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영들을 분별하는 기준 6 (약 3:13-18)

호걸영웅 2025. 3. 19. 23:59

영들을 분별하는 기준 6 ( 3:13-18)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서론)

이 시간에 “영들을 분별하는 기준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예수 를 모신 후, 사단의 유혹이나 도전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에덴 동산에 스며든 사단은 우리 라고 예외를 두진 않습니다. 즉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하고 거룩하고 순수하게 지켜 나가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고도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경우도 허다합 니다. 이단 교리에 빠져 불행해진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여러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하여도 영들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 심령은 온통 사탄의 소굴이 되고 맙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모신 신령한 성전과 같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모시면 다윗과 솔로몬처럼 하나님이 크게 쓰시고 영광 받으시지만, 잘못하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주님을 밖으로 내칠 수도 있고,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사탄이 왕 노릇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가 영들을 분멸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6가지 영분별의 기준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론)

)첫째 기준은 성결입니다.

17절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영이나 교리가 성결한가 성결하지 않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여기 “성결”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결함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도덕 기준을 잘 모르겠으면 십계명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성결”은 본래 구약의 제사 용어로써 제사장들이 하나님이 계신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씻고 또 씻고, 그리고 ‘하나님께 성결’이라고 기록된 두건을 이마에 두르고, 자나 깨나 하나님께 거룩하려고 노력했던 목적과 순종이었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죽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모시고 은혜 생활하려면 마음의 죄를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거룩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했습니다. 성결하지 않는 것들은 아예 통과가 안됩니다. 여기서 잘못되면 다 실패합니다. 그래서 첫째가 성결이라고 했습니다.

 

  12:14-15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라”고 경고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마음에 시험 들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마음 지키셔야 합니다. 사울 왕은 초기엔 큰 능력과 은사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 둘째 기준은 화평입니다.

 내 마음에, 혹은 내가 속한 단체나 그룹에 있어서 화평을 이룰 수 있는가? 그리고 이웃과도 화평을 도모하려는 생각인가? 가 중요합니다. 화평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화평을 주는 일을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주셨습니까? 화평 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화평하고 이웃과 화평을 이루기 원하신 까닭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주여 주여! 해도 화평을 어지럽히는 자들이나 행동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이단 종교는 자기들을 믿으려면 가족들과 헤어지라고 요구하는 종교집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과만 동거하며 껌을 팔거나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다 바치라고 했습니다. 사단의 집단이나 하는 일들입니다.

 

가끔 우리 심령에 화평을 파괴하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적인 양심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했어도 율법적인 양심이 되면 정죄감이 떠나지 않아 늘 마음이 고통스럽고 받은 은혜 가 다 소멸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은혜를 누리는 신앙 생활의 강적이 됩니다. 

양심의 화평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 죄를 회개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다는 요한 사도의 말씀(요일 1:9)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용납하신 아버지의 사랑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이 진리를 모르면 예수님을 사모해도 심령은 화평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 죄는 다 사함 받았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리적으로만 알면 뭐합니까? 회개한 죄에 대해서 계속 죄책감을 가지고 산다면 말이죠.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런 일에 실패 하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적 기독교로 사도 바울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진실로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보혈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다음은 관용입니다.

 “관용”이라는 말은 “너그럽고 부드럽고 사려 깊다.”는 의미로서 이해하려는 용납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려면 대인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께 잘해도 영이 고장 나거나 막혀버립니다. 15:7 "그러므로 그리스도 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했듯이, 용납이란 타인을 그 모습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용서보다 더 큰 것이 용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한두가지나 몇가지 사건에 대한 것이지만, 용납은 어떤 사람 전체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받으실 때 우리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다 받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맘에 들든 안 들든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4:32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또 마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5) 하셨고, 십자가 상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려 주옵

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라고 예수께선 기도하셨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을 보세요. 욥이 어떻게 큰 환난에서 벗어났습니까? 자기를 정죄하고 책망한 친구들을 용서하고 복을 빌 때 “여호와 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 다 갑절이나 주셨다”(42:10) 고 했습니다. 관용 없이 행하는 세상 사람들을 뉴스에서 보셨습니까? 당한만큼 반드시 갚아 준다는 사람들……그들은 분명히 사단의 영에 잡혀 있는 자들입니다.

 

)다음은 양순입니다.

 “양순” 이란 ‘유페이데스’라는 헬라어 단어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감사로 받아들이고 순종함을 의미합니다. 말씀에 순종함이 얼마나 귀합니까?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고,  심령도 깨끗하게 됩니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기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순종하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같이, 삭개오와 같이 주님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그 기쁘신 뜻대로 사시기를 힘쓰시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말씀 존중이 하나님 존중이요, 말씀 거부가 곧 하나님 거부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라 했어요(삼상15:22-23). 이처럼 은혜롭고 거룩한 생활을 하려면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 절대 겸손하고 순복하셔야 할 줄 믿습니다.

 

한때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라의 말을 듣다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13년이나 끊어졌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 다음은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해야 합니다.

 긍휼이란 뭘 의미할까요? 성경 원문은 ‘엘레오스’인데, 타인의 비참한 형편에 대한 동정과 도움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이 또한 긍휼입니다. 2:4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 이라 했듯이,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질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여기셨습니다.

 

2:13에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한 것처럼, 긍휼의 힘은 놀랍습니다. 징계도 면하고 심판도 면하게 합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파격적인 사랑이 긍휼입니다. 이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5:7)하셨습니다. 야고보의 메시지는 더 강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2:13). 여러분이 종종 긍휼이 없는 잔인하고 매정하고 야박한 사람을 보셨습니까? 동냥은 못 줄지언정 쪽박 은 깨지말라는 말의 의미가 뭘까요? 긍휼이 없으면 반드시 정좌와 심판이 있습니다.

 

요일3:14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했습니다. 긍휼의 사랑 없으면 은혜 로운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스데반에게 그토록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것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 서도 핍박자들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선한 열매라고 부릅니다. 긍휼한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섯 번째, 편견과 거짓을 버리라입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십계명도 거짓 증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라고 할 것은 예라고 하고 아니라고 할 것은 아니요 라고 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말하기 곤란한 것은 글쎄요...라고 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아는 체하다가 남을 해치는 경우 도 있습니다. 또 누구를 두둔하려다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법정에서는  위증 이라고 합니다. 위증은 매우 무서운 죄입니다.

 

또 편견이란 또 얼마나 추악한 죄입니까? 인종차별도 편견에서 왔습니다. 제가 전에도 말씀 드렸지요? 사람들이 흰 강아지 검은 강아지 차별 없이 좋아하면서, 왜 유독 인간들은 피부 색깔 때문에 차별을 하는지요?  편견은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편견을 버립시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을 뽑으려 할 때, 여러 명의 이새의 아들들을 만납니다. 그때 외모가 준수하게 체격이 좋은 형들이 왕이 될 자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굴 택하셨나요? 형제들 중에 가장 키도 작고 가장 무시 당하는 작은 막내 다윗을 뽑으셨습니다. 외모는 하나님 보시기에 전혀 중하지 않습니다. 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혼탁한 세상에 있는 영들을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수많은 이단들이나 악한 영들의 활동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영이 어디에 속하였는가를 구분하고 대처할 순 있습니다. 또 우리의 영이 희락과 화평이 없을 때, 나의 신앙이 잘못된 부분은 없는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제가 6가지 영 분별의 원리와 법칙을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의 원활하고 강같이 흘러야 할 은혜들을 누리기 위해, 이런 점들을 잘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우선은 영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들이 하나님 말씀과 다르면 그들은 멀리하고 경계하며 정죄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관용할 것은 관용하며 화평과 거룩함을 온전히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되신 이름으로 축원드립 니다. 할렐루야!

 

 

030425 안익선 목사/참조: 허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