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추시며 시험 하시는 연고(신8:1~10)
서론)1. 소크라테스의 아내인 ‘크산티페’는 세계 3대 악처 중 한 명으로 유명합니다. 그리스 사람들도 대 철학자로 추앙 받는 소크라테스가 왜? 하필이면 그런 사나운 아내와 사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하루는 길거리에서 토론을 하고 돌아오는 소크라테스에게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나에게 자네와 같은 아내가 있었다면 집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텐데, 자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잘 맞춰 들어가는군?” 그 말에 소크라테스는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난폭한 말을 잘 다루게 되면 다른 말들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된다네. 내가 크산티페의 바가지를 견딜 수 있다면, 다른 일들 역시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을 걸세.” 다음 날 역시 같은 친구가 소크라테스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자네의 아내는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던데 그건 어떻게 버틸 수 있지?”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묻는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익기만 한다면 전혀 괴롭지 않다네.”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인 크산티페의 지독한 바가지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2. 예수를 믿는 한 사람이 남의 집에 하인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하인을 조롱하기를 "나는 예수 믿지 않아도 아무 시험도 없이 잘 만 사는데 너는 예수를 믿는데도 왜 늘 어려운 시험을 당하느냐? 그럴 바에야 믿지 않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때 그 하인은 "주인님, 노하지 말고 들어 주십시오, 가령 말입니다. 사냥 중에 사슴 두 마리가 있어 쏘았는데, 한 마리는 즉사하고 한 마리는 다리에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간다면, 주인께서는 어느 쪽 사슴을 보시고 달려가겠습니까?" 주인 왈 "그야 죽은 놈은 내 수중에 든 것이나 다름없으니, 산 놈부터 쫓아가 잡아야지"
"옳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험이 없는 것은 영혼이 죽어 마귀의 것이 되어버렸으므로 내버려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자는 마귀가 이를 방해하여 자기 수하에 넣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니, 시험을 당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본론)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모든 일에 시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믿음으로 많은 시험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는 시험을 당할 때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시험이 닥치면 온갖 불평과 불만을 토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모든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닥쳐오는 시험을 통해 더욱 견고한 믿음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뜨거운 불 속에 여러 번 들어가지 아니한 금은 결코 순금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이라는 시험을 통해 교만한 사람을 지극히 낮추셔서 겸손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심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의 이름만을 자랑하며 살게 하시며, 온유와 겸손을 겸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본이 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시고 낮추시는 일을 하시는가?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자라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 중에 왕이십니다.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존귀하십니다. 고로 그 자녀들도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하겠기에 고난과 훈련 속에서 왕자와 공주의 품위를 갖추도록 하심을 믿어야 되겠습니다.
둘째로: 믿음의 선택을 잘 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 신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주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많은 실수를 통해서 바른 선택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화난 역시 그러한 지혜를 줍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결국 탕자가 아버지를 선택한 배경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체험적으로 뼈저리게 얻은 교훈은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 역시 실패의 쓴 잔을 아니 마시고 늘 바른 길을 택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으나 우리는 늘 부족하고 연약하고 무지하여 넘어지고 쓰러지고 미끄러집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계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마20:28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하심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폭력적으로 사람들을 제압하지 않으셨습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오직 사랑하는 마음으로 온유와 겸손의 섬김으로 사람들의 강한 마음으로 꺾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의 마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다스려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내려면 자기 몸을 녹이는 아픔이 동반 되야 하고,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자기 몸을 썩게 하는 아픔이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자들은 자기 삶을 세상을 향해 녹이고 썩히는 아픔을 감내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하심과 같이 섬김 속에서 참된 복음의 의미를 드러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역할을 잘 감당케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시는 이유는 그 자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연단과 고난 가운데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면 우리가 영화로운 자녀가 됩니다. 그리 되면 저절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워도 그렇습니다. 요즈음은 자녀들을 많이 갖지 않는 시대기 때문에 아이들을 버릇없이 키울 때가 많습니다. 중국에서는 과거 한 자녀 정책 때문에 그 아이들을 “소황제”(샤오황디)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버릇이 없습니다. 작은 어려움도 못 견디고 공격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엄하게 교육받은 자녀들은 어른들 어려운 줄 압니다. 예의가 바릅니다. 힘든 일도 잘 참습니다. 남을 생각하며 삽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든 가운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성실하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힘쓰는 사람이 되고, 그리 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 중에서 바로 살고자 돌아온 아들에게 그 아버지께서는 돌아온 탕자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좋은 옷을 지어 입히시고 그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워 주셨다고 했습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실 때 더욱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시고 한량없으신 은혜를 통해, 새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더욱 감사하고, 영생 주심도 감사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여, 이 땅의 기름진 복과 하늘나라의 신령한 복을 영원히 받아 누리며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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