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사람의 모습
2001-12-28 20:51:28 read : 1988
본문 : 시127:1-5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다고 생각하
십니까? 행복하다면 무엇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하다면 무엇 때문에 불행합니까? 도대체 불
행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17세, 22세, 29세 때 말라리아에 걸리고, 19세 때 천연두에 걸리고, 20세 때는 늑막염에 걸
렸고, 35세에는 급성 이질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43세 때는 치아가 거의 손상되는 고
통을 당하였고, 43세 때 1775년 미국 혁명군의 사령관이 되어 독립 운동을 지휘하여 승리하
고, 55세 때 미국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67세 때 사망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조지 워싱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려울 때마다 기도하며 역경을 이겨나간
조지 워싱턴은 지금도 미국 국민에게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계속되는
병으로 고생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한 상태에서 일생동안 병을 지
니고 삽니다. 그래서 때때로 병으로 인해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그 가운
데서도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아픔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비록 남들이 불행하다고 말한다할지라도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충분히 이길 수 있고 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았
는데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늘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며 좌절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생각하기에 따라 한순간에 가장 행복할 수도 있고, 또한 가장 불행할 수도 있습니
다.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세 개의 물음'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론이요,
행복론을 요약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에 관하여 그는 설명해 나갑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
한 시간은 현재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아닙니다. 불확실한 미래가 아닙니다. 언제나 현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가장 필요한 사람은 옛날에 알던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만날 사람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매일같이 내가 만나고 있는 바로 이 사람이
내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입니다. 다른 데에서 소위 말하는 '귀인'이 나타나기를 바라
지 마세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입니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일이란
현재에 내가 만난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여기에 행복
이 있습니다. 복은 복됨을 깨닫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복되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말입니다. 자기가 가장 복됨을 깨닫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
닙니다. 오늘 내가 처한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 이 현재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
각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이 시간, 바로 이 순간이 내게 있어서 가장 복된 것이다- 그것
을 깨닫는 사람이, 그렇게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복된 것입니다.
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무슨 굉장한 일을 해야 한다
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바로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지키시
는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
함이 허사로다(1절)"-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하나님께서 동행
하시고, 하나님께서 늘 인도해주시는 바로 그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증하지 않으시면 세상에 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제일 크고도 근본적인 복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은혜 안에 살면서도 은혜를 믿지 못
합니다.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 바로 거기에 복이 있다 하
는 말씀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멋진 집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서울 양재동에
가면 고급 빌라가 즐비합니다만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나름대로 보안 장치를 하여 마음
에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을 봅니다. 돈을 긁어 모았습니다. 표면적인 인생의 성공의 모습이
요 행복한 것입니까? 행복은 이것으로 나타나는 것 아닙니다.
톨스토이의 '일러야스의 행복'이라고 하는 글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유산도 전
혀 받지 못한, 찢어지게 가난한 일러야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서 마침내 부자가 됐습니다. 그래, 한평생을 떵떵거리며 살았는데,이
제 그 말년에 불행이 옵니다. 70세가 되던 해, 이상하게도 그가 키우던 가축이 전부 죽어버
리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재산은 빼앗겼습니다. 그야말로 빈털터리가 된 그에게 견딜 수 없
는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끼 한 끼 먹는 것마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씨 착한 한 농부를 만나 일리야스는 그 집에 들어가서 머슴살이를 합니다. 농부는 70이 넘
은 일리야스 내외에게 고맙게도 일자리를 주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듯 큰 부자가 갑
자기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찾아가서 위로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냐고, 얼마냐 괴로우냐고, 얼마나 불행하냐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
나 그는 늘 밝은 얼굴로 대답을 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믿겨지지 않겠지만 진정으로 행
복합니다. 이제는 조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에 매이지도 않습니다. 오직 영혼
을 위해 준비하고 믿음의 이야기를 하며 아내와 더불어 조용히 살아갑니다. 특별히 사업 잘
못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일도 없고, 강도 만날까봐 걱정할 것도 없고, 문 잠그는 일도 없고,
문 잠그고 자지도 않습니다. 정말 모처럼 만에 평안합니다. 즐거운 마음뿐입니다. 하루종일
일하고 나니까 밤잠이 그렇게 달디달 수 없습니다. 잠자고, 일어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 오십 년만에 처음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과연 누가 행복한 것입니까? 믿거나 말거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
하는 데에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뜬구름 보듯이 행복은 저기에 있을 것이다, 저 먼 곳에 있
을 것이다, 부잣집에만 있을 것이다, 라고들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거들떠보지 마십시오. 별
것 아닙니다. 참행복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헛된 수고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속
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 는 말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공든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든 탑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여러분 아십니까? 그 이
유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공을 귀히 보시기 때문에 공든 탑이 쉽게 무너
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아니 하는 이유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무시하며, 무조건
공만 들이면 탑이 무너지지 아니하는 줄로 알고 공만 드린다면 그 탑은 결국 무너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저는 많이 보았습
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공든 탑을 무너지지 않게 지
켜 주시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시골 장이 서는 날에 장터에 가면 꼭
그곳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사입니다. 온갖 묘기를 보여주며 사람들
을 유혹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니 모든 사
람들이 사탄에게 속아 살고 있습니다. 사탄에게 사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구질구질하고 답답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 같고 사탄이 말하는 대로 살아가면 정말 성
공하고 출세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물론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까지도 모두 이 사탄
의 사기에 말려들어서 정작 중요한 생활과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악인의 꾀를 좇아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탄이 말하는 대로 살면 정말 일이 잘 풀리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탄이 말하
는 대로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낙오자가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탄의 사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세상이 온통 이 엄청난
사탄의 사기에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절대
로 우리편이 아닙니다. 사탄의 목적은 우리를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는 것입니다. 살
리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죽이려는 것이요 우리를 위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
실 은 우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방법은 죄와 불의입니다. 죄와 불의는 마치 마약과 같아서 잠
시 동안은 엄청난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 방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어 보이리만큼
그 효과가 대단합니다. 악인의 형통이라는 말이 나오리만큼 죄와 불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그 형통함은 잠깐 뿐 입니다. 죄와
악으로 끝까지 형통할 수는 없습니다. 악으로 성공할 수 없으며 죄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럴 것처럼 그리고 그런 것처럼 우리를 속이지만 아닙니다. 악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죄로
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죄로 성공하고 악으로 승리하겠다는 망상을 버려야만 합니다.
사탄은 절대로 우리편이 아닙니다. 사탄이 우리편을 들어 줄 리가 만무합니다. 죄는 절대
로 우리 편 아닙니다. 죄가 어떻게 우리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혹
모르겠으나 평생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누가 적군이고 누가 아군인지를 모르
는 사람이 뜻밖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에 전쟁을 하면서 아군과 적군도 구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전쟁에서 승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적군의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참으로 답답한 노릇은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
리의 적군이 사탄의 말을 믿고 그 말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세우시고 지키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 이십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우리를 지킬 수 없으며 우리의 삶을 세울 수 없습니다. 사탄의 말은 참으로 그럴 듯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사기입니다. 그 사기에 걸리면 아주 인생을 깨끗이 망
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늘 마음에 명심하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만 있으며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편이십니다. 하나님만
이 우리를 지키실 수 있으시고 세우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사업을 세우시고 지키실 이는 하나님 뿐 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영적인
구원에만 힘이 있으신 줄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도 하십니다. 구원도 하나님께 달려있고 사업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사탄은 마치 땅과 사업이 자기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지만 그것이 바로 사기
입니다. 땅과 사업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흔히 '진리가 밥 먹여 주냐?'라고 질문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진리대로 살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탄에게 속은 것입니다. 진리대로 살아야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사
람들은 진리를 버리고 편법을 써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
습니다. 진리를 버리고 악의 꾀를 가지고 살면 밥을 쉽게 많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
실은 그게 밥 같아 보여도 밥이 아닙니다. 그것은 밥이 아니라 미끼입니다. 우리를 잡으려고
밥처럼 보이게 했을 뿐 사실은 밥이 아니라 미끼입니다.
미끼 속에는 언제나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바늘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죄는 반드
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처음에는 깜쪽 같이 숨겨 주지만 사탄이 우리를 숨겨 주는 까닭
은 치명적인 때 드러나게 하려 함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땀을 흘리는 대로 결과가 있습
니다. 현대에 있어서 가장 비참한 일은 무엇이냐 하면 헛된 수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이
수고하고도 열매가 없습니다. 수고 많이 하고 결과가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허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뜻 모르는 수고, 의미 없는 생활, 목적 없는 생활--- 이런 것들이 바로 사람
을 허무하게 만듭니다. 이는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헛된 수고를 하지 않게 하신다
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한 여러분이 잘아시다피, 성경은 하나님께서 단잠을 주신다고 말씀
합니다. 잠 잘자는 것이 복입니다.
여러분, 잠자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잠'은 건강의 상징입니다.
잠자야 건강하고, 건강해야 자는 것입니다. 잠만 잘 자도 충분한 것입니다.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무릇 잠을 잘 자야 합니다. 깊이 자야 합니다. 그런데 단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이 결정적인 불행입니다.
교회에 처음 출석하여 은혜를 받기 시작한 초로의 부인이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하나님
께서 무척 나를 사랑하시나 봐요. 저는 불면증 환자인데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청해도 잠이
못자는데 침대도 아니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도 잠이 들어 언제 설교가 끝났는지 모를 정
도로 시간이 너무 잘 가요." 이것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마
는 이 본문에서는 평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믿음이 있어야 잠을 잡니다. 하나님을 믿고, 이웃사람을 믿고, 모든 사람을 믿어야
자는 법입니다. 그런데 불안에 떨고, 누가 내 흉을 보지 않나, 누가 나를 쳐들어 보지 않나,
누가 나를 괴롭히지 않나, 누가 나를 쳐들어오지 않나, 누가 나를 괴롭히지 않나---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믿음 없는 사람은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또한 '잠'은 일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힘들여 일하고 나면 잠이 잘 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쉬고, 놀
고, 빈둥거리고, 낮잠 자고--- 이러고야 어떻게 밤에 잠을 잡니까? 도저히 잘 수가 없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몽롱하게 있고, 어쩌다 꿈이라도 꾸면 개꿈 같은 이상한 꿈만 꾸는
것입니다. 불안에 떱니다. 이것이 보통 꿈이 아닐 거야 하며 별 생각을 다합니다. 이러니 건
강을 어떻게 유지하겠습니까? 건강해야 자고, 자야 건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해야 잘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화목한 자가 잠을 잡니다. 불화하고는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남에게 선을 베
풀고야 잠을 잡니다. 많은 사람에게 비방을 듣는 사람도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사랑받고
잠을 자고, 사랑하며 잠을 잡니다. 바로 단 잠을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22절은 말씀합
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
니라." 돈많다고 걱정거리가 쌓인 사람에게는 그 돈이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은 그를 부하게 만들뿐더러 근심을 겸하게 하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사업 때문에, 그런 것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걱정하지 않게 되어야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주시
는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오늘의 본문에 보면 자식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자식을 자랑으로 주신다는 것입
니다. 이것이 영광되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17장 25절에 보면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
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자식이 있다고 다 복은 아닙니다. 오히려 욕이 돠기
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자식이 자랑거리가 되고, 영광이 되고, 내 생의 보람이 되고
마지막 의미가 될 때에야 복인 것입니다. 자식을 통하여 그에게 생의 의미와 보람과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옛날 맥아더 장군처럼 '하나님이여, 내게 이런 아들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나로 세상을 헛되이 살게 아니하였다 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자식을 바라보며 '그
렇지 나는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복이라는 말입니다.
1999년 5월 '가이드 포스트'지에 우리 나라 여성 최초의 축구심판인 임은주씨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녀는 원래 필드하키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86년부터 87년까지 국가 대표선수
로 있으면서 쟁쟁한 선배들 때문에 실전에서는 한번도 뛰어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녀는 대학
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비 인기 종목의 선수였기 때문에 진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북경아시안게임에 여자축구가 정식종목이 됨에 따
라 여자축구 국가대표를 모집한다는 공고였습니다. 그 길로 임은주 선수는 여자축구 선수로
전향을 합니다. 하키 선수가 공을 차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연습도중 태클
을 당해 시합을 10주 남겨놓고는 다리를 다치게 되었습니다. 8주의 진단이 나왔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기브스를 푼 후에도 4주를 훈련해야 공을 찰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
의 언니가 실의에 빠져있는 그녀에게 신앙을 갖도록 권유합니다. 마침내 임 선수는 하나님
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태극마크를 달고 운동장에서 한 번 뛰어보기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는 방안에서 연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공을 머리도 받아보고 손으로도 던져보고 아프
지 않은 한쪽 발로 차 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이
"난 너 같은 애는 처음 보았다"고 말합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는 스스로 기브스를 풀
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보았습니다. 뛰고 나니까 다리가 퉁퉁 붓습니다. 또
눈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대표선수로 뛰게 해 주세요."
마침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믿음으로 달려들어 기도 하니까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
답 하셨습니다. 임 선수는 마침내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리고 체육
특기자로 이화여대에도 들어갑니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코치가 되고 감독이 되기까
지 합니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것 같고 제대로 배워서 가르쳐야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한 후 심판시험에 응시하여 1급 심판 자격을 취득합
니다. 그 다음에 다시 기도하면서 다시 노력하여 국제심판 자격도 획득합니다. 한국인으로서
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런 그녀가 또 기도를 합니다.
"제가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프로심판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그 일이 기적같이 이루어집니다. 10명 심사위원들이 모두 남자이고 그 중 한 사람만
반대해도 안 되는 프로심판자격을 그녀가 마침내 얻어 한국의 프로심판이 된 것입니다. 그
것도 국내 1호 여자 심판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키워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우
리 수지교회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평강의 복을 주시고 그 복을 통해서 여러분을
세워주시고 지켜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복이라는 것은 사건이 아닙니다. 복이라는 것은 지위나 명예가 아닙니다. 복이라는 것은
복된 자가 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적인 것입니다. 영원히 미래적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신령한 것이요, 가치와 보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복이란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의 확실한 기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에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녀 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자녀의 이해에 있고 그 큰 은혜를 깨
닫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의 약속 안에 살며 '하나님께서 나를 쓰고 계신다'하는, 하나님
의 구원의 영광된 역사에 쓰임 받는 기쁨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복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삶을 세우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 이심을 마음에 분명히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그 분의 말씀과 믿고 따른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삶을 지켜 주시고 세워 주실 줄로 믿
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세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며, 기뻐하며, 사랑하며, 수고하며-거기에 참 복된 자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설교모음(Korean sermon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망의 밭을 사라 (0) | 2012.05.07 |
---|---|
너도 이와같이 행하라 (0) | 2012.04.08 |
운명을 바꾸는 생각 (0) | 2012.04.04 |
운명을 바꾼 생각 (0) | 2012.04.02 |
모이기를 힘쓰자 (0) | 2012.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