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사도행전 25장(아그립바와 버니게 앞에 선 바울)

호걸영웅 2024. 12. 5. 00:39

사도행전 25(아그립바와 버니게 앞에 선 바울)

서론)

벨릭스에 이어 신임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는 부임하자마자 매우 골치 아픈 사건 앞에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부임 후 3일만에 예루살렘에서 만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을 접한 베스도 신임총독은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직 총독의 임무는 물론이거니와 유대 지역의 분위기와 특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내리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자신이 가아사랴로 가야 하니 그곳에서 다시 재판을 하자고 전했습니다.

 

베스도 총독의 말대로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온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중대 죄목으로 바울을 고소했으나, 베스도는 바울의 범죄사실을 입증하지는 못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을 풀어주지 못하는 배경은 신임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유대 지도자들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바울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이 신임총독 베스도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난감한 문제를 상위법정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유대인과 바울 간에 고소와 변론에 대한 상소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유대 종교와 문화를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찾아왔습니다. 베스도에게는 지금 자신의 상황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며 A.D. 48년에 삼촌이 다스리던 레바논과 안틸레바논(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 사이에 이는 산맥, 최고봉은 남부 헬몬산(높이는 해발 9232피트= 2770미터, 산맥의 일부는 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골란 고원입니다) 사이의 작은 왕국을 이어받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유대의 대제사장 임명권과 회당의 통치권도 로마로부터 위임을 받아 가지고 있었으며, 53년에는 빌립과 루사니아(침례 요한 때부터 시리아 다마스쿠스 일대인 아빌레네의 분봉왕)가 다스리던 지역을 포함하는 더 큰 영토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친로마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새로운 로마 총독이 부임할 때마다 그를 방문하여 경의를 표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동석한 버니게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큰 딸(1 3녀 중)이며 남매가 함께 베스도 총독을 찾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론)

)베스도 앞에서 변론한 바울(1~12)

베스도 총독은 자연스럽게 유대인인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 사건에 대한 자문을 구합니다. 부임 후 첫 번째로 맞이한 사건을 잘 처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터이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에게 자신의 유능함이나 예의 바른 처신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들은 로마법에 근거한 처벌을 내리기에 충분한 사항들이 아니었고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도 존재하지 않았음과 유대인들이 고소하는 내용은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문제이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내용임을 아그립바 왕에게 설명하게 됩니다. 18절과 19절입니다.
)아그립바에게 자문을 구한 베스도(13~22)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고 했죠.

사실 베스도 총독은 꽤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상황 상 유대인들의 요청을 로마법과 상관없다 하여 무시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부임하자마자 첫 사건에서 유대 지도자들의 의견을 마냥 무시하기에는 그 후폭풍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로마법상 아무런 죄가 보이지 않는 바울을 유대인의 손에 죽게 버려두는 것도 자신의 명예에 금이 가는 일이었습니다. 25 19절과 20절입니다.
=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면 오가는 도중에 죽게 될 것이 십중팔구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의 재판을 거절하고 로마로 가서 가이사에게 상소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로마 선교를 고대하던 바울이 로마 군인들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로마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상소하는 방법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습니다. 21절입니다.
=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라고 했어요.

지금까지의 재판상황을 베스도 총독에게 전해들은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말을 직접 듣고 또 보고 싶어 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의 입장에서도 유대교 안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함으로 유대 지도자들의 많은 반감을 사고 있는 빅뉴스의 장본인이었던 바울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튿날 접견 장소에서 만나게 됩니다. 23절입니다.
=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접견장소로 번역된 헬라어 ‘아크로아테리온’은 심문을 위하여 마련된 강당 같은 장소로서 재판장이 아니라 공청회나 청문회장과 같은 곳입니다. ‘아크로아테리온’에는 바울과 바울을 고소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신임총독 베스도, 아그립바 왕과 함께 가이사랴 최고의 권력자들이 여럿 함께 했습니다.

 

)상소의 근거를 아그립바에게 구한 베스도(23~27)

그 가운데에서 베스도 총독은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이 청문회에서 바울 상소문 자료를 얻고자 한다고 고백합니다. 24~27절입니다.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베스도의 고백처럼 바울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천부장 루시아와 전임 총독 벨릭스가 바울의 죄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신임 총독 베스도도 로마법 상으로는 바울의 어떤 죄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무죄가 확실하다면 바울이 더 이상 감옥에 갇힐 이유가 없으나, 유대인들의 여론이 상당히 악화되었기 때문에 석방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이 바울에게는 참으로 억울한 상황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안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존재합니다. 국가적인 조직이나 권력의 힘에 의해 바울은 패배하고 굴욕당하는 것으로만 여겨질지 모르나, 바울의 무고한 나날 뒤엔 바울을 로마로 보내셔서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부활하여 살아 계신 주 예수님과 마주했던 경험이 있는 바울은 이 모든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죄가 없다고 스스로 밝혔음에도 끝까지 바울을 죄수라고 언급하는 베스도 총독은 진실을 밝히지도 못했고, 자기모순에 빠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무력한 총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치적 명분이나 자신의 이익 때문에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27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로마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고령의 나이임에도 믿음의 쓴 잔을 거부하지 않고, 사명의 거친 길도 감당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발적인 격리 가운데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명분과 융통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참 진리를 따르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고후 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 이익이나 명분, 체면치레, 재물 등 때문에 공의를 저버리거나 마땅히 해야할 증언을 포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 늘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주님의 나라를 위해, 그 영광을 위해, 낙심 되는 일이나 힘겨운 일들이 종종 있다하여도 예수 그리스도 죽음을 몸에 짊어진 자(십자가를 진 자) 같이 묵묵히 인내하고 극복해내는 우리의 삶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01524 안익선 목사 / 참조: 김대인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