 하셨어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승이신 예수님의 생각과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남기신 말씀을 부지런히 살피고, 그 말씀을 행해야 합니다. 특히 지상명령, 유언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온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지켜 나가는 자가 곧 예수의 참 제자가 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의 대지 4가지가 뭡니까? 복습해 봅니다. ! 이 말씀 마음에 깊이 새겨 또 열심히 실천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 예수 이름 받들어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1)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

2) '자기의 것'라는 소유조차 버릴 수 있는 자가 참 제자다

3)영혼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참 제자이다

4)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사람이 참 제자다, 아멘 할렐루야!

 

    081622 안익선 목사/ 참조: 캘거리 순복음 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