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하나님 앞에서 : Coram Deo (전 5:1~7)

호걸영웅 2008. 8. 2. 10:42
 

          하나님 앞에서 : Coram Deo (전 5:1~7)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 교회를 위해 충성했던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100년 전 체코에 얀 후스와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 때문에 화형을 당했습니다. 수도 프라하에 있는 그의 동상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지키라”.


   진리이신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칼뱅과 쯔빙글리 같은 사람은 스위스에서 도시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기 위해 생명을 걸고 헌신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가톨릭과 투쟁해서 고독한 밤을 지새우며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자기 민족을 위해 독일어로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편집자주: 또한 재침례교도들은 그 성경을 바로 알고 또 알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행하기 위해 순교한 분들이 많이 있는데 제가 기억하는 분들은, 펠릭스 만쯔, 게오르게 블라로크, 콘라드 그레벨, 휘브마이어.. 같은 분들입니다. 당시 쯔빙글리는 진리를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데는 유약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


  종교개혁자들이 갖고 있던 공통점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삶의 표어입니다. 그들에게도 고난과 외로움, 그리고 슬픔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이 가는 길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과 삶의 가치관에는 하나님이 삶을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라틴어로 “코람데오(Coram Deo)”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마음속에 삶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겠다는 결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시간의 우선순위, 중요성의 우선순위, 가치관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시간을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내용이 변화됩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문제가 발생하고 위기가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실 사람들은 비슷합니다. 그렇게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수백만 명 중에 한명, 혹은 수천만 명 중에 한명을 천재로 만들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자리 수의 지적능력을 지닌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시간의 우선순위, 가치관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1년의 가치를 알려면,  대학입시에 낙방한 재수생에게 물어보라.

1개월의 가치를 알려면, 아이를 임신예정일보다 일찍 낳은 조산아 엄마에게 물어보라.

일주일의 가치를 알려면, 일주일마다 한 번 나오는 주간지 편집장에게 물어보라.

하루의 가치를 알려면, 6명의 자녀를 두고 노동 현장에 뛰어든 일용직 근로자에게 물어보라.

1시간의 가치를 알려면, 서로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연인에게 물어보라.

1분의 가치를 알려면, 비행기를 방금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라.

100분의 1초의 가치를 알려면,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에게 물어보라.”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무언가를 이루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가치관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할 것과 나중할 것을 아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신앙은 하나님과 하나님 아닌 것을 구별할 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인간이 땅에 있는 존재인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분, 우리의 생명의 주인에게 말씀을 듣는 것이 어떤 것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시간을 드리며 예배합니다.


그런데 우린 때때로 우리의 삶을 너무 소극적이거나 틀에 갇힌 상태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잎에 참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소년 하나와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이 함께 옆자리에 앉아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낚시 솜씨가 매우 좋았습니다. 어른보다 더 많은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지켜보니까 소년이 좀 이상했습니다. 일단 고기를 잡아놓으면 소년은 손바닥을 펴서 자신의 손바닥 크기와 비교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손바닥 크기보다 더 큰 고기는 물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손바닥보다 작은 고기를 잡아서 바구니에 넣어두었습니다. 소년과 거꾸로 하고 있던 어른이 궁금해서 옆에 있던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왜 작은 물고기만 잡고 큰 물고기는 도로 물에 넣어 주느냐?” 그랬더니 소년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게 큰 물고기는 필요 없어요. 우리 집에는 25cm 프라이팬밖에 없거든요.”


  우리는 이 소년처럼 예수를 믿으면서 우리 생각으로 많은 것을 정형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 고정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풍요로움을 거절하고 있지는 않고 있는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교리 몇 가지로 신앙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신앙의 패턴 몇 가지로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고 확정지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합니다. 신앙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근심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용서의 기쁨으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포용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좁은 생각으로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신앙을 스스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인생의 주인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립니다.


  신앙에는 올바르게 사는 비밀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의심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그냥 안겨야 합니다. 인생에서 다른 것은 포기할 수가 있습니다. 기쁨이 지나면 아픔이 다가올 수도 있고, 아픔이 지나면 기쁨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 인생에 부족하고 힘든 것은 다른 것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세상 어떤 피조물로도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만 두렵고 떨린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두렵고 떨린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에도 예속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우리 인생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돈과 재물도 우리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고하면서 땀 흘린 명예와 권력도 결코 우리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것에 얽매어 있으면 우리는 인생을 비겁하고 비굴하게 사는 것입니다. 남의 눈치만을 보면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목표를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에 가장 소중한 첫 번째 것에 삶을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것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우선순위,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인생을 달려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달려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뛰는 사람과 같습니다. 실컷 수고하고 땀 흘리고 나서 왜 여기까지 왔는지 후회하는 인생과 같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우선권이 있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말을 조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본문은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말조심을 하라고 당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 많은 사람이 되지 말고 침묵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사람도 인간관계에서 말 많은 사람을 싫어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특징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자랑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남이 칭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가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자랑을 들으면서 속으로는 비웃습니다. 자기 자랑이 심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콤플렉스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의 말로만 드러내기도 합니다.


  말 많은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대화 할 때 지켜야 할 3:2:1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 번은 들어주고, 두 번은 상대방을 격려해주고, 한 번은 자기 말을 하라는 멋진 법칙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거의 거꾸로 하며 끔찍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3분 동안 자기 말만하고 2분 동안 남을 조롱하고 비난하며 겨우 1분 동안 들어주는 궁색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전도서 5:2)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고 말을 멈추는 순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 때 우리의 귀가 뚫려서 하나님의 말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참된 기도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우선적인 가치와 시간의 우선성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위치에서 새로운 변화들을 만들어 가십시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만큼 큰일을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서있는 위치에서 하나님 앞에 서있다는 심정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그럴 때 자신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됩니다. 그것이 바로 개혁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살피며 삶의 현장에 있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시험 볼 때 남의 것을 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되면 그 순간 멈추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결혼한 사람이 잘못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면 모든 것을 멈추고 배우자가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하십시오. 직장인이 단지 월급 때문에 일을 해 왔다면 하나님 앞에서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충성하십시오.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종업원을 단지 돈 버는 기계로 생각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기업의 동역자로 인격적으로 대우하십시오.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깨달을 때 변화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을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나이가 50세가 되어도 70세, 80세, 90세가 되어도 하나님 앞에서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변화시켜주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눈치 때문에 때로 비겁해지고 거짓을 행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서는 두렵고 떨리는 존재로 서고, 세상을 향해서는 담대하게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하옵소서. 시간의 첫 번째로 생각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자신과 가정과 사회가 변하고 축복의 역사가 열려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편집: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