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창세기 13장 강해(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람과 롯)

호걸영웅 2024. 9. 12. 22:55

창세기 13장 강해(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람과 롯)

서론)

기근을 피해 가나안 남부에서 애굽으로 갔던 아브람이 사래의 미모 때문에 아내를 누이동생이라 속여 소개한 결과 , 하나님이 간섭하심으로 바로왕에게 책망을 듣고 간신히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 오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부를 축적하였고 롯과는 분가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아브람은 헤브론으로 내려 갑니다.

 

본론)
)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람(1-9)
아브람은 애굽에서의 부끄러운 사건을 겪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팔레스타인에서만 머무시며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다, 대제국 애굽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거기에도 계시고, 누구에게나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막대한 부를 주셔서 애굽으로 내려갈 때보다 훨씬 더 부유하게 되어 가나안으로 되돌아오게 하십니다.

(1-2)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아브람이 거부가 되어 가나안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것은 두 가지입니다.

1)아브람이 애굽에서 믿음을 잘 지켰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이 없었더라면, 살기 위해 냈던 아브라함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이 어그러질 뻔했습니다. 아브람이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의 결과였고,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었지 그 원인이 아브람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뭔가 우리 주변의 여건이 개선되면, 이것이 그간 이어온 내 신앙생활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이 경우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고,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신실하게만 살아가면 됩니다.

2)두 번째는 아브람이 애굽에서 출발하여 광야가 펼쳐진 네게브로, 이어서 벧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여정을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지켜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애굽의 경계를 넘어 광야와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보호하시며 그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3-4)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이 마침내 전에 장막을 쳤던 벧엘과 아이 사이,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던 곳에 이릅니다. 애굽에서는 아브람이 제단을 쌓았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13장에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던 곳에 이르러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아브람이 진일보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도 회복되었고, 약속의 땅에 다시 머물게 되었지만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가 발생합니다.

 

(5-6)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

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절에 보면,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원주민들로서 더 좋은 땅을 차지하고 살았습니다. 아브람과 롯은 나중에 이주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원주민들이 차지하고 남게 된 별로 좋지 못한 땅을 목초지로 삼고, 한정된 우물을 확보하여 서  로 나눠야 하는 어려운 형편이었던 듯싶습니다. 양과 소에게 풀과 물을 먹여야 했던 양쪽 목자들이 처음 보는 사이도 아니고, 오랜 시간 동안 동고동락한 사이임에도 다투기 시작했다는 7절의 진술과 롯이 땅을 선택할 때, 온 땅에 물이 넉넉한 곳을 바라보았던 10절의 롯의 시선을 통해서 이들이 당면했던 물과 목초지의 결핍이 얼마나 극심했던 문제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남이 아닌 친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꼭 알아야 할 것이, 참고 인내하면 시간이 해결해주는 갈등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어 더이상 걷잡을 수 없는 갈등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생사가 걸린 갈등이었기 때문에…… 서로 분가해야 되겠다고 아브람은 생각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직면해서 서로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아브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롯을 부릅니다.

(8-9)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가 갈라질 것을 제안합니다. 관대하게, 롯이 먼저 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양보합니다. 롯이 어떤 땅을 선택하든 롯과 반대편으로 행하는 그 곳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이 아브람에게 생겨났습니다. 그곳이 객관적으로 좋지 않은 땅일 수도 있고, 지금 불편하게 살고 있는 이 땅과 견주어도 살기 어려운 땅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 땅이 오히려 자신에게 더 적합한 곳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소돔으로 옮겨간 롯(10-13)
한편 땅을 먼저 선택할 권리를 부여 받은 롯은 아브람의 제안을 받아들여 어떤 땅을 선점할 것인지 궁리하여 보았습니다.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니, 지금 아브람과 롯이 머무는 벧엘 지역은 해발 880m에 이르는 유대 산지였으므로, 남동쪽에 위치했던 장엄한 요단 계곡이 눈에 들어옵니다. 요즘은 갈릴리 호수에 댐을 건설하여 요단 강이 보잘것없어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계절에 따라 수량이 많을 때는 엄청난 수량을 자랑하던 요단 강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 동편에서 요단 강을 가를 때, 곡식 거두는 시기라 언덕에 넘쳤다(3:15)는 기록을 참고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롯의 눈에는 이곳이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아 보였기 때문에 이곳을 선택하여 이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곳은 13절에 나오듯 큰 죄인들이 살고 있는 타락한 지역에 불과했습니다. 롯이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선택한 이 땅이 주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롯은 오로지 보이는 것의 매력, 쾌적함에만 이끌려서 요단 지역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그는 이 선택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우리는 롯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하지 않으며,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1-12)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

롯은 자발적으로, 자기 눈에 보이는 것들만 신뢰하다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성도들 역시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구하고,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일들을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람이 헤브론으로 옮겨 가다(14~18)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아브람이 거처를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그곳에 거주하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헤브론은 벧엘에서 남쪽으로 좀 더 내려 간 곳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서는 30 km 거리이고 이스라엘의 중부지역인 벧엘에서는 50km정도 떨어진 남쪽의 요새지이기도 하며, 거인족들인 아낙 족속들이 살던 곳이기도 합니다.

 

 결론)

오늘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묘사됩니다. 예배자로서 아브람은 갈등에 적절히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예배자로서 아브람은 믿음을 좇아 행했고, 롯에게 너그러움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이기적이지 않았고 관대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090424 안익선 목사/ 참조: 이창호A, 한국 컴퓨터 선교회,유평교회 설교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