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사도행전 27장 강해(광풍을 만난 바울과 276명의 구조)

호걸영웅 2024. 12. 5. 00:42

사도행전 27장 강해(광풍을 만난 바울과 276명의 구조)

서론)

23장에서 바울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고요.
이 말씀이 있고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와 같이 로마에서도 주 예수님에 대해 증언해야 한다고 하신 사명은, 마치 그를 단숨에 로마로 이끌어 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무려 2년간 가이사랴로 이송되어 지루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미결수의 신분이었음에도, 그는 자그마치 2년의 세월을 갇혀 지내야만 했습니다( 24:27). 유치장에서의 2년을 하루 같이 여긴 바울에게 마침내 27장에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본론)

)시작 된 항해: 가이사랴에서 미항까지(1-8)]
[(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은 바울과 죄수들을 이탈리아로 이송하기로 결정하여 이송의 책임자를 황제의 직속 부대인 아구스도 부대의 백부장 율리오로 정했습니다.  
미결수였던 바울과 달리 당시 이탈리아로 보내지는 죄수들은 이미 중형이나 사형이 선고된 사람들도 몇몇이 있었을 것입니다.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아드라뭇데노는 소아시아 북서쪽 끝에 있던 항구도시였습니다. 아드라뭇데노 배는 그 지역에서 건조되어 그 도시를 출항지로 삼았던 선박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 배는 수리아(이스라엘 북부 및 레바논 지역)와 소아시아를 항해하는 무역선으로 필요에 따라 여러 곳에 기항했습니다. 
율리오는 바울과 죄수들을 이 배에 태웠고, 정확히 어떻게 동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울의 동역자 아리스다고도 승선했습니다.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이튿날 배는 레바논 지역의 지중해 연안에서 대표적인 항구였던 시돈에 정박한 배는 화물을 싣고 내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율리오는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어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하역을 마친 배는 다시 출항했습니다. 

[(4-5)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서풍)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시돈에서 소아시아까지의 항로는 구브로 남쪽 해안을 따르는 것이 최단거리였고 일반적이었습니다. 시돈을 떠난 아드라뭇데노 배 역시 이 항로를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불어 닥치는 거센 맞바람을 버텨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내 바람을 피해 구브로 섬의 동북쪽을 끼고 돌아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해안을 지나는 행로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배는 2주 만에 겨우 무라에 정박했습니다, 무라(소아시아 남중부)에서는 좋은 소식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때마침 이탈리아로 가는 이집트 북부 항구인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난 율리오는 죄수들과 함께 곧장 배를 갈아탔습니다. 이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까지 애굽의 곡물을 운반하는 대형 곡물 운반선이었습니다. 승선한 인원이 276명이었다는 사실( 27:37)을 통해, 우리는 그 배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가는 일반적인 항로는 그레데 섬의 남방을 거쳐 가는 것이 최단거리였고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여의치 않을 때는 우회 항로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드라뭇데노 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대형 선박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배도 몰아치는 북서풍을 이겨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알렉산드리아 배는 곧 출항했습니다. 

[(7-8)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알렉산드리아 배는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렀습니다. 순풍을 타면 이틀이면 도착할 거리를 여러 날이 걸려서 도착했습니다. 이 마저도 더욱 매서워진 바람으로 인해 더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더는 거센 바람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알렉산드리아 배는 그레데 섬을 바람막이 삼아 남쪽으로 돌아 간신히 미항(Fair Havens)에 도착했습니다. 
고된 여정에 지친 이들은 미항에서 잠시 숨을 돌렸지만, 예상보다 지체된 일정 탓에 이송 책임자였던 율리오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광풍 유라굴로를 만나다(9-26)]
[(9-10)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금식하는 절기는 유대인들의 대속죄일로 양력 9월 말이었습니다. 당시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계속 이어지는 돌풍으로 인해 항해가 매우 힘든 시기라고 합니다. 과거에도 난파의 경험(고후 11:25)을 했던 바울은 배와 짐뿐 만 아니라, 자칫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미항에 겨울 동안 머물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욱 귀 담아 들었습니다. 

[(11-13)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선장과 선주는 미항이 겨울을 나기에는 많은 불편이 있다고 하며 차라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뵈닉스 항으로의 이동할 것을 추천했습니다. 이곳은 겨울을 나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한쪽은 서남쪽을 다른 한쪽은 서북쪽을 향해 있어 바람의 방향을 파악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할 수만 있다면 속히 로마에 도착하고 싶었던 율리오에게 솔깃한 이야기였습니다. 때마침 불기 시작한 순한 남풍에 율리오는 주저 없이 닻을 올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

[(14-17)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순풍을 맞으며 누렸던 출항의 기쁨은 잠깐이었습니다. 섬 가운데서 일어난 광풍 유라굴로는 순식간에 거대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마구 뒤흔들었습니다. 이전에 만났던 맞바람은 미약하게나마 방향이라도 잡아갈 수 있었지만, 유라굴로는 방향을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매서웠습니다. 이들은 해안선에서 밀려나 어디론가 떠밀려 가게 되었습니다. 
그레데 섬의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인 가우다 아래를 지날 때, 이들은 간신히 거루(거룻배; 돛 없는 작은 배)를 갑판 위로 끌어 올렸고, 밧줄로 선체를 동여 맬 수 있었습니다. 배가 남쪽으로 밀려 내려가고 있음을 눈치 챈 이들은, 북아프리카의 모래톱인 스르디스에 걸려 파선될까 싶어 조금이라도 떠밀려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닻(σκεος)을 내렸습니다. 유라굴로(북동풍)는 여전히 기세 등등했습니다. 

[(18-20)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광풍이 이틀째 계속되자 선원들은 생존을 위해 바다 위로 짐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없어서는 안 될 배의 기구들까지 모두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더이상 배에 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그저 버티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여기서 기자 누가는 당시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 여러 날 동안에 해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뱃사람들에게 해와 별은 길잡이였기 때문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은 이내 절망에 사로잡혔는데, 이때 바울은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1-26)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미항)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했습니다.
바울은 굶주린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절망하지는 않았고, 그들 가운데 선 바울은 지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배는 파손되겠지만, 생명에는 손상이 없을 것이라 선포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간밤에 자신을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의 메시지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광풍 유라굴로 속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며칠이나 지났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절망했습니다. 반면 동일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바울만은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약속의 말씀을 모든 것 위에 두고 있었던 까닭이었습니다. 그가 가이사랴의 감옥에서 2년을 하루 같이 여길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로 하여금 미결수의 신분으로 유치장에서 2년을 보내게 하시고, 광풍 유라굴로를 경험하게 하신 이유는, 그가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이와 같이 고된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276(바울 포함)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7:44). 바울을 로마로 이끌어 가시는 이유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섬에 도착하여 고물(배꼬리 부분)과 이물(배 앞머리 부분 )이 다 파손된 배를 버리고 모두가 부유물을 의지하여 헤엄을 치며 무사히 한 섬에(멜리데) 상륙하여 구조되게 되었습니다.

결론)

주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는 무엇을 기준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 가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상황과 환경이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하나님 말씀과 반대된다면 우린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아울러 유라굴로와 같은 상황과 환경을 마주한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살리려 하심을 봅니다. 잠언 24:16=의인은 일곱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103024
안익선 목사/참조: 박성호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