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간 자의 소원, 두 가지(성경본문) 눅16:24-30
[눅] 16:24 |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
[눅] 16:25 |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
[눅] 16:26 |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
[눅] 16:27 |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
[눅] 16:28 |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
[눅] 16:29 |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
[눅] 16:30 |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
[눅] 16:31 |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
서론)모든 사람들에게는 저 마다 그 마음속 깊은 곳에 바라고 원하는 '소원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소원을 안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아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소원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소원 속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격과 그 사람의 비전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 소원을 말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공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왕상3:5-15) 엔 하나님을 감동시킨 솔로몬의 소원이 있습니다.
어느 날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소원의 내용과 그 소원을 구하게 된 동기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 영화도 함께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소원에는 이기적인 요소가 없었습니다.
(막10:46-52)엔, '바디매오'의 소원이 있는데, 소경으로 태어나 구걸로 연명하던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나 엄청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바디매오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예, 보기를 원합니다.” "보는 것"은 바디매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며 소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소원과 고백을 믿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10:52)고 하셨고, 바디매오는 마침내 밝은 세상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오늘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본론
가)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온다
본문을 보니 한 부자가 있었는데, 살아 생전에 날마다 잔치를 하며 호화롭게 살다가 죽게 되자 지옥에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생전에 거지였던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1.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찾아오는 죽음
본문의 19절 부터 24절은 그 지옥에 간 부자의 전생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눅] 16:19 |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
[눅] 16:20 |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
[눅] 16:21 |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 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
[눅] 16:22 |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
[눅] 16:23 |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
[눅] 16:24 |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
라고 했습니다. 그리 큰 시간 차이 없이 ,그 거지와 부자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옛날,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아주 이상한 신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하는 일이란 아침에 일어나서 알렉산더 대왕 앞에 나아가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대왕이여, 당신도 죽습니다”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답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는 더욱 겸손하게 모든 정치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도 죽습니다. 죽음의 사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그것을 늘 기억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모든 인간은 사형수와 같다
성경은 말하길 (히9:27)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증거합니다. 어느 누가 감히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형수라고 하면 어떤 선입견이 있습니다. 먼저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 그리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 또한 아주 측은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폭넓게 생각해 보면, 모든 인간은 사형수와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간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나 ,감옥 밖에 있는 사람이나,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사형언도를 받은 인류 모두는, 다 같은 사형수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미의 뱃속에 있을 때 부터 죄 중에 태어나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말하기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라고 했고 (시90:12)에선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만일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면?”이라는 게임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질문을 각자에게 하고 자기의 답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 가지 답들이 나옵니다. 아주 심각합니다. 마지막 결론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3)죽음을 준비하라!
그러면 무엇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입니까? 유언장을 만들고 재산을 정리하고 묘지를 준비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까? 물론 그러한 것들도 죽음에 대한 준비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준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잘 섬기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다른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 할지라도, 이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준비가 너무도 부족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후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데,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죄를 지닌 채, 그냥 심판대 앞에선 죄인은, 아무 인정사정 없이 지옥으로 보내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나)어리석은 사람들
1.누가복음 12장 16절 이하에 등장하는 부자는, 부족할 것이 없는 자였지만, 몇 시간 후에 자신에게 찾아올 죽음에 대해선 전혀 준비가 없었습니다. 추수할 곡식을 위해서는 창고를 지어 준비했지만, 더 중요한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는 준비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사람은 “어리석은 자여!”이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 역시,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의 사람입니다. 그가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지만 너무나도 늦었습니다. 그는 지옥에 가서야 겨우 깨달았던 것입니다. 나사로는 비록 거지로서 너무도 비참한 인생을 살았지만 죽음을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친할아버지께서 늘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침 먹으면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점심 먹으면 저녁 먹을 준비를 하라! . 그렇습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죽어서 할 수 없고, 살았을 때 라야 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천국과 지옥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옥은 없다”고 자기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살아갑니다. 여러 사람이“지옥은 없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존재한다는 지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 자신이 그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진리 된 성경이, 그리고 아들 하나님 예수께서 존재한다고 하였으면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세상에는 흉악한 죄인들을 벌주기 위해 감옥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물며 천국에만 예외로 지옥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한번은 수원에서 사역하시는 김 덕신 목사님이라는 분이, 택시를 타고 가시다가 예수님을 전했더니, 그 택시 기사 분이 하는 말이 "자기는 지옥을 믿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김목사님이“그러면 기사님은 지옥이나 가시오”라고 했더니 그 기사가 화를 내더랍니다. 그래서 김목사님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답니다. “만약 선생님이 정말로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제가 지옥에 가라는 말에 화를 내서는 아니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다)지옥에서의 소원
1)지옥에 간 부자의 첫 번째 소원
부자는 살았을 때 날마다 산해진미를 쌓아놓고 호화로이 잔치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 사람이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서 떨어지는 물 몇 방울을 열망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손가락에 물을 찍어 보았자 몇 방울이나 떨어지겠습니까? 그러나 목마름의 고통으로 인해 ,감히 한 그릇의 물은 그만두고 손가락에 적셔진 겨우 몇 방울의 물도 구하지 못해 간구합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더 이상 소원을 이룰 수 없는 절망의 장소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만,이 지옥의 고통, 목마름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요7:37~39입니다.
[요] 7:37 |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요] 7:38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
[요] 7:39 |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
2)지옥에 간 부자의 두번째 소원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 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16:27,28)
이 부자는 지금 지옥에서 세상에 살고 있는 '남은 다섯 식구'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왕에 이렇게 되었지만, 그들만은 이곳에 제발 오지 말았으면 하고 간절히 간절히 바라는 장소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제발 오지 말았으면 하는 장소가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지옥에 간 사람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실을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내가 그때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까?’ 하며 모두가 후회할 것입니다.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3.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 예수
때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한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학생시절에 견학을 가듯, 유치원 때에라도 지옥을 한번만 구경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확실히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한번만이라도 구경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믿음의 법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의 법칙이 아닙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믿음의 법칙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여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치고 믿음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천국과 지옥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는 능력이 있기에 그러합니다.
부자는 왜 지옥엘 갔고 나사로는 왜 천국엘 갔습니까? 부자였기에 지옥엘 갔고 거지였기에 천국엘 갔나요? 아닙니다. 그것이 진정한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요 하나님 말씀은 거짓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자는 생각하기를 만일 죽었던 사람이 지옥을 경험하고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자기 같은 불신자인 형제들이 다 믿을 것이라 오해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눅16:30)에서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생각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눅] 16:31은 |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그렇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모세와 선지자에게 들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결론입니다. 모세와 선지자에게 들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해 놓으신 말씀인, 성경 말씀을 통해서, 다시 말하면 보내주리라고 구약에서 수없이 약속하신 그 예수,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 값을 다 치루신 예수, 그 예수만이 지옥 갈 우리가 구원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벧전1:23) 도,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눅16:29)
문제는, 그러한 기적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습니다. 죄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현대는 더 많은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구합니다. 신비한 것들을 구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구원으로 가는 길, 영생을 얻는 길, 천국에 가는 길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증거한 사실을 믿으라 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입니다! 다른 길을 찾지 마십시오. 선한 행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의 보혈이 없다면 우리의 죄악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 죄를 씻고 덮을 때만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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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9:22입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2000년 전, 십자가에서 우릴 위해 피 흘린 예수, 대신 죽으시고 대신 벌 받으신 그 예수의 피,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양의 피, 그 피 흘림이 우리의 마음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면 죄사함을 얻습니다. 겨자씨만큼이라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룩함을 입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열쇠인 것입니다. |
여러분에게 내 죄를 위해 흘리신 이 예수의 피가 있습니까? 혹 그렇지 아니하다면, 이 시간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믿음 없이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회개하고, 이 하나님과 예수를 믿고 천국에 이르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복음을 담대히 외쳐야 되겠습니다. 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며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이 예수께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이 땅 위에 하늘나라를 더욱 힘차게 건설해야 나가야 하겠습니다.
[참조] 김덕신목사 /편집:2012.11.21.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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