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민수기 제22장 강해 (발락 왕과 거짓 선지자 발람)

호걸영웅 2023. 11. 23. 04:35

민수기 제22장 강해 (발락 왕과 거짓 선지자 발람)

 

서론)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요단 서편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지점인 여리고 맞은편, 모압 평지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수개월 동안 머물며, 2차 인구조사와 모세의 죽음, 새 지도자 여호수아의 지정 등의 사건 등이 진행되었습니다.

 

본 장에서부터 24장까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보고 놀란 모압과 가나안 족속들이 우상의 힘이라도 빌려서 이스라엘을 저지하려 합니다. 당시의 모압 왕 발락이 미디안 족속들과 결탁하여 당대의 유명한 메소포타미아 복술가인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를 하려는 시도를 감행하게 됩니다. 엄격히 따지면 발람은 하나님을 섬기진 않았으나 하나님에 대하여 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우유부단한 점도 많이 있어 보이는 인물입니다.

 

본론)

)먼저 1-14절은 발락의 초청을 거부하는 발람의 모습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진행하여 모압 평지에 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모압 평지는 요단강 건너편, 즉 강 동편에 위치한 약 20km의 넓고 광활한 초원 지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평지 전역에 숙영지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그 평지 안에 있는 ‘싯딤’이라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3:1). 이곳은 가나안 입성을 위한 마지막 교두보라는 것 외에도 모세의 최후의 장소이며, 여호수아의 지도자적인 활동이 시작된 곳이기에 매우 중요한 곳이라 하겠습니다.

 

2,3: 모압의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고 들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압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9), 모압은 이스라엘이 아모리를 멸망시킨 것과 60만 명이라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12:27)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미디안 족속의 시조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세 번째 아내, 그두라의 아들입니다( 25:1-4). 그는 시내 광야 남부와 중서부 아라비아 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그곳에서 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2:15). 점차 불어난 미디안 족속들은 목축과 상업을 주업으로 하여, 활동무대를 시내 반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아카바 만까지 넓히고 있습니다( 36:35; 13:21). 따라서 미디안 장로가 어느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인지는 분명히 단정할 수 없지만, 문맥상 모압이 도움을 청하기에 가까운, 즉 모압 근처의 미디안 인들이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모압 왕이 미디안 장로를 찾아 나선 것은 유목 생활과 무역을 통하여 견문이 넓은 그들에게서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는 단서나 약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5: 그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가로되~발락이 사자들을 브돌에 보낸 것은 발람의 탁월한 복술에 관하여 미디안 장로들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4). 브돌은 유프라테스 강변 즉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그곳 에는 잡다한 우상 숭배자들과 복술가들이 모여들게 되었으며, 그 당시, 발람은 특히 복술가로서 최고의 명성(용하기로 소문난)을 얻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모압으로 부터 400마일이나 떨어진 북부지역 브돌까지 모압 왕 발락이 도움의 손을 청하였 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짐작케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신론자였다. 둘째는 마귀의 유혹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복술자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는 마귀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발람의 마음을 유혹하여 끌어당겼습니다.

 

6: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본 발락이 복술자 발람을 초청하면서 상당히 그를 높이는 것은 점쟁이나 무당이 복을 불러오는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믿은 까닭입니다.

. 당시 ‘복술가’(코셈)이라고 불리던 발람은 축복 선언과 저주 선언에 있어서 상당한 효능을 거두던 자로 정평이 나 있었고, 발락은 작은 기적이나 행하는 마술사 대신 그를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멸하고자 했습니다.

 

7: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 러~여기에서 복술의 예물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저주를 해 주는 대가를 말합니다.

 

8: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실제로 발람은 여호와의 선지자는 아니나 신접행위와 같은 주술적 방법으로서 사람을 미혹케 하던 자입니다( 18:11, 12). 그가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그가 여러 신들에 대하여 박식한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9,10: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와 함께한 이 사람들이 누구냐?=이 말씀은 발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아니고, 이방술사에게 마저 현현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였던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과 더불어 발람도 역시 창조하셨고 능히 지배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람은 그들이 발락이 보낸 자임을 고백합니다.

 

11: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있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하나이다~. 여기서 발락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의 이심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혹시 이스라엘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2-14: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언약을 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15:1-21) 하나님 외에는 그 주신 복을 번복시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저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부탁이나 권면이 아니요, 모압과 발람의 음모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발람은 비록 거짓 신들에 의하여 점을 치는 자이기는 하였지만, 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경고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락의 장로들에게 그냥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15-35절은 발락의 거듭된 초청에 발람이 결국 모압으로 향하게 되다.

15,16: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매.=

발락이 더 높은 귀족들을 보내었다는 것은 더 큰 성의를 보이고 복채도 더 많이 보내게 되었습니다. 발락은 복채가 적어서 발람이 거절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오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발락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개념이 없었으므로 오직 세상의 권력과 재물로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17: 내가 그대로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발락은 발람을 설득하고자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 조건은 최고의 명예와 최고의 권력이었습니다.

 

18,19: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할지라도=여기에서 발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마치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기다려 보자’는 계속되는 말을 통해서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그의 우유부단함도 볼 수 있습니다.  

 

.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하나님께서 발람에 대한 경고를 풀어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가을 부릅니다. 그런데 함께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발람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처방입니다.

 

21,22: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니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발람은 하나님의 역설적 경고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합리화시키는데 이용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모압 왕 발락의 뇌물에만 눈멀지 않았더라도 ‘함께 가라’는 말씀을 ‘가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나귀가 천사를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도 합니다. 단지 나귀는 하나님의 의지와 이적에 의해서, 보고, 말하는 능력을 임시로 부여 받았던 것입니다.

 

24: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나귀가 밭으로 들어갈 때에 발람은 채찍질하여 길로 올라서게 했습니다. 그 길은 좁아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를 피할 수밖에 없어서 밭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발람은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지팡이로 나귀를 마구 때려줍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나귀가 말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너를 죽였으리라.” 계속해서 나귀는 “나는 네가 오늘까지 일평생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하니, 발람이 “가로되 없었느니라.”고 합니다.

 

31: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이렇게 우상숭배하는 자들이나 복술자들은 정말 짐승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밝히시고 사자를 보고 그제서야 땅에 엎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발람에게 짐승보다 못하다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너는 나귀를 세 번 때렸지 만, 나귀는 나를 보고 세 번이나 피하였기 때문에 네가 살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분명하게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32) 즉 다시 한번 모압으로 가지 말라는 의도를 보여 주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를 이용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시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을 역이용하시고자 발락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36: 발락이 발람의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 = 아르논 가의 성읍은 모압의 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메소포타미아로부터 모압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발락은 국경까지 나와서 발람을 영접하였습니다.

 

37: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발람을 물질과 명예로 회유하려는 발락을 노력이 엿보입니다.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을 발람의 주술로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샤머니즘 숭배자였습니다. 그는 어리석게도 사탄에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38~40: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수 있으리이까~=발람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하였지만, 그가 메소포타미아의 자기 고향으로 발길을 돌이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진실성이 결여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하나님께서 혹시 모압 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41: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락은 발람을 매우 융숭하게 잘 대접하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바알 산당으로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바알을 숭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산당이 있는 곳에서 이스라엘 진영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압의 신은 ‘그모스’가 주신(主神)입니다.  그모스는 암몬과 모압에서 숭배한 신으로 머리는 황소이고 몸은 사람입니다. 그모스는 전쟁의 신으로서 그를 섬기므로 승전한다는 미신이 있었습니다. 그모스에 대한 제사는 인신공양입니다. 산 사람을 제물로 태워 죽여 제사를 드리는 방식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잘 몰랐던 발락이나 거짓 선지자 발람이나 다 어리석은 시도를 행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을 알되 제대로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노여움을 사거나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하게 되고, 엉뚱한 소모적 행동을 함으로써 낭패와 수치, 심지 어는 멸망함을 당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바로 아십시다. 힘써 여호와를 알고 복되게 섬기십시다. 여호와를 범사에 인정하며 사랑과 공의를 베푸십시다. 할렐루야!

110223 안익선목사 / 참조: 행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