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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신앙은 가라"

호걸영웅 2011. 3. 1. 02:24

"껍데기 신앙은 가라"

경윤주 2009-03-14 06:14:32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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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신앙은 가라"
"언제까지 '교회다니는 모들도 똑같애' 소리를 들어야 하나요?"
 
한국인들이 미국이라는 땅에 정착하게 된 이민의 배경에는 기독교가 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조선인들은 인천 내리감리교회 교인 102명이었다. 이후 1924년까지 이어진 미국행에 이민의 첫 테이프를 끊은 감리교인이 많았던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들에게 교회는 민족 공동체, 문화 공동체, 신앙 공동체였다.
이후 1965년 미국 정부가 동양인 이민허용을 하면서 미주 한인사회는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새로 미국땅을 밟는 이들에게 교회는 ‘모국 어머니의 품’이나 다름없었다. 교회에 가면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교회에 가면 한국말을 할 수 있었으며, 교회에 가면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한인사회가 다양화되고 대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인사회 활동이 교회에서 여전히 많이 이뤄지고, 한인 커뮤니티 내에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유 뒤에는 이러한 이민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민사회 내 교회의 위치가 이러하다보니 ‘이민자의 70% 정도가 기독교인’이라는 통설 또한 크게 틀려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비즈니스를 하려면 큰 교회를 다녀야 한다” “장가(시집)를 가려면 청년들이 많은 교회에 나가야 한다” “결혼식때 식장이나 피로연을 제대로 하려면 교회에 다녀야 한다” “한글을 가르치려면 교회를 다녀야 한다” “부모님 돌아가실 때를 생각해서 교회에 다녀야 한다” 등 교회는 이민생활에 빠르고 쉽게 적응하는 ‘필수코스’가 된 지 오래다.
이민사회에는 수 십년을 교회에 다녀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자신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신앙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예배시간에 설교말씀에 집중하며 찬양시간에 두 손을 높이 치켜든다. 오랜 교회생활을 통해 그들의 몸에는 자연스럽게 신앙인의 형식적인 모습이 스며들어있다.
 
사례 1> 교회 안과 교회 밖에 다른 남자
 
신 씨(48세, 남자)의 신앙은 누가 봐도 신실했다. 주일날이면 어김없이 일찌감치 교회에 나와 주차장에서 안내를 하는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밝은 미소가 가득 했다. 예배 후 식사시간에는 쟁반 가득 종이컵에 물을 담아 식탁마다 나눠주었고,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였다.
그런 그가 장가를 들었다. 신랑과 신부 모두 한 번의 상처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두 번째 결혼이었다. 신부 최 씨(41세, 여자)는 그의 신앙생활을 보고 ‘이 사람이라면 인생을 다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라는 확신이 들어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이뤄졌고 교회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들의 재출발을 축하해줬다.
결혼 후에도 신 씨의 교회생활은 다를 바 없었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이 곳 저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그의 모습을 교회에서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 씨는 달랐다. 차츰 교회에서 그녀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최 씨의 안부를 물으면 남편 신 씨의 안색에는 금세 수심이 가득해졌다. “와이프의 몸이 좋지 않다”며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즈음, 부인 최 씨가 지역 내의 한 목사를 찾아왔다. 차마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며 그녀는 눈물을 쏟아냈다.
“교회에서 보이는 모습과 집에서의 생활은 전혀 딴 판이에요. 믿는 사람으로서의 말이나, 신실한 신앙인으로서의 행동은 기대도 안합니다. 그냥 사람다운 행동을 하고 날 사람답게 대해주기만 해도 좋겠어요. 함께 지내는 게 너무나 끔찍해요.”
최 씨가 쏟아놓는 말들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집 안에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야한 잡지들이 버젓이 나뒹굴고 변태스런 성(性)학대는 그녀를 좌절케 했다. 일상생활에서 부인 최 씨를 거의 종 부리듯 한 신 씨는 폭력도 서슴치 않았다. 결혼과 동시에 신분문제를 해결해주겠다던 약속은 기대 조차 하지 못할 상황이 된 지 오래다.
힘겨운 삶을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털어놓고 싶어도 가식적인 신 씨의 교회생활을 보노라면 피가 역류하는 분노를 느꼈고,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교인들과 목사의 모습을 볼수록 자신의 신앙은 차갑게 얼어붙어갔다고 고백했다.
소설이나 텔리비전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얘기지만 실제로 달라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신앙의 영적인 면은 외면한 채 형식적인 신앙생활만 지속해 온 신 씨는 ‘교회 안’과 ‘교회 밖’이라는 이중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했다.
교회 안에서 그는 고백도 없고 회개도 없고 눈물도 없었지만, 봉사와 열심만으로도 그는 ‘신실한 성도’라는 칭찬을 어렵지 않게 획득했다.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서 정작 경험해야 한 신앙의 깊은 세계는 안중에도 없는 채 수년간을 껍데기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담임목회자를 비롯한 영적인 지체들 중 단 한사람도 그의 외형만을 보았을 뿐 내면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례 2> 16년 신앙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이유
 
뒤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김씨(56세, 여자)는 올해로 집사 직분을 단 지 16년째다. 뒤돌아보면 정말 신명나는 교회생활이었다. 뒤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 교회는 줄곧 그녀의 안식처였고 삶의 의미였다.
일주일동안 생활전선에서 지치고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교회에만 오면 모두 씻겨나가는 듯 했다. 지역내에서 제법 큰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기에 봉사할 일도 많았지만 힘든 줄 몰랐다. 한글학교에서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고, 주일날 교회 식구들이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면서도 즐거웠다. 그렇게 16년을 한결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다녔다.
그러던 그녀에게 ‘병마’가 덮쳤다. 중환자실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그녀에게 바짝 다가선 건 ‘구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힘겨운 병마와의 싸움보다 더 김 씨를 힘들게 한 건 “나는 구원을 받은 걸까?” “예수님을 영접한 적이 있는가?”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안에 영접했습니다”라고 선뜻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 주일예배를 빠진 적 없던 그녀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데 위안을 삼았던 자신의 신앙생활이 ‘죽음’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짐을 느꼈다.
교회 봉사라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참여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봉사를 하고 있다’는 데서 만족을 얻었던 자신의 신앙생활이 한없이 부끄러운 일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병문안을 온 목사님과 교인들은 ‘건강을 회복케 해달라’고 기도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며 안심하라’고 위로했다. 아프기 전이었다면 ‘큰 힘’이 되었을 목사님과 교인들의 위로는 더 이상 김씨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말로 자신의 두려움을 털어놨지만 “몸이 아프니까 믿음까지 떨어졌나보다. 더 열심히 기도해. 우리도 기도해줄께”라는 말만 되돌아왔을 뿐이다.
그녀 앞에 다가온 ‘죽음’은 자신의 신앙생활이 믿음생활이 아니라 ‘교회생활’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16년동안 착실하고 성실히 교회생활을 한 그녀는 지금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16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신앙의 원점에 다시 서있다.
 
한인 범죄자 중 85%가 기독교인
 
이러한 고민은 비단 김 씨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수십년동안 교회에 다녀도 진지하게 구원에 대해, 자기 자신의 신앙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회개하는 시간이 있지 않았다면, 자신도 모르게 ‘관성화된 교회생활’에 휩쓸려 정작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신앙’과 ‘구원’을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이 배제된 신앙은 껍데기 신앙이다. 껍데기 신앙은 생명력이 없다. “교회 다니는 놈들이 더 해”라는 비난의 화살은 껍데기 신앙인이 늘어나는 한 막아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생명력을 잃은 껍데기 신앙에 대한 경각심은 다음의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2006년 미주지역의 한 기독신문은 “미국내 한인 범죄자의 85%가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목사와 목사 아들도 있고, 장로 등 중직자도 많다. 한인이 아시아인들 중 가장 많은 범죄자를 양산하고 있다. 한인 범죄자를 100명이라 할 때 일본인은 5명, 중국인은 20명, 동남아인은 35명 꼴이다. 전체 범죄율은 날로 낮아지고 있는데, 한인 범죄율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전체 한인의 70%~80%가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마당에 가히 충격적인 보도가 아닐 수 없다.
기사가 게재됐던 같은해, LA에서는 한인 목사의 아들이 차량을 훔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이같은 일을 저지른 이유가 ‘그냥 타보고 싶어서’였다는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 목사는 허울뿐인 가짜 목사로 드러났다. 영주권 취득을 목적으로 미국의 무인가 신학교를 단기코스로 수료하고 ‘목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고 한다.
목사 안수증을 사고 파는 무인가 신학교, 목사도 아니면서 당당히 목사행위를 하는 가짜 목사, 비록 허울뿐이지만 목사아들로 자라며 수년간 교회생활을 했어도 신앙은 커녕 ‘준법정신’조차 지니지 못한 아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법(法) 불감증’일 것이다.
그런데 법 준수에 대한 불감증은 한인들, 특히 기독인 범죄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문제점이다.
수년전 달라스 한인사회를 초토화시킨 ‘몰게지 사건’ 또한 이 범주에 해당한다. 융자업자만 믿고 론을 얻었던 무고한 많은 한인들이 FBI 조사를 받고, 적지 않은 한인들이 추방에까지 이르렀던 당시 사건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다.
매매춘을 알선하는 윤락업소 또한 ‘불감증’ 부류의 대표주자다. 암암리에 윤락업소를 운영하는 이들과 이들 업소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 일요일에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찾는 사람의 수는 적지 않다. 이밖에도 음주운전, 가정폭력, 영주권 사기 등 한인사회의 내노라하는 불법행위 속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이름표는 당당하지 못하다.
 
남의 밥그릇 뺏는데는 기독교인 명찰이 필요없다!
 
윤리부재 또한 한인 기독인들의 명예를 갉아 먹는다. 윤리부재는 특히 먹고 사는 일에 직면했을 때 더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도넛샵을 하는 문 모씨는 최근 들어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도 이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다. 큰 소득은 아니지만 아이들 공부 가르치면서 먹고 살 만큼은 벌 수 있었다. 새벽이슬 맞으며 출근을 서두를 때도 이 일이 고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그였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밝았던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생긴 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또다른 도넛샵이 문을 연 이후였다.
“두어번 우리 가게에 찾아오셨던 분이셨어요. 목사님이라고 하더라구요. 도넛맛이 좋다 하시면서 도넛업이 어떠냐며 관심있게 이것 저것을 물으시길래 정성껏 대답해드렸죠. 교인중에 도넛업에 관심있는 분이 있는가보다 했죠. 그런데 그 분이 뒤통수를 치신 거예요. 손 뻗으면 닿을 거리예요.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지 못합니다. 어떻게 성직자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밟고 서서 자기 밥그릇을 챙기려고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뷰티 서플라이를 하는 서 모씨 또한 비슷한 케이스다. 그의 가게는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몰려 사는 곳은 아니지만, 벌써 5년째 한 곳에서 영업을 해온지라 고객이 곧 가족같고 친구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서 친구같은 고객을 뺏어간 사람은 다름아닌 그에게 물건을 대던 도매업자. 서씨가 몇 년간 꾸준히 물건을 사가자 서씨 가게의 매상을 가늠하게 된 도매업자는 서씨 가게 앞에 2배 이상 큰 크기의 뷰티 서플라이를 오픈했다. 그의 교회 직분은 안수집사였다.
 
구원관 부재의 신앙은 ‘빛 좋은 개살구’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다. 겉모습은 그럴 듯한데 알맹이는 실속 하나 없는 사람을 비꼴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이민사회 내에 겉모습만 그럴듯 하고 알맹이는 텅텅 비어버린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에 대해 달라스 영혼구령센터 박병권 목사는 ‘이민교회에 구원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목적 또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등한시 하고 있습니다. 수십년동안 교회에 출석했더라도 죄만 짓지 않으면 천국 가는 줄 아는 사람도 허다합니다. 또 교회에서 벌이는 갖가지 사역을 위해 헌신하고 열심히 봉사하면 하늘나라 상급을 받는 줄 아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교회가 ‘영혼구원’이라는 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세(勢) 확장의 도구가 될 행사와 이벤트 중심으로 사역을 이끌어가고 있어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의 길로 가지 못하고 “혼란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박목사는 분석한다. 이민사회에 껍데기 신앙이 만연한 건 “교회와 목회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달라스에 거주하며 목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성민 전도사(가명, 37)의 의견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요즘 이민교회는 신앙이 없어도 열심히 교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무슨 사회복지기관에 멤버십 등록을 하면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듯, 교회에 등록을 하면 생활의 편리함을 누리게 되죠. 교회 활동에 혜택을 입으면서 조금씩 교회생활에 적응해나가고 교회에 가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지면서 자신의 신앙이 발전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어서 애들 키우기 좋아’라며 전도도 합니다. 또 한 명의 멤버십 회원이 늘어나는 거죠. 쉬지않고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대형교회일수록 성도수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봅니다.”
타주에 살 때는 대형교회를 다니다 달라스에 와서는 일부러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교회를 찾았다는 정윤경(41, 플레이노 거주) 씨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에 교회에 가서 하는 건 ‘교제’와 ‘일’이었던 거 같아요. 목사님을 비롯하여 함께 믿음생활하는 이들과 열심히 교제했고,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일들에 성심을 다해 봉사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큐티를 하던 중에 ‘내가 왜 교회에 나가는가’라는 질문이 생기더라구요. 나의 믿음생활에 하나님은 없고 교회와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걸 안 순간 엄청난 절망감에 빠졌었습니다”라고 회고한다.
이에 대해 “교회는 사회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영혼구령센터 박병권 목사는 “교회는 영혼구령을 위해, 즉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복음사역자들의 주된 임무는 영혼구령이다. 교회가 지닌 사회적 역할도 이민사회 내에서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지만, 영혼을 살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영혼구령’의 임무가 교회의 다른 사역들 뒤로 밀린다면 복음이 생명력을 잃는 건 당연지사”라고 강조한다.
 
최윤주 기자 yunju@wnew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