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가자
(마태복음 7:13-14)
[마] 7:13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
[마] 7:14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서론)
*공처가에 대한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처가인
어느 사장이 남들도 공처가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사원들에게 “마누라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내 편으로 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저 쪽으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사원 전원이 사장 편으로 몰려왔는데, 신통하게도 한 명만이 저쪽에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장이 “자네는 정말 마누라가 무섭지 않나?”
하고 물으니까,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오늘
아침 출근할 때 집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많이 모인 데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만의 다른 쪽을 택했습니다.”
-이 공처가의 아내와 비슷한 말씀을 예수님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밀려가는 넓은 문으로도 들어가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파멸의 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왜냐하면 좁은 문은 비록 찾는 이가 적지만, 그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넓은 것을 좋아합니다. 문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토지나 문이나 길 따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 좁은 곳은 너무나 통행하기가 어렵고 지나 가기가 힘들지만...반면, 넓은 문은 길도 엄청나게 넓을 뿐 아니라, 대체로 잘 포장이 되어 있어서 다니기 편안 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겐 '군중심리'라는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무엇인가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통계학자인 '데이빗 바렛' 박사의
통계발표에 따르면...현재 세계기독교 인구는 약 22억 명쯤
된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재 세계의 인구는 약 67억 정도
인데 , 기독교 인구가 천주교인들을 다 포함하여서 겨우 1/3쯤 되는 셈입니다.
-믿을 만한 통계에 따르면...이 지구상에서 하루에 34만
명의 새 아기가 태어나고...하루에 30만 명의 사람들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루 30만 명의 사람들이 저 하늘
길을 가게 되는데...얼마나 복잡하고 장광을 이루겠습니까? 그러면
그 중에서 좁은 문,좁은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30만 명중에 2/3 정도는 기독교인들이
아닌 불신자들이니까... 20만 명은 넓은 지옥 문을 택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1/3이 기독교인들인데, 넓은 길로 갔던
명목상의 무늬만 기독교인인 사람들도 상당히 있으리라고 생각 됩니다.
이름만의 교인들,즉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들, 이단교리에 빠진 사람들 등을 다 빼면? 아마 5만 명은 빠져나가게 될 것이고, 겨우 5만 명 정도가 겨우 좁은 문을 선택한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추산을 해봅니다.
-중요한 것은... 좁은
문으로 가면, 그 끝이 영생 즉 천국에 다다르게 되지만, 넓은
문, 넓은 길로 가면, 그 끝이 멸망 즉 지옥 불 못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무엇을 교훈하시는 것입니까?
본론)
1.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14절을 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진정한 믿음의 길은 좁고, 협착하고 가기가 힘든 길’입니다.
‘협착하다'의 헬라어 원어는 ‘들리보'라는 말인데,‘괴롭히다’,‘깨뜨리다’, ‘좌절시키다’
는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 단어는 신앙 때문에 핍박 받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극심한 핍박과 아울러 유대교인들과 핍박 까지 함께 받으면서 너무나 힘겨운
신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곧 순교자가 되거나 엄청난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성지순례 코스 중에는 로마의 초대교회가 번성했던 땅속의 공동묘지 터인 '카타콤'을 관광하 는 코스가 있습니다. 당시엔 예수 믿는 사실이 발견되면
모조리 죽이니까,..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안전하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는 은밀한 곳을 찾았는데 공동묘지로 쓰는 땅속 굴을 파고, 거기에
숨어서 예배하였던 것입니다...지금도 기독교 유적지 곳곳에, 카타콤
유적이 남아있는데...아마 모두를 다 합하면 100만 명도
더 넘는 사람들 이 카타콤에 살면서 신앙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2.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좁은 문, 좁은 길’은 바로 이 신앙생활의 좁은 길을 두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에도 초대교회 성들은 신앙생활은 참 고난 속에서 잘 감당한 신앙의 용사들이었습니다.
-가정과 가문의 핍박, 공산당들의 핍박, 일제의
핍박,살해,구타와 고문 등등...이것은 신앙생활의 좁은 문, 좁은 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종종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의 소문은 쉬지 않고 들리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오전 뉴스에는 이집트에서 어떤 이슬람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에 대한 보고를 거짓으로 했다는 이유로 징역 15년을 언도 받은 경우의 기사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옛날에 한국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믿음이
좋은 어느 여 집사님의 기도제목 1호는 남편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가 교회 나가는 것조차 방해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리는 날, 술에 취해 귀가한 남편은 부인이 집에 없자 화가 몹시 났습니다. 그래서
교회로 쫓아갔습니다. 남편은 통성기도
때, 예배당이 어두워진 틈을 타, 부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예배당 밖으로 끌고 나왔습니다. 그는 부인을 패대기치곤 마구 때렸습니다. 부인은 “사람 살려!”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자기 부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부인은...그 지역의 경찰서장 부인이었습니다...실수한 남편은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습니다. 경찰서장 부인이 말했습니다. “앞으로 교회에
나오면 용서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남편에게 말해서 유치장에 가둘 테니 알아서 선택하시오!”라고 하자,“아이고, 사모님! 내일부터
당장 교회에 나오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 남편도 교회에 잘 나오게 됐고 집사까지 됐다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은 어느 날, 직장 회식 자리에서, 자꾸
권하는 상급자의 술을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써 계속 거절하다가...화가 난 직장 상급자에게서 빰을 맞게
되었답니다. 처자식이 있고, 나이도 있는 사람이 여러 사람
앞에서 뺨을 맞았으니, 얼마나 창피하고, 분하겠습니까? 집에 와서, 며칠 동안 회사도 무단결근하며, 분을 삭이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 두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사표를 내기 전,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를 드렸답니다. 뺨 맞은 서러운 생각, 분한 마음, 막상 직장을 그만 두려니 막막한 두려움 등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호소하셨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중, 뜻밖의 음성을 들으셨답니다.
"너는 겨우 뺨 한 대 맞은 것으로 그렇게 분하고, 억울해하느냐? 나는 모든 이에게 멸시천대와 고난을 받았고, 너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 않았느냐? "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침 뱉음을 당하고, 저주와 욕설, 살을 찢는 채찍으로 맞으시면서, 아무런 자존심도, 혈기도, 변명도 없이 묵묵히 당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길을 오르셨던 우리 예수님의 모습이 생각나게 된 것입니다. 집사님은 그리스도 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눈물로 회개하셨답니다. 그리고는 산을 내려와서 다음날 직장으로 출근하셨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가 결근한 며칠 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져있었습니다. 그의 뺨을 때린 그 상급자가 아주 곤란한 지경에 처하여, 징계를 받을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상급자가 회사에서 처리했던 여러 일들이 문제가 되었던 모양인데, 그 중에서 그 집사님의 빰을 때린 사건도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집사님은 자신의 뺨을 때린 그 분을 두둔하며, 그 분의 구명을 위해 힘썼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집사님이 적극 나서서 그 분을 도우니, 결국 회사에서 내리려던 징계도 잘 해결되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뺨을 때렸던 그 상급자는 집사님의 관용과 사랑에 감동되어, 예수 믿고 지금은 직장선교회의 한 지부의 leader가
되셔서 열심히 전도하는 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
예수께서는 넓은 문, 넓은 길은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13절입니다.‘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했습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은...편안하고 쉬운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안위, 편리, 편안함...이런 것들은 기분 좋은 개념의 단어이지만...인간을 개발시키고
성장시키는데 별로 도움을 주는 단어는 아닙니다.
-안위, 편리, 편안함...이런 것들은 천국을 찾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단어들입니다.
*곤충학자 <찰스 코우만> 여사는, 애벌레가 나방이 되는 것을 1년 동안 관찰한 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맨 처음,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작은 구멍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나오려고 하는 나방이 너무나 불쌍해서 가위로 구멍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러나 큰 구멍으로
쉽게 빠져 나온 나방은 방구석을 기어 다닐 뿐 가엾게도 날지를 못하고 버둥대다가 죽어버렸습니다.”
애벌레가 나방이 되어 번데기에 작은 구명을 내고 날개를 밖으로 내밀며 안간힘을 쓰면서 나오려 발버둥 하는 것은...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참 안쓰러운 고통으로 보이지마는...나방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것이 고통이 아니라 날개에 힘을 기르는 필수적인 훈련이라고 합니다.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쉽게 번데기에서 나오면...그만
날개에 힘을 얻지 못한 탓에 날지 못하는 실패한 나방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련이 없는 삶을 동경하며, 시련이 없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이야말로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련이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인격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직면하는 핍박과 시련에 대하여 이해를 잘 못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성도들을 고난과 핍박에서 지켜 평안하게 안전하게 신앙 생활하게
도와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5:3-6 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수학자 <유크리트>가 애굽 왕 어전에서
기하학을 강의하는데 ,왕이 들어보니 어렵거든요, 그래서 “좀
쉽게 배우는 방법이 없나?” 하니까 ‘유크리트’가 “폐하시여! 학문에는
왕도(王道)가
없나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처음으로 생겼다고 합니다. 학문뿐만이 아니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남쪽 약8km(약 5마일 ) 지점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작은 마을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가면 '예수탄생기념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가 처음 지어진 것은 서기 324년 로마의
‘콘스탄티 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베들레헴을 순례하고 난 뒤에, 로마의 황제였던 아들에게 간청해서 그 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 교회를 들어가는 문의 높이가 불과 4피트 정도인 것입니다. 제 키가 5피트가
약간 넘으니, 저처럼 아담한 사람도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그 문으로 누구든지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 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한 장소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반드시 머리를 숙이고 경배하는 자세로 그 좁은 문을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헬레나는 자기 아들이 가장 광활한 유럽의 영토를 다스렸던 로마황
제였지만...황제 어머니의 신분과 그 영광을 다 포기하고, 한평생
이 베들레헴에서 수녀로서 그 교회에 머물며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데 일생을 바쳤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우리의 중심을 파고드는 안위하고 편리한 신앙생활의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초대교회 성도들만큼...기도생활과, 신앙열정과, 충성과, 성령충만과, 전도와, 구제와...선교활동에 있어서...그들만큼 뜨겁게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시대의 신앙의 가장 큰 장애물은 나태와, 게으름, 그리고 편리주의, 자기중심의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지켜보았던 500명교인들 중에 120명만
예수님의 분부를 지키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속된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면서 함께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므로...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하나님나라의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분부를 따르지 아니하고 흩어져 간 380명의 탈출 교인들은...성령을 받지 못하고 그 감격의 현장에서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도시의 복지센터의 한 여직원이 빈민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12살쯤 되는 한 소년을 알게 되었는데, 그 소년은 소아마비로 희망
없는 절름발이었습니다. 그녀는 소년을 매우 불쌍히 생각하였고, 날이
갈수록 더 큰 동정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소년이 걸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시내의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의지할 곳 없는 절름발이 소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호소했다. 의사는
감동하여 즉시 소년을 수술해 보겠다고 승낙 했습니다.
오랜 시간의 수술 끝에 수술은 성공하였고...그 후생국 여직원은 소년의 회복을 위하여 정성을 다했습니다. 의사와
보건센터의 여직원은 열심히 그 소년에게 걷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마침내 소아마비 소년은
같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거의 정상아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중년부인이 된 복지센터의 직원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 소년을 수술해준 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그녀에게 그 소아마비에서 회복된 소년에 대하여 물어 보았습니다. “그도
지금은 성년이 되었겠지요?, 그는 지금 무얼 하며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 부인은 의사에게 되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소년이 자라서 뭐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의사가 대답합니다. “의사? 아니면 과학자가 되었을까요?” 부인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감옥에 있습니다. 살인자로서 형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박사님!, 우리는 그에게 걷는 법만을 가르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걸어야 할 곳을 가르치는 걸 그만 잊고 있었습니다.”
☐
결론 -현재의 안락함, 평안함, 편리함이...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이 힘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가야 할 길과
가선 안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는 일들이 매력적이고 쉽고 즐겁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금 이 시간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좁은 문으로
가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상급을 쌓고 축복을 누리는 길이 되게 할 것입니다. 나의 가정과 내 미래를 복되게 할 것입니다. 우린 이 시간 자문자답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나는 좁은 문 , 좁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라고 말입니다. 2013.1.18. 편집: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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