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소망의 밭을 사라

호걸영웅 2012. 5. 7. 19:44

                          소망의 밭을 사라
     예레미야32:6-15

 

 

 

6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8 여호와의 말씀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9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10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취하여

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증서에 인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서론>

 1677 2 2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 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노라.

 

러시아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소망의 나라에는 겨울이 없다.”

 위대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학보다도 희망이 더 문제를 푸는 힘이 있다.”

..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말하기를 – “완전은 신의 척도이며 완전하려는 희망은 인간의 척도이다.” 라고 했습니다.

퀴다라는 분은 – “인간의 가슴에서 희망을 떼어 보라. 그는 한 마리의 짐승에 불과하다.”라고 하였고, -‘ 소포클레스인류의 대다수를 먹여 살리는 것은 희망이다.”라고 했습니다,

 신곡의 저자 단테’- 지옥은 소망이 없는 곳이다.라고 하면서, 그는 지옥 문패에는 "소망을 버린 자여 이곳에 들어오라"고 써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 아일랜드 속담에서는 희망은 모든 골칫덩이의 의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시인이요 신학자인 죠지 허버트는 <희망은 가난한 자가 살아가는 빵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는 사람이요, 반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본론>
. 내일을 잃은 하나멜
오늘 본문의 주인공, 선지자 예레미야는 암울한 격동의 시대에 살면서 동터오는 역사의 희망찬 미래를 예언했던 말씀의 종이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그가 선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까닭에, 그를 가리켜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말년에 이르러 이집트에서 분개한 동족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하셨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오늘 본문에 보니까, 유다 왕 시드기야 십 년에, 예레미야가 왕궁 시위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은 무슨 죄를 범한 까닭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괴씸 죄랄까요?
그런데,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있을 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라고 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있은 후 몇 날이 못 되어 하나멜이 예레미야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와서 말하기를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고 했습니다.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멜의 부탁은 참으로 엉뚱하고도 이상한 부탁이었습니다.

하나멜이 왜 자기 소유의 밭을 팔고자 했을까요? 하나멜이 밭을 팔고자 할 때, 남 유다는은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민심은 흉용하고, 경제는 도탄에 빠졌으며,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습니다. 때가 시드기야 왕 십년이라고 했으니 예루살렘의 멸망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던 절박한 시기였습니다.

하나멜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예루살렘의 현실을 보며 멸망이 임박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군대에 함락되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소견으로 볼 때 유다의 미래는 절망적이었습니다. 내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관심은 오직 오늘이었습니다.

 

오늘의 만족을 위해 그가 취한 방법은 자기 소유의 땅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아무리 좋은 땅(부동산)도 무용지물로 전락합니다. 전시상황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생필품과 현금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현금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하나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 상황에서 쓸모 없는 땅 보다는 현금을 챙긴 하나멜은 능력의 사람처럼 보입니다. 확실히 그는 시세와 재리에 밝은 사람입니다. 급변하는 현실에 잘 대처하고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요, 재치가 있고, 머리 회전도 빠른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세상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을 하나멜 처럼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현실 적응력이 탁월한 사람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시세에 밝고, 재리에 밝은 사람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매우 큰 돈이 들더라도 자녀들에게 특별과외를 시키거나, 기러기 부부가 되어 외국유학도 결코 마다하지 않습니다. 불신자들만 그렇습니까? 성도 중에도 자기 자녀들을 하나멜 처럼 현실 적응력이 탁월한 사람으로 키우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자기 아이가 교회생활에 몰입하는 것보다 학교생활에 몰입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볼 때마다 <공부하라, 아이비 리그 대학에 합격해라!>고 합니다. <기도하라. 예배드려라. 찬송하라. 전도하라>는 소리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때가 되면 주일에도 공부하라고 합니다. 내신 성적을 잘 받아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일,이년 간은 아예 교회에 나오지 말고 공부하라고 합니다.


  하나멜은 과연 인생의 모범 답안일까요? 하나멜은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고,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불행한 사람이요, 실패한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가슴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다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몰랐습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나멜은 오늘을 소유하고도 내일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하나멜이, 내일을 잃어버린 하나멜이 어떻게 인생의 모범 답안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멜은 어떤 경우에도 인생의 모범 답안이 될 수 없습니다.

. 아멘의 사람
예레미야는 증인이 보는 앞에서 은 십칠 세겔을 주고 하나멜의 밭을 사서, 매매 증서를 두 통 써서 한 통은 봉하여 자신이 갖고, 한 통은 서기관 바룩에게 주어 토기에 담아 보존케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하나멜의 밭을 산 예레미야에 대해서 두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첫째, 예레미야에게 밭이 필요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①그는 농부가 아니라 선지자입니다. 그의 직무는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그에게 밭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②예레미야는 지금 자유의 몸이 아니라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부동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③선지자였던 예레미야는 밭을 살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④전쟁으로 인해 하나멜이 죽으면 아나돗에 있는 그의 밭의 상속권이 예레미야에게 있으니 예레미야의 분깃(유산상속)이 됩니다.
이상으로 볼 때 예레미야에게 밭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멜의 밭을 살 수 있는 처지와 형편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둘째, 밭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왜 샀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멜의 밭을 산 까닭이 무엇입니까?
예레미야가 하나멜의 밭을 산 것은, 하나님께서 <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아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그 말씀에 무조건 아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즉 시드기야 왕에게 가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하라고 하시니 가서 전했고, 하나멜의 밭을 사라고 하시니 그 밭을 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아멘하십니까? 이유를 따지고, 조건을 따지고, 옥석을 가리듯이 가려서 나에게 유익이 될 만한 말씀에만 아멘하십니까? 다시 말해서 필요에 따라 아멘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이해가 잘 안되고 수긍이 가지 않아도 아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아멘의 사람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내일이 있다
아멘의 사람 예레미야 조차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아나돗에 있는 하나멜의 밭을 사라고 하셨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 까닭을 여쭤보았습니다. <하나님, 지금 성 밖에는 바벨론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은 이미 하나님께서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습니까? 땅이 있어도 곧 빼앗길 것인데 어찌하여 은을 주고 밭을 사라고 하시며, 매수하는 일에 증인을 세워 공증까지 하라고 하십니까?>

예레미야가 그 까닭을 묻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답변의 요지는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하여 자기 소유로 삼을지라도 그 땅이 바벨론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유다인들이 거하던 그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시고자 약속하셨던 땅이므로 결국 그 땅을 돌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 밭을 사라고 하신 것은 <유다 백성들에게 내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내일의 소망은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 성전 복구, 훼파 된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 등 회복의 은총을 말함이요, 장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택한 백성들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남 왕국 유다는 세 차례에 걸쳐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하나멜이 아나돗에 있는 자기 소유의 밭을 팔고자 했을 때에는 세 번째 침략의 때였으며, 그 침략으로 말미암아 남 왕국 유다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남 왕국 유다가 다시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는 것은 불가능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유다에게 내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70년이 지난 후에 유다를 역사의 무대로 복귀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은 잃어버렸던 옛 영광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께 투자하고, 내일을 매수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한결같이 내일을 매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워터타운 한인 침례교회의 성도들아! 내일의 밭을 사라! 희망의 내일을 소망하라! 영광의 그 날을 갈망하라! 라고 하십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말하기를, “신앙이 건강할 때 소망은 결코 병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본문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둔 우리 모두에게 <내일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족속이요,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희망을 가져서는 안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비록 오늘 나에게 주어진 여건들이, 또한 현실들이 너무 어렵고, 힘들고, 캄캄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일은 잘 된다. 내일은 비가 그친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내일에 소망을 두고, 내일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소망이란 하나님과함께 하는 희망을 의미합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까? 그러나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더욱 가깝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찬란한 미래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내일을 위해 소망의 밭을 사는데 있습니다. 내일을 가슴에 품고, 그 내일의 성취를 위해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준비하는 일에 땀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또한 교회 안에서, 충성과 헌신 안에서, 소망 안에서, 내일의 밭을 매수하여,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스피노자의 말과 같이, 거기에 희망의 나무를 심고 가꾸며 땀 흘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2012.4.25. 편집: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