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그 중에 제일은 사랑! (고전 13:1-13)

호걸영웅 2013. 8. 8. 10:59

 

                                   중에 제일은 사랑! (고전 13:1-13)

 

 

 고린도 교회는 문제투성이의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은사들을 주셨으나, 그것으로 감사하거나 만족하지도 못하고 서로 섬기지도 아니하고, 다툼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셨을까요?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받은 은사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데 사용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들을 과시하기에 바빴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잘못된 은사에 대한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서, 오늘의 본문인 , 고전 13장을 기록했습니다.

  오늘 본문대단히 중요한 명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이 없으면 모든 은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방언도 많이 하고, 예언도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에게는 있어야 할 사랑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팥소(앙꼬) 없는 찐빵이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와 같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너희들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존재의 가치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헤르만 헤세' 작품 중에 ' 가지 소원'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위한 소원을 묻습니다. 그때 아기의 엄마는 '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엄마로서의 간절한 소망을 말합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정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아이는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사랑을 줄줄 몰랐고 점점 교만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
  고민에 빠져 우울해 있던 어느 우연히 노인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간곡히 소원을 말합니다. '제게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아이가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을 줄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
 그러므로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귀합니다.

   

 ▶유명한 미술가 '루오' 작품 중에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 날에도 향을 묻힌다' 제목의 판화가 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아픔을 주는 도끼 날에 조차, 독을 주는 아니라 오히려 향을 묻혀준다는 것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입니까?
 

그래서 본문은 참된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목록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라 했습니다.
 라는 말은, 영적 체험을 많이 하고, 성경 지식과 학식이 풍부하고, 언변이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위대하고 우러러 보이는 은사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 심벌즈나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사랑이 없는 히틀러의 웅변 때문에 수많은 나치의 전사들이 총칼을 들고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는 것이지요. ,

그러나 아프리카 대륙을 복음화 것은, 리빙스톤의 웅변이 아니라 리빙스톤이 원주민들에게 보여 준 사랑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2절에서는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했습니다.
  '예언하는 능력',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 이런 것들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그러나 참된 사랑이 빠진 예언, 기적이나 지식은, 사람을 일등 종교 사기꾼으로 만들 뿐입니다.

 

모세의 때에도 모세가 지팡이로 뱀을 만들 듯, 그들의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던 애굽의 우상숭배자들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도 아니요, 영혼을 구원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마술사 시몬도 성령의 은사들을 돈으로 사려다가 저주를 받은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빠진 은사는 무익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3절은 또한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할지라도,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 하십니다.
 무슨 말인가? 마디로 재산을 털어 구제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구제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매스컴을 보면 , 재산을 털어 대학에 기부하고 자선 단체에 헌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건이요 기적 같은 아름다운 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기적 같은 조차도 사랑이 없으면, 자기 명예만 높이고 자기 자신만 만족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죄의 문제,영혼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제할 , 반드시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구제헌금을 전달했습니다. ? 생색을 내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과거 상당수의 한국의 대학생들이나 청년들이 악한 세상과 잘못된 정치를 비관하여 분신 자살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속에는 증오와 미움과 저항과 절망만이 있는 것이지 진정한 구원이나 사랑은 없습니다.

 

6.25 전쟁 때에는, 중공군이 30만명이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의 승리를 위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정의나 이념을 위해 얼마든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죽음도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없다면, 무익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공산주의는 무너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망해가고 있기 때문이요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죽고 어떤 사람은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진정한 구원이나 영원한 생명의 유익은 없습니다.

 

4~7절엔 사랑의 본질 15가지가 나옵니다.
 바울이 말한 사랑은 아가페라고 하는 사랑인데, 곧 하나님의 사랑, 혹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인 매우 에로스와는 다릅니다. 아가페 사랑에는 상당한 아픔과 고통도 들어 있고 눈물과 희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곧 아가페 그 자체이십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곧 하나님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진정 이 아가페 사랑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⑴먼저 아가페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여기에서 "참는다" 하는 것은 오래 참으면서 불평 없이 참는 , 그리고 참는 이유를 알고 기뻐하는 견딤 말합니다
.
 

 초대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이것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그릇된 대우를 받고 잘못 취급 받아 상처를 받았을 , 복수할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복하지 않는 능력이다 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참는 것에 대한 미덕이 너무 부족합니다. 쉽게 짜증을 냅니다. 너무 쉽게 포기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의 다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향하여 오래 참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구원의 은혜 안에 있을 없었을 것입니다.

 

⑵사랑은 '온유합니다.
  여기서 '온유하다' 것은 부드럽고, 인자하고, 친절한 행동을 말합니다. 특별히 온유하다는 것은 단순히 심리적인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하여 온유를 베푸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쉽게 보복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정적 가운데 '스탠톤'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문 지상을 통해 링컨을 '교활한 어릿광대'라고 했고, 혹은 연설에서 링컨을 조롱하면서 '여러분은 고릴라를 보러 아프리카까지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멋진 고릴라를 감상할 있습니다'라고 까지 비꼬았습니다.
  그런데 훗날,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 내각의 각료를 임명할 , 놀랍게도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링컨은 조용히 대답 하였습니다. ' 자리에는 사람이 적임자요'라고 그런 링컨이 암살되자, 그의 시체 앞에 스탠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꿇어 엎드려  '여기 세계가 지켜보았던 사람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누워 있노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링컨은 온유한 사랑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⑶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합니다.
  여기서 '투기'라는 말은 '시기' 내지는 '질투'라고도 합니다. 말의 뜻은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부요함, 명예, 행복을 보고 마음이 상해서 분노가 속에 끊어 오르는 ' 의미합니다
.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두 형제가 각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형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시고, 동생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고로 형은 동생에 대한 시기심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아무 죄 없는 동생을 돌로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형이 누구였습니 까? 가인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은 결국은 투기심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
  ▶요셉을 죽이려 했던 형들의 마음에도 바로 이 투기심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동생 요셉만 사랑하는 같습니다. 동생에게만 채색 옷을 지어서 입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들은 동생을 죽이려다가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립니다. 투기는 잔인합니다.  

 

 ⑷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투기의 초점이 상대방에게 있다면, 자랑의 초점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투기는 타인의 업적을 파괴하고 , 자랑은 자기의 업적을 극대화시킵니다
.
  서양 속담에 ' 수레가 요란하다' 말이 있습니다.  솔직히 여러분, 사람이 잘나 봐야 얼마나 낫겠습니까?
도토리 키 재기가 아니겠습니까?

  ⑸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여기 '교만' '자만심으로 튀어나온 부풀어진 상태' 의미합니다. 교만은 아주 노골적인 행동으로 아예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무시하고 짓밟는 행동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시원찮고 나만 최고라고 생각하는입니다..


  ⑹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결코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깝다는 때문에, 서로가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서로가 지켜야 할 예의 범절을 잊어버리고 상대방을 함부로 대함으로써 상처를 수가 있습니다.

  ⑺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말세적 특징 중에 하나가,사람들이 지극히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남이야 어쨌든, 나만 배부르고 나만 편하고, 나만 출세하면 된다는입니다. 그러나 참 사랑, 아가페 사랑은 언제나 주고 베풉니다.


  '빅토르 위고' '나인 쓰리'라는에서,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무렵, 군인들이 숲을 지나가는데 허기진 어머니와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개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빵을 받자 맞자 곧 등분하여 아이에게 나누어줍니다. 모습을 병사가 말하기를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가?. 그때 상사가 말합니다. ', 바보야! 바로 그게 어머니야’……라고 했더랍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 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노래합니다.
 

⑻사랑은 성내지 아니합니다.
  현대인들은 혈기와 분내는 일이 많습니다. 그럴까요? 요즘 세상이 복잡하고 경쟁 사회에서 살다 보니 자연 혈기가 나고 분이 폭발한다고 합니다
.
  그러나 신앙인들은 절대로 본받을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의 영은 분내고 성낸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집사 스데반은 원수들에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성내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 마음속엔 참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⑼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합니다.
  악한 생각에서 악한 행동이 나옵니다.  모든 범죄들도 남을 헤쳐서 자기가 이익을 보려는 생각에서부터 옵니다.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⑽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⑾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소극적으로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
  진리는 '진실, , 정직' 말하지만, 실은 예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⑿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여기서 '참는다' 것은 '덮는다', 또는 '감춘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붕을 가리키는 말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는 지붕과 같다는 말입니다. 남의 허물이나 또는 남이 자기에게 잘못을 들추어내어 고발하거나 공개하지 아니하고, 덮고 감추어주느라고 참는 것을 말합니다.

벧전4:8절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말씀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다른 형제 자매의 비리나 과오를 들추어내어, 비난하고 욕하지 않습니다
.
 

 ⒀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신뢰합니다.
  진실된 사랑은 믿음에 관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믿고, 아내가 남편을 믿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믿고, 자식이 부모를 믿습니다. 교회 내의 형제자매가 서로 서로를 믿어줍니다.  
 

 ⒁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고 견딥니다.
 사실상 사람은 여러 차례 변합니다. 지금의 상황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얼마든지 바뀔 있는 가능성을 내다보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고난과 비난이 있을지라도 넉넉히 참고 견디어 내는 힘을 줍니다.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해도 견디어 냅니다. 우리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고난도 견디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참된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13 에선, 믿음 소망 사랑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했습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돈과 명예와 향락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도리어 돈에 대하여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다'(5: 10) 했습니다.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인간적인 사랑은 조건적 사랑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의 조건이 사라지면 사랑도 변합니다. 그러나 진짜사랑은 무엇입니까? 죄인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차원이 다른 사랑입니다.

 49: 15절에 '여인이 어찌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잊지 아니하십니다.

결론)

'어거스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마귀의 자식과 하나님의 자녀를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마귀의 자식이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나는 어떤 사람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샘솟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사랑 아닌, 그릇된 사랑, 모조품 사랑이 불타오르고 있습니까? 이 시간 스스로 답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고: 송수천 / 편집: 안익선 2013.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