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야 강해

다메섹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개(사17:1-11)

호걸영웅 2013. 5. 9. 00:53

다메섹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개(17:1-11)

 

(17:1)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17:2)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17:3)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백성이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17:4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 살진 몸이 파리하리니

[] 17:5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 17:6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 삼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사, 오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7)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17:8)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

(17:9)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17:10) 이는 네가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식물을 심으며 이방의 가지도 이종하고

(17:11)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로 두르고 아침에 너의 씨로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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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오늘의 본문, 17장의 주요내용은 다메섹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개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메섹은 앗수르의 왕 티글랏 빌라살의 침공이 있었던 기원전 333년과 332년 사이에 대파되었는데, 근래 발견된 비문의 기록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다메섹을 침공하여 그 목베어 죽인 자의 수효는 헤아릴 수가 없으며... 500개의 성읍을 흙더미로 만들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고로 오늘 의 본문 1-3절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증거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 2절엔 아로엘의 요새라는 말이 나오는데, ‘아로엘은 이스라엘 변방 북부에 세 개의 군사 도시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에 대한 별명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민족을 심판자로 종종 사용하시는데, 이는 결코 이방민족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기 위해서임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본론)

)다메섹의 멸망

역대하 16:7에 보면,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현재 시리아+이라크 서부 일부 지역)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솔로몬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니 다메섹 나라 즉 아람나라가 솔로몬의 통치에서 벗어나 나중에 이스라엘을 지독스럽게 괴롭히는 나라가 됩니다.

 

상등수의 사람들은 처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는 감격하고 감사하게 되지만 늘 은혜가 함께하면, 마치 당연히 받는 것으로 여겨 그 고마움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단은 역사하여 감사보다는 불평은 찬양보다는 불만을 토로케 하는 죄를 짓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지은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곤 뭔가 새로운 것, 자극적인 것,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하고 눈을 돌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1:3-5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내가 다메섹 빗장을 꺾으며 아웬 골짜기에서 그 거민을 끊으며 , 벧에덴에서 홀 잡은 자를 끊으리니, 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길에 이르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메섹이 한 때는 이스라엘의 길르앗에 쳐들어 와 점령한 적이 있었습니다.

길르앗은 갈릴리 호수 아래, 요단강 북동부에 있는 요새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을 점령했을 때 다메섹은 매우 극악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살육하거나 핍박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살육하고 폭행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잔인한 짓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냥 묵과하지 않고 그들이 행한 대로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다메섹 민족은 심판이 왔을 때, 허수아비 같은 쓰러졌습니다.

 

중국에서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세워질 때에, 항우와 유방이라는 대장군이 활약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초나라의 같은 고향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우가 진나라 수도인 함양에 쳐들어 갔을 때, 20만 명의 진나라 군사를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항우는 훗날 그들이 자신들에게 대항할까 걱정이 되어, 20만을 생매장하게 되기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야밤에 갑자기 그들을 밀어 붙여, 계곡에 몰아넣고 생매장을 합니다. 살려고 뛰어 오르는 진나라 병사를 무자비하게 창으로 찔러 죽이고 칼로 베어 죽입니다. 그리곤 3만 군사를 동원하여 흙을 마구 쏟아 붓습니다. 그 잔인함이 온 세상에 알려집니다. 민심이 항우를 떠나 버립니다. 7070승이라는 전과를 기록한 항우의 군대가 마침내 대패를 하는 날이 왔으니, 훗날 황우는 유방의 계략에 말려 해하전투에서 모든 군사를 잃고 동성( )이란 곳으로 달아나다 5명의 추격군에게 공격당하여 전사하고 맙니다. 물론 그 당시 항우의 아내 우미인이란 여인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초한지라는 중국 역사 소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때가 기원전 202년이니, 티글랏 빌라셀의 다메섹의 멸망이 있은 후, 130년 정도 후의 일입니다. 훗날 역사가들은 전쟁으로 인한 대학살의 역사를 말할 때, 이 항우의 죄를 반드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분수를 넘는 월권행위는 반드시 그 댓가를 받는 것입니다. 다메섹이 그런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 유다 왕 아하스의 죄악과 이스라엘의 죄악

 

그런 다메섹도 왕년에는 이스라엘서 뿐만 아니라, 유다 왕인 아하스 왕에게 있어서 흠모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다메섹의 신아세라와 태양신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아하스 왕은 앗수르(이라크 지역 일대) 를 방문하면서 도중의 기착지인 아람지역(앗수르 서편)에서 거대한 다메섹의 신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에 의해서 앗수르 나라가 승리를 했다고 하니, 그것이 부러워서, 자기 나라 제사장에게 전갈을 보내어, 다메섹 신전을 그대로 모방한 종교를 수립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열왕기하 16:10-12에 보니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불신자들의 형통을 부러워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안 믿어도 편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보고 내심 얼마나 부러워했습니까? 하지만 다 헛된 것이요, 잠시의 누리는 형통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라

1. 이사야 17:7-11 은 이스라엘 백성의 시야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시야란 관심의 초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어디로 옮겨갔느냐? 무엇을 의지하느냐?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삶의 최대 기준이 무엇이야? 그리고 그 결과로 장차 어떤 운명에 처할 것이냐 까지 결정되는 것이, 바로 무엇을 집중해서 보고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2. 인간의 죄 된 속성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때로는 번거롭고 귀찮기 때문입니다. 신경 쓰입니다.

 

자기의 이익이나 필요가 있을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것이 기복주의입니다. “아이 러브 유가 아니라 아이 니즈 유 저스트만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고스톱을 치면서도 기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발 이 판만큼은 꼭 따게 해주옵소서라고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심판을 행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제발 너희들 만큼은 원래의 자리에 돌아가서 ,거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다시 한 번 돌이키라는 뜻에서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 7-8절에서 보면, 소위 하나님 백성들이라는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따로 만든 것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아세라 여신의 목상이요, 그리고 태양상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현실 세상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결과물들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부와 예수님과 성령의 이름이 난무하지만 그 내막은 실은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미신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3.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

당장의 현실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 해결책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눈부시고 아름답고 지혜롭게 할 것만 같고 영생을 줄 것 만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선악과를 먹는 일과 같습니다.

가롯 유다가 은전 30냥이 탐이나서 예수를 팔아 먹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목을 매어 자살을 하고 그러다 땅에 떨어져 배의 창자가 터져 죽으니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구리장색 알렉산더는 바울을 버리고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 결과가 결코 좋을 수가 없습니다.

4. 현세적 자랑을 피하라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를 축적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곗놀이를 하다가 돈을 떼이고 울고 불고 할 때를 종종 봅니다.

돈을 꾸고 도망치는 집사들 때문에 교회가 난리법석이 납니다.

돈은 은행에서 꾸어야 합니다. 돈을 제 때 못 갚아 원수가 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형 교회들이 부동산 투기를 하고 주식 투자를 하다가 몇 억씩 되는 돈을 날리는 일들이 얼마나 허다합니까?

헌금은 전도와 선교와 교육과 구제에 써야 하는데, 엉뚱한 재테크에 쓰기 바빳다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를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습니까?

무리하게 건축을 하다가 망하는 교회, 부도난 교회가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분수를 모르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에 어떤 목사님이 도둑질하거나 마약을 팔거나 매춘하여 번 돈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이 받으실까요?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불법적인 돈으로 하나님께 헌금하면, 사람은 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 돈은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본문을 7,8절을 보면, (17:7)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겠으며 그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겠고

(17:8)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을 다시 섬기며 경배하는 사람들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양의 초점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백성으로 바뀌는 것을 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적인 시야에 초점을 맞춰선 아니 됩니다. 끝이 좋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적절하게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하며, 늘 기도하고, 늘 생각하고 , 근신하고 살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135.1.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