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가정에 은혜가 넘치게 하라 (엡 5:31 ~ 엡 6:4)

호걸영웅 2008. 5. 10. 09:43
 

              가정에 은혜가 넘치게 하라 (엡 5:31 ~ 엡 6:4)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오늘은 첫 번째 축복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는 가정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가정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쳐나는 곳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그러면 은혜가 넘치는 가정은 어떤 가정인가? 예수님이 모든 가족 관계의 중심에 계신 가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 은혜가 넘치게 하라는 말은 가족들을 대할 때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엡 5:24  “교회가 주께 복종하듯이 복종하라”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엡 5:25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 

자녀는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엡 6:1 “주 안에서 순종하라”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엡 6:4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런 가정이 은혜로운 가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이 좀 애매하게 들리십니까?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분이기에 우리도 가족들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남편의 죄가 아내의 죄이고 아내의 죄는 남편의 죄이고, 자식의 죄가 부모의 죄이며 부모의 허물이 자식의 허물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고 은혜가 넘치는 가정은 그런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다 없다.”는 무엇으로 말하는 것입니까? 서로 허물과 죄를 지적하고 비난하는 곳에는 은혜가 없는 것이고, 서로의 허물과 죄를 대신 짊어지려고 하는 곳은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은혜는 서로 상대방의 허물과 죄악을 내가 짊어지는데서 부터 작용하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텍사스에서 전도 집회를 할 당시 한 신문 기자가 사모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미국 가정마다 이혼의 위기, 고통을 경험하고 사는데 목사님 사모님은 남편하고 이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은 365일 전도 대회로 돌아다니고 미국에서 5남매를 엄마 혼자 키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그랬더니 그 질문에 사모님 대답이 “이혼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죽이고 싶은 생각은 들었다.”고 했답니다. 사모님의 역할이 그렇게 힘들었다는 거지요. 오늘날 은혜가 필요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가정에서처럼 경험할 수 있는 곳도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은 큰 복입니다.

 

  어느 해 가을,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 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20년 이상 복역한 장기수, 모범수의 가족까지 초청된 특별 행사였습니다.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부모님을 등에 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효도관광 달리기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하나 둘 출발선상에 모이면서 한껏 고조됐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선수들이 그 쓸쓸한 등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고 마침내 출발 신호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주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들의 눈물을 훔쳐 주느라 당신 눈가의 눈물을 닦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의 축 처진 등이 안쓰러워 차마 업히지 못하는 아버지…….

  교도소 운동장은 이내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니, 서로가 골인 지점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듯한 이상한 경주였습니다. 그것은 결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레이스였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1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함께 있는 시간을 단 1초라도 연장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버려도 가족은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은혜입니다.

어떻게 하면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가정에 넘쳐날 수 있습니까?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한다고 은혜가 넘치지는 않습니다. 기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은혜의 역사는 이미 나를 통해서 시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십자가의 은혜가 넘치려면 가정 안에 정말 십자가 은혜를 알고 그 십자가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 안에 은혜가 흘러넘치게 됩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은혜를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가정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가정생활 중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결혼 후에는 자신의 단점이 여지없이 폭로가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적나라하게 나타나는지. 어떤 때는 자기 속에 있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단점이 결혼 후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혼자서 살 때는 자신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둘이 같이 살아보면 깜짝 놀랍니다. 내게 그런 모습이 있었는지 스스로가 깜짝 놀랍니다.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렇게 해주기는 커녕 상처만 주고 삽니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상처를 줍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걷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데이트 할 때는 사람이 멋있고 괜찮았는데 약혼식을 한 이후 사람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래서 속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습니다. 약혼식 전에는 말도 조심하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하더니 약혼식을 마치고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죄성과 연약성이 가장 정확하게 드러나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생활을 해보면 부부 사이에 또는 부모 자녀 사이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얼마나 말만 하는지 얼마나 위선자인지 다 드러납니다. 가정 생활에서 처럼 십자가 은혜가 필요한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 생활해 보면 십자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십자가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흘러 넘쳐서 온 가족들도 그 은혜를 누리도록 말입니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각자의 죄로 인하여 괴로워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까?‘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일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너도 다른 사람들을 이처럼 용납하라!‘ 


가족을 판단하고 변화시키려 해서는 진정한 가정의 변화가 없습니다.


  어떤 부인이 말했습니다. “저한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남편 앞에서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남편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으니까요.”

  저는 자라면서 정리정돈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치약을 사용할 때도 그냥 편하게 짜서 쓰곤 했죠. 그런데 남편은 달랐어요. 굉장히 작은 일인 것 같은데 싸움은 거기서부터 출발이 돼요.

 변화는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가족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우리 스스로는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내가 예수님 안에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충만하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 십자가 은혜를 누리십시오. 예수님을 은혜를 사모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남편에게서 아내에게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제일 먼저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누리십시오.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절대로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 외면하실 리가 없습니다. 


   지금 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기독교 국가가 된 줄 아십니까? 그 조상이 바이킹이요 해적이었습니다. 당시 해적들은 배를 타고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바다를 무대로 강도질을 일삼던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여자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중 신실한 기독교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나는 왜 이래요?” 탄식하며 허구한 날 울고 지내면서 가정을 등한히 했습니까?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해적의 아내가 되었지만, 여기에 보내신 뜻이 있는 줄 알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남편을 잘 섬기고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잘 양육했고 말씀으로 잘 키웠습니다.

  그러므로 해적들이 변해서 마침내 기독교인들이 되었고, 바로 저들이 개척 정신과 신앙을 합쳐서 청교도, 퓨리탄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 여인들을 통해서 그 가정과 사회가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 십자가의 은혜 안에 사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가족 안에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충분한 것입니다. 내 속에 예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면 예수님은 우리 가정을 변화시킵니다.


  이제 우리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주님, 제게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더 충만하게 부어주시옵소서. 눈을 뜨고 주님을 보게 하시고 제 심령 속에 은혜가 넘치게 하여주옵소서.”


2008.5.11. 편집/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