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위한 조건, 세가지 (창세기 45:4~8)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6.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
서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 혹은 심령의 상처를 많이 입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보다 더 아프고 더 치료되기 힘든 경우가 많음을 깨닫습니다. 우리 성도들이나 저에게도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의 부분들은 너무나도 많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좀 더 가까이에서 우리 형제, 그 자매의 삶을 알게 되면 그 상처들의 크기는 물론 다를지라도, 그 상처들은 여전히 아리고 아프기 마련입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을 보니까……요셉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저는 요셉의 삶의 일부를 통하 여 , 구체적으로 우리 내면의 상처를 어떻게 발견하고 치유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주제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본론)
가)요셉의 삶의 간략한 요약
창세기의 대표적인 모범적 인물의 한명인 ‘요셉’ 은 아버지 야곱의 열두아들 중 열한번째 아들로서 야곱의 두 아내였던 레아와 라헬 중, 더 많은 사랑을 받은 ‘라헬’에게서 늦은 나이에 태어난 아들이었고, 또 다른 형제들보다 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부모의 사랑이 요셉에게 집중되었을 때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그만큼 많은 시기와 질투가 유발되었다는 점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편애함 으로써 채색옷을 입히고 애지중지한 만큼, 역설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나머지 형들에겐 아버지의 그 부족한 사랑이 가시가 되어 그들을 찔렀던 것이긴 합니다.
그리고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감정에 결정적으로 불에 기름을 부은 사건은 두번에 걸친 요셉의 꿈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요셉은 첫번째 꿈을 꾸게 되는데, 이렇게 그는 꿈을 형들에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8)라고요.
형들이 이 말을 듣고 상당히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요셉은 두번째 꿈을 꾸고 는 “내가 또 꿈을 꾼 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창. 37:9)라고 말합니다. 마치 형들이 요셉을 향해 절하게 된다는 내용의 요셉의 말에 그들은 이제 더욱 요셉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들이 세겜(요단강 중서부,야곱의 집, 헤브론에서 80km 거리))에서 아버지의 양떼를 치고 있을 때,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형들에게로 심부름을 보냈고, 그가 그들을 찾아 갔을 때, 형들이 그를 멀리서 보고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창. 37:19)라고 비꼬듯 말하며 그를 죽여버리자고 논의합니다. 결국 그를 죽이는 대신 지나가던 아랍 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요셉을 노예로 팔아 버립니다 (창. 37:27~28). 그때부터 요셉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됩니다.
무역 상인들에 의해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갔고, 그는 그 집에서 성실하고 지혜롭게 일하여 주인인 보디발이라는 시위대장의 신임을 받아 그 집 모두를 관리하는 총무가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용모에 반해 그와 잠자리를 같이하기를 갑자기 요구했고, 그것을 요셉이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요셉이 자신을 겁탈 하고자 했다’고 그 남편에게 거짓 누명을 씌워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됩니다 (창.39장). 그러나 요셉은 그 감옥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로 형통하게 되었고, 감옥에서 인내하며 지내는 중, 바로 왕이 꾼 꿈을 해석함으로 일약 순식간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창. 40~41장).
이제 바로의 꿈대로 온 천하에 7년의 흉년이 시작되자, 가나안 땅에 살던 야곱과 그 아들 들도 양식이 풍부한 애굽을 찾아 오게 됩니다. 그리고 요셉이 자기를 노예로 판 형들을 만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떻게 요셉은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었는지?”를 알려줍니다.
나)요셉이 상처를 치유 받은 3가지 이유
1)첫째,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인물 중, 요셉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도 드물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셉의 삶 자체가 파란만장함의 여부를 떠나서 요셉이 겪은 대부분의 사건들이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억울한 점 투성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가 어린 시절, 철모르고 꿈 이야기를 함으로써 형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음은 사실이 지만, 그렇다고 동생을 노예로 팔아 넘기는 형들의 행동은 너무도 잔인하고 악했다는 점입 니다. 이때 요셉이 받았을 충격과 절망감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어땠을런지는 상상하기 조차 힘듭니다. 더군다나 성적으로 문란한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는 사건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녀가 몇 번씩이나 준수한 요셉을 집요하게 유혹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그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거역)하리이까” (창.39:9)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이런 고백은 그의 모든 삶의 자세는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주인의 아내와의 불륜은 당연히 육신의 상전인 보디발에 대한 배신이겠지만, 이런 불륜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두려운 일은 진정한 주인되신 하나님 을 거역하고 범죄하는 것임을 요셉은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고로 요셉은 감옥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이 상황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물론 요셉도 낙심과 좌절의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사실 요셉에게 더욱 중요했던 것은 요셉이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이 모든 부정적이고 원망스런 상황을 이겨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날마다 그와 동행하여 주셨고, 상처를 치료하여 주셨으며, 부모와 형제와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진정한 위로와 사랑으로써 그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2)둘째,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으로써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요셉은 30여세 즈음에 그 당시 초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극적으로 형들과 상봉하게 됩니다. 그 내용은 <창세기 42장> 이후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말씀은 (창. 42:6~9)입니다. 거기를 보면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라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요셉이 다시 형들을 만나서 그들의 절을 받게 되었을 때, 그에게 불현듯 떠오른 것 은 어렸을 때 꾸었던 그의“꿈들”이었습니다. 즉‘자기 짚단을 향해 형들의 짚단이 절했 던 꿈’, 그리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를 향해 절하는 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이 주신 꿈들이 성취되었음을 자신이 비로소 깨닫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 그 꿈들 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그가 그때서야 분명히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꿈들의 참된 의미가 무엇이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있습니 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 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v.5,7)라고 합니다.
요셉이 말의 의미는 ‘나는 지난 세월 형들로부터 노예로 팔리게 된 이 사건이, 결국 하나님 의 크신 섭리로 인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약 형들이 나를 노예로 팔지 않았다면? 역설적으로 자신은 결코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 게 되었다면 형들 가족을 포함한 세상의 수많은 생명을 보존하고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런 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v.8)고 요셉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이 얼마이든지 간에, 이 지나온 시간 가운데 경험한 모든 것들은 그 어느 것 하나 우연이 없으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 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와 상처까지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마음의 상처도 하나님께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깊으신 섭리와 뜻을 발견할 때,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는 도리어 그분의 선한 도구가 되었었음을 깨닫게 되며, 그리할 때 우리의 상처는 아름답게 회복될 수 있을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3)셋째, “ 용서함”으로써 상처는 치유됩니다:
사실 이런 ‘상처의 치유’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 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생각으로는 ‘신앙적 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내게 상처준 그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내 자신을 그 불행한 기억과 상처로부터 자유케 되는 최선의 길’임을 알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 상처가 아물 만 하면 또 다시 어떤 계기로 그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고 다시 금 마음의 상처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우리 마음의 상처는 없어지지 않고, 치유되지 못합니다. 용서는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달랐습니다. 요셉은 지난 시절의 모든 고난과 상처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이해했기에, 형들을 도리어 다독여주고 용서하고 평강을 선언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v.5)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 6:12)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결국 ‘용서 ’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쳐 주시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분명한 도전은 ‘만약 하나님 아버지께 죄 용서함 받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먼저 너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나의 죄는 하나님께 용서받기 원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큰 모순이요 잘못된 기도라는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요셉을 기르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설명합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면서도 많은 고난을 겪었다’는 것과 ‘그가 겪은 고난과 상처가, 도리어 생명들을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바로 죄 없으신 성자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의 많은 질고와 고난을 겪으시고, 마침내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그의 생명을 내어 놓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 게 된 바와 같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고, ‘그 많은 역경을 거쳤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라고 말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욥기에서의 욥은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고난 가운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 23:10)라고요. 이렇게 욥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정금 같은 믿음으로 승리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요셉과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향한 선하신 뜻과 섭리가 계셨음을 더욱 더 깨닫고, 그리 인해 나의 모든 고난과 상처가 치유함을 받고, 나에게 상처 준 그 영혼을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로 용서하여 아직도 치유 받지 못한 모든 아픔과 상처들이 변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변화되는 기적이 오늘도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021125 안익선 목사/ 참조: 손영만 목사(아포슬 한인 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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