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
서론)
‘포커 페이스’란 말이 있습니다. 카드놀이를 할 때 상대방이 내가 무슨 카드를 들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무표정하게 표정을 짓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좀 더 쉽게 게임에서 이길 텐데…도무지 상대방의 생각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이는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 벌주시는 하나님, 때리시는 하나님, 혹은 징계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구약에선 하나님이 조인들을 엄히 징계하는 장면들의 꽤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서운 분으로 다들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는 상황에서 창세기나 레위에서 보여 주시는 하나님과는 너무나 다른 하나님을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소개한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기억할 것이 있는데……즉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라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선 누가복음 11장에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세상에 어떤 아비가 자식이 떡을 달라는 데 돌을 줄 아비가 어디 있으며, 자식이 생선을 달라는 데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느냐? 세상에 못된 아비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독생하신 아들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란? 세상에 못된 아버지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십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구하시려고 독생자까지 내어 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 점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생각은 정확하게 어떤 것들인지 4가지로 나누어 상고해 보겠습니다. )
본론)
가)하나님은 우리를 권고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10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일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권고란 ‘돌보아 준다’는 뜻의 한자어입니다.
예레미야가 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 당시는 바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
년을 포로 생활하는 중이었습니다. 장장 70년형을 언도 받은 죄수와 같았습니다. 이들은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이 70년간을 포로생활 할 때, 이들의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요?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실까? 과연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실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예 버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앙의 힘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반드시 돌아보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아주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외면하지 아니하고 다시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을 반드시 돌아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빼앗아 도망자의 삶을 사는 야곱에게도 20년 만에 찾아오신 바 있습니다. 그리곤 “야곱아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곤경에 빠졌을 때, 이삭이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곤 도우시고 말씀하시고 약속을 되새겨 주십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백성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깁니다. 계약을 위반한 겁니다. 말씀을 버리고 악한 일들만 합니다. 그때마다 주의 종들을 통해서 수없이 경고를 했건만…그들은 전혀 듣지를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들을 매서운 매로 때리시기를 작정하신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왜 때립니까? 사람 노릇 제대로 하고 세상에 제발 잘되라고 때리시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바벨론을 몽둥이와 채찍으로 삼아 침공하도록 하여 왕과 쓸만한 귀족들과 기술자들을 죄다 포로로 붙잡아 갔습니다. 그 후 10년 만에 또다시 바벨론이 침공하도록 해서 수 없는 사람을 죽이고 잡아갔습니다. 그러고 또 10년만에 바벨론이 쳐들어 가서 모든 것을 불태우고 부숴버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하시기를 “칠십년이 마치면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괜찮다 괜찮아! 앞으로 2-3년만 견디면 나라가 회복 될거야.목숨걸고 싸우면 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에게 저항하다 죽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선 오늘도 믿음의 사람들을 때리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가지 종류의 매를 드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잘 하라는 겁니다. 바로 살라는 겁니다. 가만 두면 안 되겠으니 때리시는 겁니다. 그러나 때리신 하나님은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를 돌아보십니다.
나)두 번째,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려 함입니다. (11~)
11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이라 했습니까?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짜고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재앙입니다. 포로로 잡혀갔으니 평안할 리가 있겠습니까? 온갖 멸시와 천대, 학대를 받아 가면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은 감당키 어려운 끔찍한 재앙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본래 너희가 망하고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재앙이 목적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재앙 뒤에 있는 ‘평안을 주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 동안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받았음에도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우상이나 섬기고 죄악을 물 마시 듯했던 겁니다. 그렇게 살아온 이스라엘을 가만 두면 세상에서 아주 쓸모없는 백성이 되고 말겠기에 매를 드셨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으로부터 온 재앙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 목적이요, 결과적으로는 그들에게 참다운 평안을 주시려는 게 목적이라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재앙을 만난 사람들에게 주시는 첫 번째 말씀이 “두려워 말라”였습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께선 뭐라고 하셨지요?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날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하셨어요.
다)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장래에 소망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 하반절은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합니다.“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 주지 않고 잘 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생각은 “장래에 축복을 주시려 하심”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런 사람들은 내일이 없고 장래가 절망적인 사람들입니다. 자살하는 분들의 결핍된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돈? 명예? 가족? 아닙니다. 희망입니다. 장래의 소망이 없습니다.
예화) 미국에 ‘썬더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가로서 사업을 하는데 사업하는 족족 실패로 인해 고민 고민하다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입원을 하게 됐고 번민과 좌절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는 자살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중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송가 소리가 그의 귓가에 은은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찬송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찾아가 봤는데……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여전히 어디선가 바람결에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썬더슨이 찬송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니 70세가 다 된 노인이 있었고 그는 전쟁터에서 다리를 잃었기 때문에 의족을 했고 지팡이를 집고 다니면서 병원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썬더슨은 깜짝 놀라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그리 좋아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십니까?” 그 때 노인이 대답하기를 “예, 저는 다리를 잃고 절망 속에서 헤매다가 자살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천국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이렇게 기쁘기에 찬송을 부르며 살고 있답니다. 나는 내 마음이 너무 기뻐서 찬송을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썬더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저렇게 기쁘게 살아가는데 나는 아직은 멀쩡한 양 손과 발을 가지고, 그 사람보다 더 건강한 몸을 가지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라며 예수를 믿었고, 꿈과 소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서 다시 사업을 일으켜 마침내 큰 부자가 됐다고 했습니다. 뭐 이런 경우는 너무나도 많지요. 한국이던 미국이던….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오늘 보다는 내일의 복을 더 주시려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안에 항상 소망이 있습니다.
라)하나님의 생각은 항상 응답해 주시려는 생각입니다.
오늘 12절에 보니까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전심으로 찾고 부르짖으라 하십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에서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갈릴리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날 때 제자들이 두려워 떨면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우며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그때 주무시던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어찌해서 불안해하며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믿음 없는 제자들을 책망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그 즉시로 잠잠해 졌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항상 좋은 것을 준비하고 예비하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궐(골레스탄 궁전?)이 있는데 그 궁궐에 들어서면 벽과 기둥이 수정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이 번쩍번쩍거리는데, 무지개가 아롱거리는 것처럼 휘황찬란하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왕궁을 짓기 위한 원래의 계획은 거대한 통유리를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유리를 수송하던 차가 실수를 해서 그만 그 유리가 몽땅 깨어져 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모두 실망을 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연구를 한 끝에 깨진 유리조각을 이용해서 모자이크를 하자고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리를 좀 더 작게 부수어서 그 조각들을 붙였더니 휘황찬란한 오색을 발하는 더 아름다운 궁전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살다가 때때로 실패 할 수 있습니다. 역경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깨질 수도 있습니다.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할 수도 있습니다. 길바닥에 나 앉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창조해 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요16장 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요14장 1절에선“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하십니다. 그러므로 낙심치 말고 하나님의 생각을 신뢰하십시다.
결론)
여러분, 우리는 전능자가 아닙니다. 아니 가장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작은 동물만도 못할 때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잘 살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을 돕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기에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권고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좋은 것을 준비해 주십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가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반드시 달려와 주십니다. 이런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섬길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022525 안익선 목사/참조:개혁교단 홈 자료
'설교모음(Korean sermon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유를 위한 조건, 세가지 (창세기 45:4~8) (0) | 2025.03.20 |
---|---|
영들을 분별하는 기준 6 (약 3:13-18) (0) | 2025.03.19 |
치유를 위한 조건, 세가지 (창세기 45:4~8) (0) | 2025.02.23 |
존귀한 삶의 비결 (역대상 29:26~30) (0) | 2025.02.23 |
인내에 대한 교훈 (약5:7-11) (0) | 2025.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