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기도의 교훈 (누가복음 22:39-42)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
41.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
서론)
어떤 신문에 이런 질문이 상담란에 올라왔다고 합니다.
Q. 저는 로또 복권을 매번 삽니다. 그러나 한 번도 당첨된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는 설교를 듣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등에 당첨되면 십일조는 물론 교회 건축헌금도 하겠다며…… 기도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응답이 없습니다. 더 기도해야 될까요? 라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많은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 다. 어떤 분들은 ‘복권 당첨 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왜 나쁜가’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이 떡이 되게 하라 그리고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사단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욕망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물론 돌이 떡이 되게 할 수도 있고 무에서 유를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돌로 떡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나 요행을 거부 하신 것입니다. 내가 미리 답을 정하고 기도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차이가 없습 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내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죠.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신약 전체를 보면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앞둘 때 마다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 쳐 주셨고, 인기가 최고조에 달해 무리들이 몰려들 때에도 예수님은 오히려 한적한 곳으로 피하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전 금식 기도하셨고, 제자들을 세우실 때에 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도인은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가 나옵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합니다.)
본론)
가) 겟세마네 기도는 거룩한 습관을 따라하는 기도였습니다.
39절=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다”라고 했어요.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습관의 힘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은 그 생애의 배후에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습관들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행동은 성격을 형성하고 그 성격은 인격을 만들어서 결국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만듭니다. 그래서 3살 버릇 80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어떤 한 사람의 습관이 역사를 바꾸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역사를 바꿔 버린 히틀러의 아침의 늦잠 습관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잠의 스트레스 완화 효과 때문인지? 역사 속에는 긴박한 상황 와중에 잠을 즐기는 리더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윈스턴 처칠, 장제스, 아돌프 히틀러 등입니다. 그 중 아돌프 히틀러의 아침 잠을 자는 습관은 세계사 한 장면을 완벽히 바꿔버립니다. 히틀러는 보통 새벽에 자고 오전 늦게 일어날 때가 많았는데, 혹시 누가 깨우면 불같이 화를 내서 부하들은 그가 잠잘 때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새벽 5시에 히틀러 부하들에게 포착되었지만, 아침 6:30분 상륙 시작 후에도 부하들은 히틀러의 잠을 차마 깨울 수 없어... 오전 11시에 그가 깰 때까지 보고하지 못했다고 합니
다. 히틀러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교두보를 확보했고 독일군은 패전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요. 만일 그때 히틀러가 깨어 있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좀더 일찍 대응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으리라고도 합니다.
작은 습관이 역사를 바꾸듯이, 좋은 습관으로 무장된 사람은 미래가 형통합니다.
다음 세대나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특별히 거룩한 습관을 갖도록 돕는 것입니다. 힘들 때 원망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과 힘들 때 찬양하고 기도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다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거룩한 습관을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공교육은 사회적 습관을 가르치고 부모는 영적 습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민족적인 차원에서 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민족은 게으른 습관이 있습니다. 어떤 민족은 속이는 습관이 있습 니다. 어떤 민족은 노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 민족의 미래를 어둡게 만듭니다.
반대로 어떤 민족은 정직한 습관이 있습니다. 친절한 습관, 근면한 습관들이 있습니다. 이런 습관은 그 나라를 부강하고 아름답고 명예롭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목해야 할 표현이“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 도 따라갔다”입니다. 그냥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항상 습관적으로 가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도……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을 앞 둔 순간에도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위기를 접하게 되면 기도 안 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주변에 위기를 당한 사람을 보면…… 정작 위기 속에서도 기도하지 못합니다. 왜? 기도의 습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늘 예수님처럼 습관을 따라 기도하고, 습관을 따라 말씀 보고, 습관을 따라 예배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축복해 주실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나)겟세마네 기도는 나를 부수고 깨뜨리는 기도였습니다.
40절“그 곳에 이르러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신 뒤에”= 40절에 나오는 ‘그 곳은’ 겟세마네를 가리킵니다.
겟세마네는 예루살렘 성문 밖 동쪽 편에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게 되면 올리브산 서쪽 중턱에 겟세마네 교회가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지하 제단 쪽에 모자이크 성화와 바닥에 크고 넓은 바위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기도하셨을 것이라 추정하는 바위 위에 교회를 지은 것입니다. 일명 만국교회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 레…등등의 남아메리카 16개국에서 헌금을 하여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그 교회 주변에는 올리브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나무들 중에는 수령이 2천 년이
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나무들이 예수께서 기도하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겟세마네는 '틀' 이라는 뜻을 가진 '가트' 라는 히브리어와 올리브기름을 뜻하는 '슈마님' 이
합쳐진 단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겟세마네’는 올리브기름을 짜내는 틀이 널려 있는 곳이라 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리브기름을 짜는 것처럼 심령을 쥐어짜며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언제나 올리브기름은 매우 중요한 것이죠. 11월이 되면 검게 물든 올리브 열매를 따서 열매를 부순 후, 기름을 틀에 넣고 기름을 짜냅니다. 기름을 짤 때에는 무거운 돌덩이 같은 것을 부순 올리브 위에 자꾸 올려 짓눌러 기름을 짜냅니다.
거기서 첫 번째 짜낸 기름= 성전에 바치는 거룩한 기름으로 사용(성전 촛대를 밝히고 왕과 대제사장 기름부음용)하고요. 두 번째 짜낸 기름= 가정에서 식용으로 사용하고
세 번째 짜낸 기름= 등잔을 밝히는 기름과 여자들 화장품과 약품으로 사용하며
마지막 네 번째 짜낸 기름= 잿물을 부어 비누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름을 다 짜고 남은 올리브의 찌꺼기는 땔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 할 때에 스스로가 깨어지고 부서지고 상한 올리브 열매 가 되셨습니다. 올리브에서 기름을 얻기 위해서는 깨어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자신의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옥합 은 깨뜨리기 전까지는 향을 발하지 못합니다. 깨어질 때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옥합을 깨뜨 림으로써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외롭고 힘든 예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상한 몸과 영혼에 온 인류의 무거운 죄의 짐을 올리시고 또 올리도록 하시어 그 측량 못할 죄들의 무게에 온 몸이 완전히 짓눌리셨습니다. 마치 올리브를 짓눌러 기름을 짜내듯이 우리의 죄는 상상도 못할 중압감으로 주님을 짓눌렀고... 최후의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찌꺼기만 남을 때까지 주님은 온 몸을 내어 주셨고 다 짜고 남은 올리브 찌꺼기를 땔감으로 사용했듯 이 주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태우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영성이란 부서짐을 수용하고, 부서짐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 님의 거룩한 손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은혜가 임하기 위 해서는 딱딱하고 굳은 마음이 부서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깨어짐의 은혜를 주십니다. 고난을 종종 주십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날 때마다 예수 안에서 나의 부서진 삶, 찢긴 삶, 연약함도 결국은 은혜가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 겟세마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기도였습니다.
42절=“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옵소ㅅ서.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할 수만 있다면 이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것은 솔직 한 예수님의 인간적인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할수록 예수께선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고, 결국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는 기도는 이기적인 기도라기보다는 고통을 당하는 자라면 누구나 드릴 수밖에 없는 기도입니다. 육체의 가시는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활동적 장애였으니, 이것은 결코 이기적 인 기도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 고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에게 족하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고난이 저절로 사라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 가 사망의 골짜기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어려움을 피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와 용기를 줍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지시를 받고 3일 동안 모리아 산으로 올라갈 때 마음 이 어땠을까요? 아브라함은 아마도 눈물의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랐습니다. 때론 내가 가는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뜻일 때 순종할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귀한 것은 아파할 때 아파하면 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뜻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급성장한 대형교회 중에 ‘사랑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의 옥한흠 목사님께서 소천하시기전 25일 동안 중환자실에 있으신 후에 “이제 이 세상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
더 이상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건 하나님께 염치없는 일이다”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보통은 살려달라는 기도가 당연한 것인데 염치없다고 생각을 하신 것을 보면서 옥 목사님 의 영성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고통 속에서도, 어려움 속에서도, 병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깊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가정 과 일터에서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은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결론)
예수님께 겟세마네는 어떤 곳입니까? 습관적으로 자주 찾으시는 곳, 나의 욕망을 깨뜨리는 곳이고,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찾고 구하던 곳이었습니다.
누가복음 말미에서 보면 이 겟세마네에 두 그룹이 올라옵니다. 한 그룹은 예수님과 제자들이고 또 한 그룹은 예수님을 잡으러 올라오는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의 무리들입니다. 가룟 유다를 보면 그도 예수님의 습관을 따라 이 곳에 왔기에 장소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자신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깨뜨리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곳으로 삼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절 감사주일을 3주 남겨 놓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의 뜻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생각해 보고 내 뜻, 내 욕심보다는 나의 존재의 목적에 맞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결심하는 주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피할 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 는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고집’ 이 아니라 아버지 뜻을 수용하려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실 수 있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능하신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032525안익선 목사/참조:김성현 목사 (Joseph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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