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다한 부활의 증거(막 16:1-11)
[막] 16:1 |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
[막] 16:2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
[막] 16:3 |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
[막] 16:4 |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
[막] 16:5 |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
[막] 16:6 |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
[막] 16:7 |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
[막] 16:8 |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
[막] 16:9 |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
[막] 16:10 |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
[막] 16:11 |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
서론)
1. 주전 490년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그리스를 침략을 했습니다. 페르시아 군은 승승장구하며 아테네를 향해 쳐들어 갔습니다. 결국 한 광야에서 아테네 군과 페르시아 군 사이에 대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 아테네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이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크게 승리하여 나라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때 '페이디피데스'라는 아테네의 한 용사가, 이 소식을 본국에 알리기 위해 약 42Km(약26miles)즈음의 길을 달려가서 승전보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달려오느라 탈진한 그는, 승리의 소식을 전하자 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그 전투가 벌어진 광야의 이름이 바로 마라톤 광야입니다. 지금의 마라톤 경기는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그 전투지역의 지명을 따서 이름을 붙인 데서 생긴 경주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 승리의 소식을 아테네 시민들이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페이디피데스’는 목숨을 내놓고 달려가서 이 승리의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소식을 헬라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유앙겔리온', 곧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2. 지금 우리는 신앙적인 용어로 ‘복음’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전도하는 것을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 복음이라는 말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말이 어떨 때 많이 쓰였을까요?
가장 대표적으로 쓰인 것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입니다. 세상에 ‘승전 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새 왕이 즉위할 때도 쓰였습니다. 새 왕이 즉위하면 나라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음’에도 이렇게 새 왕이 즉위했다는 뜻과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2,000년 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왕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할/ 사망 권세를 깨고 죽음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건들을 복음, 곧 ‘유앙겔리온”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어찌하여 이 놀라운 부활의 사건이 참으로 믿을만한 것이며, 왜 복음의 핵심인가 하는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가)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부활하시기까지는 삼 일간이라는 날짜의 차이가 있습니다. 좀더 정확한 시간적 계산으로는, 금요일 오후 세 시에서 일요일 새벽까지로 보아서 대략 35시간 내외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상에서는 매우 분주하고 긴장된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마 그 날의 안식일보다 긴장이 감돌던 안식일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무리들은 과연 소문대로 예수가 살아날 것인가? 또 살아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진 않을까? 폭도들이 무덤으로 들이 닥치지 않을까? 하는 등의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보낸 안식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신에 바를 ‘향유’를 챙겨서 아침 일찍이 일어나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아침, 그 무덤에는 너무나 놀라운 일들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무덤을 막는 커다란 돌문이 무덤에서 옮겨져 있습니다. 한두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가녀린 여자들이 쉽게 옮길 수 없는 매우 무거운 돌 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강인한 여러 군병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문이 옮겨져 있습니다. 여인들에게 나타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천사가) 말합니다.
[막] 16:6 |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
[막] 16:7 |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했습니다. |
그렇습니다. 그 무덤에는 시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다시 살아나 갈릴리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는 184 키로 미터(115 miles)나 떨어진 곳입니다. 온 몸에 물과 피를 다 쏟으셨던 예수, 혹 살았더라도 중환자실에 계셔야만 할 그 예수께서, 죽은 지 삼 일이나 된 시신이셨던 그가 다시 살아나, 사지가 멀쩡한 제자들보다도 더 빨리 갈릴리까지 가신다는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부활과 빈 무덤의 사건은 왜 너무도 놀라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5가지 이유가 있음)
1)돌문의 무게는 무려 2톤 정도 되는 것으로 쉽게 열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의 문을 막고는 로마 황제 인 봉을 쳤으니 감히 그 문을 열려다가는 사형을 당할 것입니다. 2)3일간 로마 병정들이 겹겹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3)새벽에 큰 지진이 일어나고 로마군인들이 놀라 달아났으며, 하늘나라 천사가 내려와 돌문을 굴려내고 무덤 안에 앉아있었습니다. 형상이 번개같고 옷은 흰 눈같이 희었습니다(마28:2-4). 천사가 여인들에게 세 가지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세상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무서워 말라,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부활하신 천사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살아 나셔서 하늘에 오르셔서, 만 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가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5)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 알리려 갈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인들을 만나주셨다 했습니다(마28:8-9).
나)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결국 기독교의 구속 사에는 무덤이 없습니다. 아담의 무덤도 없고, 노아, 아브라함, 다윗의 무덤도 없습니다. 무덤의 중요 요소는 ‘시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체’가 없는 빈 무덤은 무덤이 아닙니다.
1)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첫 번째 증거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숨겨 놓고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면, 그 거짓말을 위하여 그 많은 제자들이 한결같아 감히 순교까지 당하면서 그 사실을 끝까지 숨겼을까요?
사람들은 진리를 위하여 죽을 수는 있어도, 거짓을 위하여 죽은 이는 없습니다. 또한 잠시 동안은 속일 수 있어도 2,000년 동안 속일 수는 없습니다. 몇 명을 속일 수는 있어도 전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남은 속일 수가 있어도 자기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2)'석가모니'는 인도의 ‘능수 해안’이라는 곳에 묻혀 있습니다. '마호메트'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묻혀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장평양’에 묻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고 거기에서 썩었고 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한 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 국가들에서는 한동안 떠들썩한 소동이 일어났었습니다. 그 때 석가모니의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의 경배 속에 시가행진을 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뼈가 지나갈 때 땅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말하기를 '그런데 만약, 예수의 무덤에서 그리스도의 뼈 조각 하나라도 발견됐다면, 기독교는 산산 조작이 나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을 부활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3)빈 무덤은 승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를 반대했던 군중들이 이긴 것 같았습니다. 로마가 승리한 것 같았습니다. 마귀가 분명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못박으라 했던 수많은 군중은 너무도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와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며, 하루에 5천명씩 예수를 믿는 엄청난 사건이 나타나게 예루살렘 에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훗날 대제국 로마도 결국, 그들이 못박았던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사망 권세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예수 이름 앞에 벌벌 떨며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4)빈 무덤은 부활의 새 생명의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그 예수를 믿으면 그 부활의 능력에 접 붙임을 받습니다. 믿는 자는 예수와 같이 부활의 열매를 동일하게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죽음이 내 죽음이요! 예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됩니다. 요6: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만이 영생 부활의 종교입니다.
나)부활 후, 40일간 자신을 나타내신 예수.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11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후에 스데반 집사와 훗날 바울 사도가 된 핍박자 사울에게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어떻게 11번? 1)무덤 가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오셨습니다(막16:9/요20:14-18). 2)무덤에 갔던 여인들에게 오셨습니다(마28:8-10).
3)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오셨습니다(눅24:13-35/막16:12-13).
4)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눅24:34/고전15:5).
5)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에게 오셨습니다(막16:14/눅14:36-37). 주일저녁 방에 숨어있던 열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고 했습니다. 6)도마를 포함한 열 한 제자에게 또 오셨습니다(요20: 26-29).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의심했었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 나는 예수님의 손에 내 손가락 넣어보고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고야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한 주일이 지나서 도마가 열 제자와 함께 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도마야 이리 오너라! 네 손을 내어서 내 못 자국에 넣어 보아라.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 그리고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도마는 옆구리에 창 자국 난 예수를 보고는 너무나 놀라고 의심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인도에 까지 가서 부활하신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습니다.
7)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일곱 제자에게도 오셨습니다(요21:1-14).
8)갈릴리 산에서 열 한 제자에게 오셨습니다(마28:16-20/막16:15-18).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9)500명의 성도들 앞에 나타나시기도 했습니다.(고전15:6)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사도 바울 활동 당사),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라고 했습니다. 10)부활 후 40일 째 되는 날. 감람 산에서 500여명의 성도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모습을 보이시게 됩니다(막16:19-20/눅24:44-53/행1:1-11).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친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들 옆에 서서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왜 하늘을 쳐다 보느냐? 하늘로 들리운 이 예수님 너희가 본대로 다시 오시리”'고 했습니다. 11)예수의 교회를 열렬히 대적하던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도 나타났습니다(행9). 예수쟁이 때려잡기에 가장 앞장섰던 그 핍박자 사울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할/
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그들은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눅24:24-34) ⑴어두웠던 영안이 밝아졌습니다. 눅24:31절에 '저희 눈이 밝아져 그 인줄 알아보더니' 드디어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바로 알고 믿는 것이 성도의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⑵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눅24:32절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말씀을 들을 때 그들 심령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용기가 생기고 힘이 생겼던 것입니다. 죽음과 순교 조차도 조금도 두렵지 아니했습니다.
⑶좌절에서 돌이켜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눅24:33절에 '예수가 죽은 후, 실망과 좌절로 인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그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했습니다. 다시금 힘과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패배자가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모신 자들은 다 새 소망을 갖습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할렐루야!
결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뵈옵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보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만난 일을 생생하게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몇 번을 더 부활하신 예수를 또 만나고 만났습니다. 지상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 승천을 목격한 후, 그들은 일생 동안 부활하신 예수를 힘차게 증거 하되 죽음을 맞는 일을 결코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대부분이 거룩한 순교자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믿음과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안일주의와 패배주의는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부활은 곧 승리입니다. 우리 안에 이 예수가 계신다면, 그 무엇도 우리를 패배케 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이 부활의 능력을 누리시고 또 전하심 으로써, 부활의 은혜와 능력을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동참하게 되시기를,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참고:송수천/편집:2014.4.17. 안익선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