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의 가치와 특징(고전13:1-3)
서론)
고린도전서 13장은 세상에서 가장 탁월하게 하나님의 사랑, 혹은 참되고 고귀한 사랑에 대해 묘사한 성경 부분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에 집착한 나머지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매우 무감각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물론 기적도 필요하고 여러 종류의 은사도 필요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기적도 필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제일은 아가페 사랑 필요합니다.
총칼로 원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으나 사랑으로는 원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사랑은 만능입니다.
히틀러 치하에서 '살아있는 순교자'라고 부르는 루마니아의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 하루는 바로 자기를 잡아넣고 고문하던 비밀경찰 대위가 잡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떻게 여기를 들어오게 되었소?" 물었더니 "나도 기독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다시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소?" 물었더니 그가 이야기를 합니다.
“며칠 전에 열두 살 난 어린이가 꽃다발을 들고 자기를 찾아와서는 자기 아내에게 갖다 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웬 것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어린이가 "저는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감옥에 갇히셨습니다. 어머니의 생일에는 꽃다발을 꼭 드려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다 붙잡아갔기 때문에 오늘은 드릴 수가 없어서 당신께 가져왔어요. 이것을 당신 부인께 갖다 주세요"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건 왜?" "어머니께서 항상 가르쳐 주셨어요. 원수를 사랑하라고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붙잡아간 원수인 당신을 내가 사랑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후 이 경찰은 어린이가 안겨준 사랑의 꽃다발을 붙들고 이 아이와 함께 울면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마침내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한 신문기자가 테레사 수녀에게 '테레사 수녀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그 수녀님은 '사랑이란 캘커타의 한 소년이 사랑의 집에 들고 오는 사흘 분의 설탕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이윤즉슨, 어느 날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캘커타에 퍼지게 되었는데, 그 즈음에, 그 지방에 사는 한 소년이 그의 어머니에게 "어머니, 오늘부터 사흘동안 전 설탕을 먹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제가 먹지 않은 그 사흘 분의 설탕을 제게 주십시오." 라고 했고, 사흘 후 이 소년은 자신이 아낀 사흘 분의 설탕을 들고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집에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캘커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집을 돕기 위해 결단하고 그 날 저녁부터 자기 몫의 설탕을 먹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간 사람은 오직 어린 소년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사랑은 보고, 느끼고, 그리고 책임지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사랑의 가치와 본질에 대해 나누며 은혜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
본론)
가)사랑의 5단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이름도 모를 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꼭 그렇게 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겐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5단계가 있습니다.
①받는 단계: 무조건 받기만 하는 어찌보면 유치한 단계입니다.
②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단계: 주고받는 보상적 관계입니다.
③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는 단계: 성숙한 사랑입니다.
④자기에게 해롭게 하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단계: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⑤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내 생명조차도 내 놓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입니다.
고전13장은 그 유명한 사랑의 장이라고 부르고, 12~14장은 은사 장이라고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신비적인 것만 추구하여 예언이나 방언이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우쭐하고,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무시하고 교만하여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그 모습을 사도 바울이 보았습니다. 고로 바울은 그런 그릇된 성도들을 향하여 12장 마지막 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고하면서 고전 13장을 기록했습니다.
헬라어 성경은 ‘사랑’을 네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⑴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스톨케'로 표현했고, ⑵ 남녀간의 이성적인 사랑을 '에로스' ⑶ 친구 간의 우정적인 사랑은 '휠리아' ⑷그리고 하나님의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희생하신 사랑은 '아가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나) 사랑의 가치(1-3)
이제 본문 1~3절은 아가페 사랑의 가치를 말씀해 줍니다.
①1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늘의 방언, 곧 천사의 말을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얼마나 그 말이 아름답고 감미로우면 하늘의 방언, 천사의 말이라고 했겠습니까? 사람이 외국어만 잘해도 부러운데 아주 신비스러운 하늘의 말, 즉 천사의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부럽고 신비로울까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그 소리는 한낱 울리는 꽹과리 소리요 무의미한 소리입니다. 꽹과리는 구리로 만든 대야 같은 악기로서 아주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엄청 시끄러운 것을 의미합니다. 소음공해를 의미합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방언이나 예언을 하게 되면 우월감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교만했고, 편을 갈랐으며 파벌을 만들어 다투었습니다.
히틀러는 대단히 탁월한 웅변가였습니다. 그는 베를린 광장에서 "유대인은 반드시 죽여
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고 독일 국민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런 히틀러의 연설을 듣고 수많은 나치의 군인들이 혈안이 되어 유대인들을 학살했는데, 이때 천만 유대인 인구 중에서 600만을 무자비하게 죽였다고 합니다. 사람을 마구 학살하는 데에 사람의 말이 이렇게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말을 유창하게 한다고 해도 그 말속에 진실(생명)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②2절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했어요.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인류는 미래에 대하여 불안감과 초조함을 가지고 내일을 바르게, 정확히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은 매우 존중을 받아왔습니다. 성경엔 무수한 예언의 책이기도 합니다. 또 산을 옮길 만한 그런 믿음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능력이지요. 그러나 그런 능력이 사랑이 결여된 채 사용된다면 재앙일 수도 있습니다(예;침략자의 원자탄). 그래서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은 당연한 결과가 됩니다.
③3절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또 전 재산을 털어 구제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 했습니다. 가난 구제는 엄청난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제할 때, 반드시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구제헌금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왜? 생색을 내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항상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④3절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 하십니다. 헌신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섬길 때, 사랑에 마음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인기를 위해서나 학점을 많이 받으려고 봉사 점수가 필요해서라면 순수하진 않은 헌신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가 예수의 사랑을 경험하자마자 그는 즉시 이웃에 대한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기억해내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내어놓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를 감동시킨 것입니다.
다) 사랑의 특징적 요소 5가지
①사랑은 관심입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꽃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꽃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 주고, 소독을 해주고, 풀을 뽑아 줍니다. 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꽃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사랑과 관심은 정비례합니다.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관심이 크고, 사랑이 적으면 관심도 적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면 아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사랑하면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웃과 교회와 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②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책임이란 말을 영어로는 '대답한다' 또는 '응답한다'는 뜻입니다. 책임을 느낀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부를 때 내가 대답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몸이 아파서 엄마를 찾으면 어머니는 곧 대답합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가든지 약국에 가서 약을 사 오십니다. 책임감은 요청에 대한 대답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서 우리를 부를 때, 우리는 당장 달려가서 나라를 위하여 싸우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됩니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 깊은 책임을 느끼며, 책임은 사랑에 비례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 중 하나가 무책임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 명령과 사명에 책임감을 가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③사랑은 존경입니다.
사랑은 남을 지배하거나 억압하거나 착취하지 않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의 자유를 존중하고 아내의 인격과 생각과 개성을 존중합니다. 얼마나 상대방을 존중하느냐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 인격을 존경합니다.
④사랑은 이해입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이해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사랑은 이해를 넓혀주고, 이해는 사랑을 더 깊게 만들어 줍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해심이 부족해지고, 이해심이 적으면 사랑도 부족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아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보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시인이자 성자로 불리우는 '타고르'도 “사랑의 별명은 이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고민, 불만, 고독, 슬픔을 깊이 이해합니다.
⑤사랑은 기꺼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줍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아까워서 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주는가를 보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적게 사랑하면 조금 주고, 깊이 사랑하면 많이 줍니다. 사랑하는 것과 주는 것은 정비례합니다. 많이 주면 많이 사랑하는 것이요, 적게 주면 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주고, 정성을 주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줍니다. 사랑하면 주는 것이 기쁨이요, 보람이요, 축복이요, 만족입니다. 주고 나서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결론)
우리는 대개 이기적입니다.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무한히 무조건 주는 희생적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도 다 아가페 사랑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의인도 아니 우리 죄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들은 어찌해야 할까요? 받은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열심히 그 거룩하고 아름답고 무한한 사랑이 여러분에게서 흘러나와 여러분의 주변이 그러한 사랑에 흠뻑 적어버리게 되는 놀라운 은혜와 역사가 있게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031625 안익선 목사/참조: 송수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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