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낙심할 수 없는 세가지 이유(고후4:16-18)

호걸영웅 2007. 10. 25. 22:37
 

                 낙심할 수 없는 3가지 이유 (고후 4:16-18) 





  이 시간에는 “낙심할 수 없는 3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단이 자기 부하들과 함께 성도를 넘어지게 하는 무기 전시회를 열었답니다. 무기 밑에 가격표가 붙어 있었는데 어떤 무기 밑에 가장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장인 마귀에게 물었답니다. "왜 이 무기는 다른 것에 비해 크지도 않은데 이렇게 비싼 가격이 매겨져 있습니까?" 그러자 마귀는 "이 무기는 백발백중 넘어지게 하는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무기지." 그 무기가 어떤 무기였을까요? 그 무기는 낙심이라는 무기였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 중의 하나가 낙심이라는 말입니다. 낙심이라는 말은 우리말 큰 사전에는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짐"이라고 해설해 놓았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완전히 분쇄된다. 용해된다."라는 뜻이 있고, 헬라어로는 "무가치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낙심이란 달리 표현하면 시험입니다. 낙심의 수렁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 시험입니다. 어떤 신학교  교수는 영어로 씨캔 타이어드(sick and tired)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낙심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수없이 생깁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 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 날을 생각할지로다”(전11:8) 했습니다. 이 캄캄한 날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계속해서 낙심할 수 없는 세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1. 겉 사람이 후패하나 우리 영혼은 날로 새롭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했습니다. 여기 후패한다는 말은 "썩어서 못쓰게 됨. 썩어 문드러짐. 또는 철저하게 부패하다. 파괴하다. 전적으로 썩다."라는 뜻입니다. 이 겉 사람의 후패란 늙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만 늙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늙어 감을 느낄 때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낍니다. 그 건강하고 탄력이 있던 육체가 그 촉촉하고 아름답던 얼굴이 주름져 갑니다.


제가 제일로 충격이 컸던 때가 30세 때입니다. 세상을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벌써 30세라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겉 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웠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인생을 사는 비결이 있어요.


  우리 속사람만 알차면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은혜로 가득차 있다면 낙심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심령에 행복으로 가득 차고 은혜로 가득 찬데 어찌 낙심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어느 날 제가 호박을 볼 때 주님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호박은 늙을수록 보배란다. 너도 늙어갈수록 보배가 되길 바란다."는 음성이었습니다. 호박은 늙을수록 보배입니다. 늙은 호박이 좋습니까? 덜 늙은 호박이 좋습니까? 덜 늙은 호박이 아까워 삶아보았더니 맛이 없습니다.


 우리 영혼이 잘 되면 몸이 늙어 가도 늙은 호박처럼 만민의 보약이 되듯, 그 이상 더 귀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80살에도 자기 백성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120세에 자기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아브라함도 75세에 하나님이 주신 부푼 약속의 꿈을 품고 이민을 갔습니다.


갈렙은 85세지만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에 임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노년에 새로운 가문과 복을 이루어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노년에도 영광을 입고 축복을 받고 큰 일들을 거뜬히 해 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백발 노인도 젊은이 못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나이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나이를 잃어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영혼을 신앙으로 성숙시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청춘의 심정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2. 환난을 당하나 환난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17절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그랬습니다. 여기 환난을 잠시 받는 것이라, 그리고 경한 것이라 했는데 우리 인생이 정말 그럴까요? 환난이 경하기는커녕 중하기만 합니다.


  부산에 사는 어떤 분 보니까 몸의 근육이 막대기처럼 굳는 병에 걸려 입만 살았는데 날마다 그 입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잊고 세월을 보낼까 해서라고 합니다. 얼마나 그 인생 안타깝습니까? 세상의 환난도 사실은 참으로 중하고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라고 한 이유는 천국의 영광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지, 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환난을 인해 더 크고 영원하고 중놀라운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낙심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해야 합니다. 진정 환난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환난을 즐깁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호주에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 브리스베인(Brisbane)에 가면 많은 젊은이들이 파도타기로 해양 스포츠를 즐깁니다. 사람들은 집채 같은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속으로 널빤지를 발밑에 대고 곡예 하듯 파도를 탑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지만(행14:22)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롬5:3-4) 안다면 더욱 신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소망은 무엇일까요? 그 소망은 성령으로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고 살면 이 세상도 천국으로 바뀐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엔 바울 역시 몸에 찌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고질병이였습니다.

어떤이는 안질이였더고 하고 어떤 신학자는 중푸이 아니었나 하기도합고 어떤이는 심한 구타로 인한 후유증, 또는 독사에 물린 후유증이라고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 바울은 그 병을 고쳐 달라고 세 번씩이나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바울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후부터 바울은 환난이나 찔리는 가시 앞에서도 더 크고 온전한 복을 이루어주시기 위한 것으로 알고 기뻐하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성경학자 워치만 리도 그의 몸에 떠나지 않는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질병을 위하여 하나님께 금식하며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지나가는데 큰 바위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 "주여, 이 바윗돌을 옮겨주옵소서. 그래야만 배가 지나가겠나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워치만 리야, 이 바윗돌을 옮겨 주랴, 아니면 강물이 차고 넘쳐서 넘어가게 해주랴?" 그래서 "주여, 강물이 넘쳐서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강물이 넘쳐서 배가 지나가는데 꿈에서 깼습니다. 그는 그제야 깨닫고 자기에게 주신 가시를 감사하며 더욱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더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시는 것이므로 어떤 환난 중에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3. 세상에서 소망이 없어도 영원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18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여기 돌아본다는 말은 '주목하다', '소망하다'의 뜻입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가만 보면 영리한 사람들의 인생이 누구보다 불행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무엇인지 알고 나니까 너무나 실망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소망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에 기대하면 100% 낙심합니다. 자녀들이라고 소망이 될 줄 아십니까? 자식들도 기르면 기른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결혼해 보십시오. 어떤 자식은 부모님 오는 것도 꺼립니다. 자기들도 살기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 따라서는 살지만 부모가 자식 따라서 살 수 없습니다.  움직일 여력만 있다면, 주님과 함께 혼자 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일생 주를 위해 일했지만 교회가 그를 책임져 주었나요? 남는 것은 감옥살이 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지 않은 것은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쌓아 둔 영원한 상급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태양보다 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주님과 기쁜 찬송을 끊임없이 드리면서 하나님의 영광보좌를 우러러보며 생명강가에서 믿음의 가족들과 영생하며 살 것을 고대하며 살아갈 때, 그 때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봉사와 충성의 삶을 사는데 절망할 일이 무엇입니까!?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는 절망투성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낙심하지 않을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겉 사람이 후패해도 속사람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환난을 당해도 더 큰 은혜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용기와 재물을 잃어도 영원한 천국소망으로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같은 낙심하지 않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2007.1.21. 죠슈아 안


 


2007/01/13 Sat 17:4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