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1장 강해( 바벨탑 사건과 셈의 족보)
서론)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이 땅을 깨끗케 하신 후, 노아와 그 자손에게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시고, 또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지 않겠다고도 하셨습니다(창 9:12-17).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도 주셨습니다(창 8:17, 9:1, 7).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11장에서는 인간들이 자신의 능력을 확신한 나머지 자기들만의 도시와 탑을 짓기로 결정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땅에 흩어 버리시게 됩니다. 한편, 셈의 가 문, 훗날의 아브람의 가문에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본론)
가) 노아 후손들이 바벨을 통해 인생들의 영광을 구하다
노아 후손들이 이룬 세상의 언어는 하나였습니다(1절). 노아의 후손들은 이주를 하다가 동쪽 땅, 시날 평지 즉 바벨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2절).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 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4절)고 결의하였습니다.
성과 집을 짓고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여 그들 자신들을 하나의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 가려 고 했습니다. 인간의 뛰어난 능력을 상징하는 한 성읍과 그 상징인 하늘에 이르는 높은 탑을 건축하려 했습니다. 그것으로 위대한 세계적 중심지를 이루려고 했습니다(4절).
건축자재로 돌을 활용하기 어려웠던 그 곳에서 그들이 개발했던 건축 방법은 진흙을 물로 개어 벽돌 모양을 만들어 그것을 불에 구워, 단단한 벽돌을 만들고 역청(아스팔트)으로 고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건물을 건축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의 목적은 이 땅에서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고자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모여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의미에서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첫째, 바벨에 모인 사람들은 “땅에 (흩어져)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둘째,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으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의 교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을 요새화하여 그 성에 큰 탑을 완성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 들은 하나님만 섬기고 순종하라고 주신 재능을 이 세상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쓰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우리가 내려가서 (말)에 혼란을 일으켜서 서로 알아듣 지 못하게 만들자”(7절)라고 하십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자연재해로 치셨습니다. 이제는 인간 들의 단합을 붕괴시켜 버리십니다. 통일된 언어를 치심으로 인간의 행사들을 혼란케 하셨습니 다.
결국 단합과 협력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오히려 혼란의 결과를 낳았고 “바벨”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8~9절).
사람들이 협력하고 평화를 만드는 목적이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끼리는 좋고 화목하지만……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는 의도는 멸망을 초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것은 심판이라기 보다는 구원의 은혜일 수 있습니 다. 더 큰 죄를 짓지 않도록 사랑의 매를 대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계획과 도모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했는지…..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인류를 향한 ‘생명보존’을 약속하셨기 때문에(창 6:18-20; 8:21; 9:8-17) 노아의 홍수 때와는 달리, 창11장 부터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은혜를 베푸시고자 인내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종종 우리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큰 업적을 성취하려 하는데 우리의 은사를 낭비해선 아니 됩니다. 우리는 은밀한 중에 보시고 판단해 주시고 나중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은혜로 갚아 주시 는 하나님을 소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기에만 좋아 보이는 것, 세상 정욕을 이루기에 좋은 것들에 노예가 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 갈 수 있도 록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 합니다.
나) 셈의 후손의 족보와 번성(10-32절)
10절부터 셈의 후예에 관해 소개합니다. 10장 후반부 부분의 상세 반복이 있는 부분입니다. 10장에서 셈à 벨렉까지 이어 후예를 소개한 부분을(10:21-25) 반복해서 알려 줍니다(11:10
- 17).
아브람의 아비 데라와 그의 아들들인 아브람과 형제들과 아브람의 조카 롯까지 말씀합니다.
데라의 후예 : 이렇게 생육하고 번성하던 셈의 후손의 가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27절에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 세 명을 낳았습니다. 데라의 막내 아들 하란은 롯을 낳고 죽었습니 다. 그리고 데라의 첫 장남 아브람은 사래와 결혼했지만 “잉태하지 못함으로 자식이 없었더라” (29,30절)고 하십니다. 사래가 불임이었습니다. 낳고 낳고 이렇게 계속되던 자손 번성의 이야기 가 다소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하란의 아들 경우, 아들 하란이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어서 조카 롯만이 덜렁 남았습니다.
데라는 이유가 뭔지 모르지만 갈대 우르라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떠났습니다. 북서쪽으로 이사했습니다. 이사한 지역을 죽은 아들 ‘하란’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데라는 하란에서 250세 에 죽었습니다.
그의 조상 셈은 100세에 첫 아들을 낳았고 그 다음에 500년을 지내며, 600살을 살았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수명도 줄어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육하고 번성하는게 어려워진 이 위기의 가정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새로운 복을 주시게 될 것 입니다.
결론)
인생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려고 사람들과 힘을 합치는 일로 그들에겐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 들이 닥쳤습니다. 언어가 혼잡해짐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시도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교만한 사람들은 차고 넘칩니다. 하나님없이 무언가 잘 해보려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신통한 치료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 하신 분이지만 하나님과 동등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아주 낮아지고 겸손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죄인 된 사람들의 희생양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높이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교만과 죄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서로를 섬기는 새로운 공동체 교회의 지체들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으 면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들을 살아갑시다.
우리에게도 데라(아브람의 아버지)의 가정처럼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에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 니다. 이 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립시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불평하지 마십시다. 하나님 을 더욱 신뢰하고 감사하고 기대하는 우리가 되십시다. 할렐루야!
082224 안익선 목사/ 참조: 축제님 블로그
'창세기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13장 강해(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람과 롯) (0) | 2024.09.12 |
---|---|
창세기12장 강해(아브람을 부르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1) | 2024.09.12 |
창세기 10장 강해(대홍수 이후 인구의 번성) (2) | 2024.08.17 |
창세기 9장 강해(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가족) (0) | 2024.08.17 |
창세기 7장 강해(방주로 들어 간 생물들과 홍수 심판의 시작) (0) | 2024.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