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글 모음

최소치의 법칙

호걸영웅 2011. 3. 8. 23:19

최소치의 법칙

 [ 2008-04-23 14:14:31 ]

·   

·    ▲아가페장로교회 최병걸 목사

미국에 와서 미군 군목에 지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군의 장교를 선발하는 과정이라 그런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먼저 서류 심사를 하고, 그 다음에 현역 군목에게 가서 3시간 가량 면담을 했습니다. 그 면접관이 허락하자 시애틀 다운 타운에서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검사를 한 후 시력에 문제가 있다며 재심을 요구 받았습니다. 그래서 안과 전문의에게 가서 안경을 쓰면 상관이 없다는 소견서를 받아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정이 나서 훈련 후에 배치될 부대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는 중, 다시 고혈압이 있는 것이 새롭게 나타나 군목으로는 부적격하다는 최종 판결을 받았습니다. 몇 달에 걸친 많은 과정을 어렵고 힘들게 다 마쳤는데 단지 고혈압 하나로 미군 군목의 길이 막혔을 때에는 정말 암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군목일지라도 유사시에는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 결정을 순순히 받아 들였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어떤 일을 맡길 때 그 분야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을 원합니다. 최대한 다방면의 재능을 가진 지원자를 뽑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지원자를 선별하는 기준을 아주 높게 둘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에도 학력에서부터 시작하여 가능한 많은 자격과 경력을 소유했는지를 확인하고 뽑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는 기준은 세상의 것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 가진 공통점은 바로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실 때 자기가 하던 것을 버리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교육 수준이 낮은 어부라도 상관이 없고, 주류 사회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소외를 당하던 세리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열심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더라도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합지졸처럼 보였습니다. 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최소한의 기준을 가지고 선택한 제자들을 통해 세상 역사를 바꾸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치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서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최소한의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서 최대한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것을 '예수님의 최소치 법칙'이라고 부르길 좋아합니다
.

성경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최소치의 법칙을 따라 쓰여진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구원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물질을 요구하지도 않고, 세상이 놀랄만한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인격적인 성숙함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큼의 선행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시인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참 간단하고도 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법칙은 뭔가 대단한 것을 해야 전능자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실망스러운 법칙입니다. 특별히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에 물들어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법칙입니다. 사람들은 신의 경지에 이르거나 신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최대치의 법칙이 적용되어야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과 선행을 보일 때 비로소 신이 감동하신다는 생각에 젖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정반대로 최소치의 법칙을 가르치니 세상의 종교적인 관점으로 볼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

왜 예수님은 구원을 위해 최소치의 법칙을 제시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사람의 연약함을 이미 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구원을 얻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요구하면 사람들은 분명히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 이룬 것이라고 단정하고 자기 의로움을 자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그들의 약함과 불완전함을 비판하고 정죄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최소치의 법칙에 의해 얻어지도록 하시기 위해 세상 모든 죄인들의 죄의 댓가를 몸소 치르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치른 최대치의 희생 때문에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믿는 최소치의 믿음만 가져도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에도 예수님이 제시하신 최소치의 법칙이 적용되어야 마땅합니다
.

우리 안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를 사랑할 수 없는 최대치의 결점을 보지 말고,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최소치의 장점을 보세요. 도저히 함께 하기 힘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로 인해 주어지는 최대치의 아픔보다는 그로 인해 얻어질 수 있는 최소치의 기쁨을 먼저 떠올려 보세요. 손 내밀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그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최대치의 요구를 접고, 그가 내 손을 잡을 수 있는 최소치의 조건을 찾아 보세요. 왜 내가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최대치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치르시고도 나에게는 최소치 조차 요구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세요. 그러면 지금 예수님에게 최대치의 축복을 받고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임을 발견하는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