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는가? (갈라디아서 6: 11~17)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
|
[갈] 6:12 |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
[갈] 6:13 |
할례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
[갈] 6:14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갈] 6:15 |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
[갈] 6:16 |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
[갈] 6:17 |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한 바울
오늘 본문 말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보면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6:14)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행8:35, 롬1:1~4)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 바울에게는 자랑거리가 많았습니다.
- 당시의 최고 학문을 했던 가말리엘의 문하생(행22:3)이었습니다.
- 장막을 짓는데도 빼어난 기술자(행18:3)였습니다.
- 당시 숱한 유대인들이 부러워하던 로마의 시민권자(행22:28)였습니다.
-가문으로 보아도 제사장 가문인 ‘레위인 중에도 순수혈통의 레위인’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외에는 더 자랑할 것도, 자랑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그 십자가가 왜 자랑거리였습니까?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참으로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며, 그 사랑의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인들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 비로소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천국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요11:25 ~26).
그래서 우리 기독교 교회들에서는 교회 지붕에도 십자가, 강단에도 십자가, 창문에도 십자가를 세우거나 그려 놓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에까지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착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십자가가 영생의 소망이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기에,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 십자가를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도 바울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은 예수의 흔적들(the marks of Jesus)을 가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전도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유대인 중 몇 명이, 믿음을 저 버리고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서 바울의 사도권까지 부정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절에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분명히 다시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서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도리”를 밝히면서,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더 이상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강력하게 선언했던 것입니다.
"흔적"이란 말은 헬라어로 "스티그마타"라고 하는데, 영어 성경에는 마크(mark)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고대(古代)에는 자기 소유의 노예나 짐승에게 화인(火印)을 찍어서 소유권을 표시했습니다. 요즘에도 방목하는 목장에서 누구의 소유인지 알 수 있도록 표시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 삶 속에 뿐만 아니라 온 몸에도 많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돌에 맞아 거의 죽을 뻔했고(행14:19) –사십에 감한 매를 세번 맞고, 태장으로 맞기도 했고(고후11:25),감옥에도
여러 번 갇혔으며 물에 빠져 죽을 뻔도 여러 번 하고, 굶기도 수없이 하고 헐벗고 추위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핍박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고도 많았습니다.
(고전4:11 / 고후4:10~11 / 6:5,9 /
11:24~25)
그로 인해 그의 몸에도 많은 상처들과 후유증들이 있었습니다. 그 상처들이, 그 흔적들과 고난을 견딤이 바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들이었습니다.
• 흔적은, 낙인은 소속을 나타냅니다.
한편, 흔적, 혹은 낙인은 확실한 주종(主從)관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당시 한번 찍힌 낙인은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 노예로 낙인 찍히면 평생토록 주인의 뜻에 따라 절대 순종해야 했습니다.
누가 주인인지, 누구에게 속한 노예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표현은 <나는 예수님께 소속되어 있으며, 예수님의 것이다>라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흔적을 가지셨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가진 흔적이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겪은 마음 상함이나 아픔, 손해가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당한 따돌림이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까?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며… 당당한 삶을 살아야 하고 충성된 삶을, 칭찬 받는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살아가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신앙 생활하면서, 어떤 열매를 맺었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갖게 된 흔적이 무엇인지요?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감수할 것이 있습니다. - 희생(犧牲)이 있어야
합니다.
• 첫째로, 시간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해 일주에 몇 시간이나 주님께 드리고 있는가 먼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주일 날 잠깐 한 시간 예배 드리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있진 않습니까? 아니
그것도 매주 15분, 20분, 혹은 30분, 늦게 오기
일수이진 않습니까? 어쩌다 늦는 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만, 늘
상 늦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또
나는 일주일에 얼마나 기도하는가? 성경 보는가? 경건의 시간을
갖는가? 전도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사용하는가? 등등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또 교회를 위해 예수님을 위해 얼마나 봉사하는데 시간을 드렸는가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희생이 시간의 희생입니다.
• 두 번째로, 물질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물질을 드림이 없다면 그것은 온전한 희생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너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드림이 없는 것은 희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 속담에는 “돈이 말한다”말이 있다고 합니다. 돈은 선하거나 악한 것이기 이전에 말을 합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돈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곧 내 능력이 인정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프로 야구 선수가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왜입니까? 엄청난 연봉 혹은 개런티를 받기 때문입니다. 단, 실력이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천국은 돈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릴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무너져 가는 교회 건물을 수리할 수 도 있고 고장 난 보일러도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돈이 말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 그 은혜에 감사하며 내 삶의 일부를 이렇게 희생으로 드립니다!” 라고 말입니다.
• 세 번째로 십자가를 지며 생긴 상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가졌던 동일한 '핍박과 고난의 흔적'은 아니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마음 상하고, 눈물을 흘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손해가 있고, 아픔이 있어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 비판(批判)을 감수해야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 외인들의 비판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 잘 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러분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습니다. “야! 예수 믿는 것은 좋지만 미치진 말아라!” 라고 충고하기도 합니다. 그런 비판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함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간의 비판도 감수해야 합니다. 자신은 일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향해 비난합니다. 그런 비난도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감수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천사는 아닙니다. 또 늘 성령 충만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 안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기꺼이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편이 십자가입니다. 혹은 아내가 십자가이거나 부모나 자녀가 십자가일수도 있습니다. 그
짐을 잘 지고 가셔야 합니다.
- 일터에서 져야 하는 십자가가 또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기에
기꺼이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 교회에서도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기꺼이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권사, 집사, 교사, 구역장, 혹은 찬양대원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져야 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
짐을 잘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과거에 출석하시던 성도 가정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를 가시곤 하십니다.
그런 분들 중에 가끔 교회에 출석하면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와 제대로 교제다운 교제도 아니하시고, 구름 따라 바람 따라 가십니다. 성도들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안보이니 갔나 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봉사와 섬김, 희생과 헌신의 흔적을 남기고 가신 가정들이 더 많습니다. 드러나게, 표나게 큰 일을 하고 가신 분들도 감사하지만, 이름 없이 빛 없이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 하신 분들이 더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그리웁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웨인 다이어’라는 분은 “우리 인생의 삶의 척도는 당신이 무엇을 축적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주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예수를 위해 무엇을 드리느냐가 우리 신앙의 척도입니다.
*김종수 권사님이란 분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본 적이 있습니까? 위험이나 위기(risk)를 감수한 적이 있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김종수 권사라는 분은 미국의 내로라 라고 할 만큼 큰 병원에서 일하시는 유명한 암 전문 의학박사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암을 치료할 땐, 암환자들에게 꼭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더욱 치료효과도 좋고, 혹 그분이 치료받지 못하고 돌아 가셔도 천국으로 들어 가시니 후회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분이 근무하는 미국의 병원 법규에는 ‘환자에게 함부로 공공연하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다고 합니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 암환자인 ‘제임스 거스’라는 환자를 그가 치료하던 중, 종종 복음을 전했지만 악착같이 복음을 계속해서 복음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이 얼마 못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종수 박사는 다시 한번 또, 그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권면을 했지만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계속 그리하면 간호원이나 누가 병원 측에 말하는 경우, 그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그 병원에서도 쫓겨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래 내가 할 바는 다 했어! 왜 내가 그를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나?”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병원문을 나서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디서 이상한 음성이 들렸답니다. “피! 피!”라는 말이었습니다.
“피! 피!”라니? 무슨 말이지?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습니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잘못 들었나 하고 다시 나가려 하는데 또 “피! 피!”하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그때 마침 김종수 권사는 깨닫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다시 한번 죽기 직전에 있는 그 암환자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 봐야지!”하고 다시 병실로 들어갑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내 직장에 연연하고 내 이익에 연하여, 지금 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예수께서 그 영혼의 피를 내 손에서 찾으신다는 말씀이로구나!”하는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원종수 권사는 다시 발길을 돌려, 마지막으로 정말 꼭 한번만 더, 그에게 복음을 전해보자!라고 생각하고 다시 병실로 돌아갔습니다. 그 병실엔 환자의 가족들도 여럿 와 있었고, 수간호원들과
레지던트니 인턴이니 하는 여러 사람이 들락 날락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종수 권사는 그들이 원종수 권사를 고발하던 말든, 의사의 자격증을 뺏기건 말건! 병원에서 쫓겨나건 말건! 아무 상관 없이…그의 손을 부여잡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참으로 간절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거스야! 이제 너에겐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몇 일도 더 살수도 없다. 죽기 전에 꼭 예수를 믿으시길 바란다. 우린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누구나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야. 만약에 너가 그냥 너의 죄를 가진 채로 죽는다면 절대로 천국에 갈수 없어. 난 마지막으로 권면한단다. 예수를 믿길 바란다. 그분만이 온 인류의 죄를 위해,아니 나와 너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2,000년 전에 죽으신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시란다. 그분이야말로 성경이 오래 전부터 보내주시겠고 했던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이요, 우리 죄를 지고 대신 죽으신 우리의 희생양이란다. 어떻게 하겠니? 너의 죄를 위해 죽으신 그 예수를 마음 속에 받아들이지 않겠니? “하고 간절히 복음을 전했답니다.
마침내 성령님이 제임스 거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그 환자는 눈물을 주루루룩 하염없이 흘리며, 그 예수를 자기가 이제 믿겠노라고 자기 마음에 영접하겠노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진심으로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내 죄를 씻어 주옵소서!”라고! 그리고 그는 “닥터 원! 땡큐! 탱큐!”라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물론, 얼마 후 그는 이틀을 채 못 넘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평온한 가운데 천국으로 갔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원종수 권사처럼 과연 나는 예수를 위해 손해 본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걸어 본 적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위험(Risk)을 감수해 본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 시간 묻습니다. 당신에게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과연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지금 예수를 위해 어떤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까? 과연 여러분들에게는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만약 오늘 이렇게 물으신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난 널 위해 내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런데 넌 날 위해 넌 무엇 주느냐?” 라고 말입니다.
참고:고신일 /편집:안익선 목사2013.10.30.
찬송:185장 내 너를 위하여
'설교모음(Korean sermon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릴 향한 하나님의 뜻(살전 5:16-18) (0) | 2013.11.23 |
---|---|
의인 오바댜(왕상18:1-6절) (0) | 2013.11.23 |
Blessing for the righteous person(2ti 2:20~22) (0) | 2013.11.07 |
성결한 자가 받을 복 (딤후2:20-22) (0) | 2013.10.20 |
The Church We Should Be(Act 2:40-47) (0) | 2013.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