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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약 바사제국 최초의 왕 고레스

호걸영웅 2008. 12. 13. 15:31
구약 바사(페르시아)제국 최초의 왕 고레스

  이란에 있는 많은 구약 유적 중에 가장 크고 덩그렇고 원형에 가깝게 보존 된 것이 바로 쉬라즈 120km 북쪽 파샤르가데 있는 고레스(시리우스) 왕 묘이다.

  구약 성경 에스라서, 예레미아서, 다니엘서, 이사야서 등에 많이 등장하는 고레스 왕이 필자가 살고 있는 이란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고레스 왕은 여호와 신을 섬기지 않으면서도 많은 성경 구절에 등장하게 되는가를 알아 보려고 한다.

  그 전에 이스라엘 역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B,C 1050년경 사울의 등극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왕국은 불과 4대째에 이르러 남북으로 분열하고 만다. 이러한 분열 후에도 뚜렷하게 각성하지 못하고 몇몇 왕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단절적인 종교 개혁을 제외하고는 계속 영적 침체의 늪에 빠져들어 간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급기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남북왕국의 파별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까지 선포하신다. 그 예언의 결과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남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함락되고 만다. 그 이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바벨론 왕을 70년간 섬길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이런 일련의 예언들이 하나하나 성취되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자기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계획한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그대로 진행하고 계시는 것이다.

   고레스는 페르시아 왕 캄비시스 1세와 메데(이란 북부 지방) 여인 사이에 태어난다. 고레스 외가쪽 증조할아버지는 갈대야 제국의 나보폴라살과 함께 아시리아 제국을 멸망시킨다.

  고레스의 유년 시절 땐 페르시아가 메데 속국이었으나 BC 550년경 고레스는 메데 임금인 자기 외할아버지 아스티야게스를 물리치고 왕좌에 오르면서 명실 공히 페르시아 제국의 기초를 다진다. 이웃의 작은 부족국을 치면서 전쟁의 경험을 쌓고 그러면서 힘을 키워나간다. 바로 이웃에 당대 최강의 바벨론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세계 제국을 건설한다.

  고레스는 동. 서양을 최초로 통일시켜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는 많은 속국을 거느리며 그가 믿는 아후라마즈다라는 신에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

  바벨론에 포로가 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시 살기 좋은 페르시아로 이사를 하게 된다. 고레스는 이들에게 너희들이 믿는 여호와를 마음껏 섬기라고 한다. 또 자기 언어를 마음 놓고 사용하라고 한다.

  다언어주의 다문화주의의 독특한 융화정책을 편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너희가 믿는 신한테 나의 신 아후라마즈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빌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고레스는 더더욱 강한 국가 건설과 그의 강인한 통치력으로 태평성대의 세월을 보낸다.

  어느 날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 그에게 여기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 시켜줄 것을 계시한다. 참 이상한 것이 이방 왕에게 직접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목자’, ‘기름부음 받은 자’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인 신앙 상태의 묘사가 아니라 그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70년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할 것을 수차 예언하였다. 유대인들은 BC 605년에 1차로 바벨론에 잡혀갔고 1차귀환이 BC 538년에 이루어졌으므로 그 기간이 약 70여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예언대로 고레스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백성의 해방령이 떨어진다.

  그는 히브리어로 조서를 내려 그들이 무사히 귀환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동안 전쟁으로 얻은 많은 노획물들을 그들에게 주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고 한다. 그는 말끝마다 ‘하늘의 신 여호와여’ 하면서 그가 마치 열렬한 택한 백성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사실은 그가 택한 백성이 되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예언된 성경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데 더 초점을 두고 있다.

  그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게 귀환을 한정 시킨 것이 아니라 옛날 시리아에서 포로 잡혀왔던 이스라엘 10지파의 후손까지도 모두 해방 시킨다. 포로로 잡혀올 당시 전체 인구수가 약 1만 명이었으나 70여년이 흐르면서 약 삼만 일천 명에 가까운 이스라엘 사람이 귀환하게 된다. 여기서 고레스를 해방의 도구로 사용한 깊은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를 이루기 위함이요. 또 하나님의 유일성과 전능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고레스에 의해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며 선민으로 바른 신앙을 가지길 다짐한다. 고레스가 70세가 되던 해(BC 530년) 우즈베키스탄 북쪽에 위치한 아랄 해 근처에 있는 마싸게테(Massagetae)라는 나라를 침공하다가 최후를 맞게 된다.

  그의 유언대로 그가 페르시아를 호령하면서 기거했던 파샤르가데에 묻히게 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가 죽을 때 묘석에 "나 고레스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었다.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이 다른 왕에 의해서 점령될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점령자여 그대도 언젠가는 누구에겐가 점령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묘를 건드리지 말아 달라" 라고 누군에게 부탁하고 죽었다고 한다.

  BC 330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다리오 왕이 세운 페르시야를 상징하는 거대한 왕궁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우고는, 내친김에 고레스의 석묘를 훼파하기 위해 파르갸데 까지 왔을 때, 그 비문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 뜻을 전해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말에서 내려 자신이 입고 있던 왕복을 벗어 고레스의 묘에 덮어 주었다고 한다. 최초의 제국 건설자이자 세계의 맹주로 이사야가 말했던 ‘ 하나님의 목자,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불렀던 고레스는 우리가 기대한 만큼 그렇게 화려한 궁궐이나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파샤르가데에 있는 그의 초라한 무덤을 보노라면 당시 페르시아 왕들의 무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고 또 다언어, 다문화주의 융화정책을 펴 이스라엘 백성을 무사히 귀환시켰기 때문이다.참 놀라운 구역의 역사이다.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구약 다리오 왕의 묘로 알려진 석벽 묘굴      직접 보면 정말 웅장 섬세 난공불락 묘굴




 고레스 왕이 기거했던 왕궁 터에 발굴된 유적


 허허 벌판에 고레스왕은 파샤르가데라는 큰 왕궁을 지어 기거했다. 그러나 지금 그  흔적만

 고레스 왕의 무덤   한창 수리 중   그러나 원형 그대로


 왕궁터에서 발굴된 벽화 일부


 왕궁터에서 발굴된 유물 보관 및 발굴 사무소   접근 금지



 고레스를 생각하며

출처 : 페르시아 사랑
글쓴이 : 주페르시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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