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하나님은 토기장이(렘18;1-6)

호걸영웅 2013. 4. 15. 21:44

하나님은 토기장이(18;1-6)

[] 18: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 18: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 18: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 18: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18:5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18:6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손에 있느니라

서론) 1.  어떤 흙덩이 하나를 의인화하여 만든 토기장이와 그릇의 이야기 라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진흙덩이의 최고의 꿈은 최고의 그릇작품이 되어서, 왕궁의 식탁이나 부잣집의 장식장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들 흙덩이의 주인은 단순한 토기장이가 나라 최고의 장인이란 것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그릇들은 거의 왕궁이나 부잣집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어느 . 최고의 토기장이가 앞에 앉아서 나를 반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나도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내가 보아왔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작품으로 태어 날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토기장이가 빚는 나의 모습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주둥이에 유난히도 넓은 손잡이. 나를 지켜보는 다른 진흙덩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나를 이런 흉칙한 모습으로 빚은 토기장이의 손길이 밉고 미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불가마에서 나온 모습은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토기장 이가 이런 모습으로 빚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없었습니다.

하지만 토기장이는 내가 완성되자마자 나를 품에 앉고 어디론가 뛰어갔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가난한 농부의 집이었습니다. 아무리 나를 이렇게 가난한 농부에게 팔려고 했어 도 이런 모양으로 만든 토기장이가 나는 생각할수록 미웠습니다. 차라리 바닥에 떨어져 내가 깨져 없어지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농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너무 놀라고 말았습니다. 농부는 농사 일을 하다가 손이 잘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하게 생긴 그릇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사실을 알고 농부를 위해 손이 아닌 팔로 사용할 있는 나처럼 생긴 그릇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나를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농부에게 토기장이가 말했습니다.
고마운 것은 나요. 내가 질그릇을 만들면서 이렇게 기뻤던 적은 처음이요. 그릇은 나의 최고의 작품이요.

 토기장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 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빚던 토기장이의 따스한 손길을 그제야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라는 글이었습니다.

1.    오늘 성경본문에서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이고 우리는 바로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록자인 선지자 예레미야는, B.C 627년부터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586 이후 얼마까지 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선지자였습니다. 그만큼 그는 자기 민족을 사랑했고 자신의 고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멸망해가는 나라와 백성의 고통을 보며 밤낮없이 눈물을 흘렸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품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않으려는 자기 백성들을 보면서 그의 눈물이 마늘 날이 없었습니다.

이런 절망적이 상황 속에 놓여져 있을 , 하나님은 그에게 소망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민족을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론)

가) 하나님은 토기장이 같은 분이십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은 질그릇이나 공예작품, 혹은 예술품을 만드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솔로몬의 옷보다 고운 백합화 찬송하는 맑은 새소리 아버지의 지으신 솜씨 깊도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면서, 이모든 것이 주님의 솜씨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좋으셨던 것은 바로 인간의 창조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창조물들은 만드시고 다음에 기쁘셔서보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셨는데,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는심히 좋았더라라고 하면서 너무 너무 행복해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시고 너무 너무 행복해 하셨습니다. 건축가나 예술가가  훌륭한 건축물이나 예술품을, 온갖 고생을 다하여 만들고 나서는, 멋진 모습을 보며 너무나 보람 있어 하시고 기뻐 하셨듯이,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는 그렇게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닮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형상을 닮은 것이 만들어지고, 그리고 사람이 바라는 바 대로, 살아 움직여줄 때에 하나님은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흠 없이 완벽했고 아름다웠던 사람들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서는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숨으려고 하고, 가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물어보십니다. 아담에 내가 어디 있느냐 자꾸 숨느냐! 라고 물어보십니다. 그랬더니 제가 벌거벗어서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절대로 먹지 말라고 선악과를 사탄의 유혹에 빠져 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의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노아 시대에 와서는 이상 그대로 놓고 수가 없는 지경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처음으로 사람을 만든 것에 대해서 가슴 아파하셨고, 그리고 다시 재창조에 맞먹는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만드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꽃병을 만들 때는 그곳에 꽃을 꽂기 위해서 만들며, 그릇을 만들 때는 음식을 담기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만들 때도 타고 다니려는 목적이 있어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랑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려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자신을 파괴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벗어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마음은 고통과 번민 속에 빠져 버립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니 하고 , 세상 죄에 빠져들고 쾌락을 사랑하고 효도하지 못할 때에 여러분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 것입니까? 10달을 자기가 배 속에서 길러 죽을 고통을 다해 낳고 십 수년을 금이야 옥이야 길렀건만, 못된 일에 골몰하며 부모의 말을 무시하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부모는 언제나 자기 자식이 최고이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도 제일 잘나 보이기를 원합니다. 아니 중간이라도 가길 원합니다. 교회에서 무슨 발표회라도 할 때에는, 자기 아이들이 나오면 그 부모들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자기 자식 나오면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자기 자식 잘되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창세기1:26-28절에 보면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면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환경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다 망가트리고 있습니다.

 환경을 다스리니까, 지금 인류가 환경의 재앙 속에서 살아갑니다. 오존층은 사라져가고, 점점 겨울이 없어지고, 남극의 빙하가 녹아 내리고, 지구상에 없었던 이상한 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류가 환경에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탐욕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나) 부서뜨리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돌아오라 고 경고를 하시고, 선지자를 통해서 애원을 해도 돌이키지 않는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한가지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향해서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말을 네게 들리리라(2)하십니다.
가서 보았더니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그만 집어 던져서 부서뜨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데도, 토기장이의 눈에는 엉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뭉개어서 다시 또 만들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진정한 토기장이는 밥그릇 하나, 컵 하나에도 자신의 정성과 자신만의 기술을 불어 넣습니다. 만들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비록 가난하게 살 수 밖엔 없다 해도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장인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장인이 만든 물건은 절대로 싸구려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의 물건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이든 예외가 없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자권을 얻기 위해, 자기 형의 고픔을 이용해서 팥죽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았고, 아버지를 속이려고, 몸에다 양의 털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던 그가 자기 보다 단수가 높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오히려 자기의 사랑하는 부인 라헬을 얻기 위해, 마음에 없었던 언니 레아를 얻게 되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외삼촌 라반을 속이고 말 한마디 없이 제산을 챙겨 삼촌 집에서 달아나는 야곱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부수어 버립니다. 얍복 강가 앞에서 그는 천사와의 씨름을 통해서 철저하게 하나님과 만나게 하시고, 그의 환도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통해서 그는 하나 님으로부터 다시금 빚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가 야곱에서 이스라엘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진정한 백성으로 빚기 위해서, 우리를 당신의 참된 자녀 삼기 위해서, 우리를 그렇게 다시금 빚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6절에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믿음으로 살라 하십니다. 징계도 하십니다. 비참한 고통 속에도 빠뜨리십니다. 불로도 연단하십니다.

다) 새로운 피조물로 빚으시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것이 있습니다. 본문6 후반에 뭐라고 합니까!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손에 있느니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짓이기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 질그릇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자유의지 주신 것입니다. 자유 의지는 생명력입니다. 그리고 창조력입니다. 그리고 선택권입니다. 그 자유의지를 통하여 우리 인간은 스스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제일 기뻐하는 것이우리 애는 스스로 알아서 잘해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공부하고, 놀고, 일할 일하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모습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매일 좇아 다니면서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면서 감시하고 야단치고 해야지 한다면 속상할 것입니다. 로보트는 그런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모습은 기쁨입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 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세상 죄를 향해 좇아 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다 못해서 주변의 강대국들과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사랑의 매를 다시 드십니다. 그들에게 환난과 연단의 날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새 그릇을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최고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드셨고, 야곱은 이스라엘로 만드시고, 시몬을 베드로로 만드시고, 사울은 바울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여전히 당신의 완전한 작품으로 만들기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상 죄로 말미암아 회복될 없었을 것만 같았던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선언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토기장이 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가장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 내기 원하십니다. 불량품이 나오길 원치 않으십니다.

작품의 가치는 물건에 있지 않습니다. 작품을 누가 만들었는가에 있습니다.

일본의 하꼬네라는 곳에 가면 조각 미술품들이 많이 전시된 미술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피카소 작품관이 있는데, 거기에 피카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작품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이저거는 나도 만들겠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그런 것들을 만들어 보십시오, 그런 전시장에 기쁘게 전시해 줄까요? 미술전시장에 가서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손으로 그린 같지 않고 발로 그린 같은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들 밑에 보면 엄청난 가격이 적혀져 있습니다. 어떤 것은 수천 만원에서 수억, 수 백 억원 짜리 작품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작품이 어떻게 생겼는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만들었느냐! 누가 그렸느냐! 작품의 가치를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입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비관하고, 스스로 자기를 천히 여기고, 열등감에 빠져있고 우울증에 붙잡혀 버린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결론) 오늘 우리는 하나님 손에 다시금 빚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비록 지난날 우리의 삶이 그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깨어지고 부서진 기억투성이라 할지라도, 다 깨어져 버린 듯 보일지라도 , 이제 우리가 다시 하나님 손에 맡겨지면, 야곱이 이스라엘 되고, 사울이 바울되고,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듯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바라보는 지혜와 용기를 가지십시다.

 이 시간 여러분이여, 여러분을 하나님이 빚으시도록 맡겨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은 새롭게 될 것이요,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인격이 만들어 질 것이요, 새로운 인생이 될 것이요, 최고의 삶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지막 인생의 순간에는, 여러분 자신조차도 깜작 놀라워하고, 감격해 하고, 행복해 하고, 감사와 찬양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멋지고 보람된 인생을 살았음을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 2013.4.9.오전 12 59 ,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