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받은 자답게 사는 삶 (갈 6:1-10)
사람들은 자유를 참으로 사랑합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매력은 자유로운 삶입니다. 직업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교육받을 자유, 언론의 자유 등등입니다.
요한 사도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크나큰 매력의 하나입니다. 자유가 없다면 복음은 전파되기 힘들었을 것이며 순교하면서 옹호할 가치도 없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대헌장'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복음을 통해 주어진 참 자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유는 어디서 오느냐?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에게 임하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5장에서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열매를 말씀하시고,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향하여 당부하기를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했습니다. 5:16절에서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면서 성령의 열매 9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5: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한 후,
갈5:25절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하면서, 오늘 본문 5:25-26절로 이어지는 말씀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의 삶의 자세”를 우리에게 당부하고 계십니다.
가)자신과 형제를 잘 살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
성령 안에서의 생활은 자기를 늘 돌아보며 사는 삶입니다. 자기를 잘 살피는 삶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몇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범죄한 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세요!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 때도 교회 공동체 안에 범죄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온 '드러나거든'이라는 말의 원문의 뜻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다.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다. 의지가 약하여 죄를 범하다'라는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체면이 있고 양심이 있는지라, 죄를 짓고 실수를 하면 모든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사람 만나기도 싫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면 한없는 스트레스를 받아 깊은 영적 우울증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잘 권면해서 건져내야 하고 바르게 인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신령한 너희는'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성도'를 가리키며, '바로잡는다.'라는 말은 '윤리적인 의미에서 이전의 좋은 상태로 회복시킨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본 절은 '만약 여러분 중에 범죄한 사람이 있다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여러분은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로 그를 설득하고 도와주어 이전의 좋은 상태로 회복시키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1절 하반부에서 그들을 대하는 태도 세 가지를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⑴ '온유한 심령으로'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우리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온유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이 온유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이 온유는 성령 받은 자의 열매입니다. 우리 참 행복한 성도들이 이 온유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솝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태양과 바람이 누가 더 훌륭한지 내기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벗길 수 있을 것인지 시합을 했습니다. 그 때 바람은 아무리 세차게 불었지만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지 못했습니다. 역효과!
그러나 태양이 미소를 띠면서 따뜻하게 비추일 때 나그네를 비춰줄 때, 나그네는 외투를 벗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온유한 심령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녹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형제가 범죄하고 실수 했을 때, 정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를 냉정하고 신랄하게 단죄하거나 미움과 증오로써 비난하지 않습니다. 신령한 사람은 그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또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이 되도록 형제의 잘못을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고 잘못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온유의 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⑵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입니다.
여기 '바로잡는다.'는 말은 '돌이키다. 그물을 깁다, 인격을 완성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어부들의 그물은 생각보다 쉽게 잘 터지고 찢어집니다. 고로 늘 그물은 고쳐주고 수선해 줘야 합니다. 영어성경에는 '회복시킨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원어로 본래 접골, 즉 뼈가 어긋났을 때 뼈를 바르게 맞추는 일을 지칭합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깁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몸을 정상적으로 회복하게 하는 것이고 그물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원상 회복을 한다는 말입니다. 일어 설 수 없는 사람을 일어서게 해주는 것입니다.
상처 난 부분을 드러내 놓고 후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감싸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치유의 영이십니다.
⑶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도 시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잘못이 드러나면, 교회도 그를 매정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 사람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술 한잔 먹고 풀어 버린다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점에 더 인색하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과 아예 상종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서로 비난하며 수군거립니다. 교회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다른 교회로 가든지 아니면 세상으로 빠져버리게 만듭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까? '네 자신을 돌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실수투성이 인생입니다. 약3: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라고 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7:3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속에 들보는 모르고 남의 티만 보면 안될 것입니다.
나)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2,5)
본문은 우리가 져야 할 짐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⑴ 먼저 5절에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 임이니라'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짐 그 짐을 성실하게 지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짐'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포르티온'이란 말인데, '군인들이 행군할 때, 지는 짐'을 말합니다. 완전무장을 하면 엄청 무겁습니다. (한국군=약 50키로그램-111 파운드)
이 짐은 모두 자기의 짐입니다. 남들이 꾸려줄 수도 짊어져 줘서도 안 되는 짐입니다. 모두가 자기 짐 챙기고 지고 가기에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각각 저마다 주님께서 주신 짐이 있습니다. 그 짐을 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짐이 무엇일까요? 고전12: 28절에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 저마다 에게 걸맞은 직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짐은 바로 '사명의 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맡기셔서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그 사명의 짐을 잘 지고 가야 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자기 짐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9일 동안 천국 만들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부인이 가정생활이 힘들어 비관하며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너무 힘이 듭니다. 차라리 빨리 천국으로 데려가 주세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그러마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네가 죽은 후에 마지막 정리 잘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 정리를 잘해라' 부인이 그 동안 엉망이던 집안을 3일 동안 정성을 다해서 깨끗하게 정리를 했답니다.
3일 후 하나님께서 이 부인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예야 죽자니 아이들이 걸리지 네가 죽은 후에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끼게 마지막 3일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해 보겠니?' 이 부인이 안 하던 맛있는 요리도 하고 다시 못 볼 것이라 생각하고 마지막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3일 후 하나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예야 이제 갈 때가 됐구나 마지막으로 네 남편 한번 봐라 남편 때문에 속 많이 썩었지 네가 죽은 후에 남편이 그래도 참 좋은 아내였는데 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니'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3일 동안 정성을 다해서 남편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그 전에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그래서 집을 돌아보니까 깨끗한 집에서 오랜만에 애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남편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까 떠나고 싶지 않았고,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집이 천국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하나님! 갑자기 이 행복이 어디서 왔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9일 동안 네가 만든 거야!' /할/
그렇습니다. 우리가 맡겨주신 일을 최선을 다해서 섬기면 우리는 천국을 만들 수 있고, 그 안에서 기쁨을 맛 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2절을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짐이라는 말은 앞에서 살펴본 5절의 짐과는 다른 말입니다. 여기의 짐은 원문으로 '바로스'인데, 이것은 어떤 사람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뜻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짐을 나누어 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 큰 아이 성우가 군대에서 박격포 포병이었습니다. 그 박격포는 전투시에 몸체를 분해하여 나누어 지고 가야 합니다. 몸통과 다리, 바다철판, 포탄 등이 다 무겁습니다. 그러면 전투 시에 어찌합니까? 3~4명이 한 조가 되어 자기 짐을 다 진고 멘 후, 박격포의 일부를 또 짐에 더해 가야 합니다. 힘들겠지요?
지난 번 대청소에 우리는 여러 부분을 나누어 청소를 했습니다. 서로 도와 분담하고 지고 가야 할 그런 부분을 말합니다. 그러면 비록 힘들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형제 자매들의 짐을 져주어야 합니까? 우선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큼 확실하게 무거운 짐을 나눠지는 길이 없습니다. 위해서 중보 기도할 때 그 짐은 훨씬 반감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그 무거운 짐을 벗기 위해 도울 길을 찾아보아 수고해야 합니다. ▶눅10장에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바른 이웃의 섬김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했습니다.
고전12: 26절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지체임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라)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9-10)
여기 두 가지 지침이 있습니다.
⑴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피곤하지 아니하면'은 '지쳐서 쓰러지지 아니하면, 포기하지 아니하면'이란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힘들고 지쳐서 쓰러지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피곤이 옵니까? ㈀일이 꼬이고 잘 안 되면 피곤합니다. ㈁칭찬받지 못할 때 피곤합니다. (ㄷ)오해 받을 때 피곤합니다 (ㄹ)내 마음을 몰라줄 때 피곤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심과 상주실 것을 믿으면 피곤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요셉이 종살이, 감옥살이하면서 한 번도 짜증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지켜보심과 섭리를 믿었습니다. 사람 때문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⑵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어느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총각시절에는 시골에서 교편 생활을 했습니다. 하루는 학교로 출근하기 위해서 시냇물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앞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하나씩, 하나씩 디디면서 건너다가 그만 잘못 놓인 돌을 밟고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신발도 다 젖고, 바지도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젖은 몸으로는 학교에 갈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때마침 서울에서 잠시 내려오신 어머니께서 집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젖은 몸을 보고서 딱하다는 듯이 물어보셨습니다. '얘야, 어쩌다가 그렇게 물에 빠져버리고 말았느냐?' 아들은 대답하기를 '예, 어머니. 제가 징검다리를 디디고 시냇물을 건너다가 그만 잘못 놓인 돌을 밟아서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얼른 되물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네가 밟았던 잘못 놓인 돌을 바로 놓고 왔느냐?' 아들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얼른 옷 갈아입을 생각만 했지, 미처 돌을 바로 놓아야 된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나무랐습니다. '이놈아, 너 그런 식으로 해서 무슨 선생이 되겠다고 그러느냐? 얼른 가서 돌을 바로 놓고 오너라. 그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도록 해라!'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참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해서 얼른 가서 잘못 놓인 돌을 바로 놓고 돌아왔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그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돌을 바로 놓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의 마음도 바르게 되고, 모든 사람들도 그 사람을 바르게 보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 우리는 기회가 되는 대로 선을 행해야 할까요? 결국 우리에게 복이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느 대학에서 조사를 해 보았는데, 남을 도와주며 사는 사람이나 노인인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9년을 더 오래 살고 더 행복하게 살더라 라는 조사가 나왔다고 합니다.
선행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아멘?
본문에서는 선을 행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그리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도 물론 선을 베풀어야 하겠지만,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에게 더욱더 먼저 사랑과 친절을 먼저 베풀어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누구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아프리카 흑인들이나 남극과 북극의 에스키모 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나와 가까이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결론)
왜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이런 것이 성령 받은 자의 삶이요 유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교훈도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기에 힘쓰고, 또 다른 형제 자매의 삶도 바르게 설 수 있도록 서로 도우라, 그리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여 포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참된 성령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참조: 송수천/편집: 익선 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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