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방향 (롬 10:1-3)

호걸영웅 2007. 10. 25. 22:40
 

방향 (롬 10:1-3)



부지런히 도는 물레방아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열심히 살고 있습니까 신앙에서 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열심히 있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열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열심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열심을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히11:6절에서는 우리 하나님을 상주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상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기념품을 주시는 하니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기념품은 어떤 사람에게 주어집니까 최소한의 의무만 감당하면 주어집니다. 참가하는 모든 사람에게입니다. 그러나 상은 기념품과 다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기념품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상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하면서 성도의 삶이 열심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특권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게으른 것은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신앙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열심은 자동차 엔진과 같습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엔진에 불이 붙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것 처럼 더 나는 조건 더 좋은 환경이 있다 해도 내게 열심히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기술이 아무리 탁월해도 그 삶에 열심히 없다면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신앙에 있어서 성경은 성도의 열심을 강조합니다.


계3:19절에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하십니다.


딛2:14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이유를 설명하면서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을 삼고자 함이라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값없이 우리를 구속하셨습니까 선한 일에 열심내는 하나님의 친 백성을 삼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열심히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군을 선택하실 때 언제나 열심히 있는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양을 칠때 소 열두겨리로 일 할때 타작마당에서 일할 때 제자들을 선택하실때에도 고기 잡을때 세금 걷을때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핍박을 해도 열심히 핍박하는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중나는 새를 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깃줄에 앉아 있는 새를 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에 있어 열심은 신앙인을 신앙인답게 만드는 절대요인입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이런 신앙적 열심히 잘못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0:2절에는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게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종교적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금식도 열심히 했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구제도 열심히 했습니다. 또한 율법도 지키기 위한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이 열심은 일반사람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의 열심은 안타깝게도 지식을 좇은 열심히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지식을 좇은 열심히 아니라 자기들 끼리의 정한 바 된 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인 줄 알았는데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인 줄 알았는데 신앙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고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고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지만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깨닫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방향의 중요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열심은 있었는데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열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 삼지 않는 열심이었기에 달리기는 열심히 달렸는데 한참 달려가보니 엉뚱한 곳에 다다라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이 신앙인 줄 알고 열심히 달려갔는데 하나님이 아니다 하신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이 율법의 열심히 예수님을 핍박했습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마땅히 할 일을 한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의 열심으로 복음을 거부하고 복음을 거부할 뿐 아니라 사도들을 핍박하고 순교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저들을 향해 사도바울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열심은 하나님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지적은 철저하게 바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기전 복음을 영접하기 전의 열심은 어떠했습니까 스데반을 돌로 죽이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예수믿는 그리스도인을 다 잡아 죽이겠다고까지 하고 멀리 다메섹까지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갈1:14절에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 무지한 자였다 합니다. 그 무지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고 잔해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아니었으니 딤전 1:13절에 고백은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도리라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합니다. 그 열심의 결과들은 어떠했습니까 오히려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쓰여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지식에 근거를 둔 열심 말씀에 뿌리를 내린 열심히 아니면 오히려 열심을 내면 낼수록 뛰고 뛸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서4:6절에 무엇이라 했습니까 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도다 했습니다. 교회안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열심은 살리는 열심히 아니라 죽이는 열심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열심히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는 열심입니다. 마리아처럼 주의 계집종이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또 하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입니다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과오는 칭의에 이르는 의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였다해도 복음에 대한 무지는 무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나중 몰랐다는 것이 면죄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른 길에서 저는 것이 벗어난 길에서 달리는 것보다 낫다라고 말입니다.


인간은 의가 없이는 하나님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잘못본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안에서는 하나님을 만족시킬만한 의를 스스로 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의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의입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의로 하나님앞에서 서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인간은 행위로는 원천적으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생산할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의는 완전한 의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말미암은 의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다합니다. 오히려 그 하나님의 의를 핍박합니다. 복음을 거절한 유대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저들을 향한 바울의 안타까움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저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10:1절에 저희로 구원을 얻게하려 함이라 합니다. 사도바울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의 영혼구원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었는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유일한 관심사는 바로 영혼구원이었습니다. 생명이었습니다. 그 영혼안에 샹명이 활동하는지 구원이 심겨졌는지 그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가슴속에는 생명 영혼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행20:24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합니다.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이라도 던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박애적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영혼구원의 영혼의 사랑입니다. 그 영혼에 대한 특징이 바로 기도입니다. 바울은 내 마음에 원하는 바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의 구원이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들을 향한 사랑의 고통이 10:1절에서는 기도로 승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을 향한 동족을 향해 하나님이여 저들을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버리지 마십시오 기다려 주옵소서 이스라엘은 매를 맞더라도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다시 구원의 기회를 주십시오. 이것이 사도바울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