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강해

욥의 변론 제2부( 욥기7:1~21)

호걸영웅 2014. 12. 21. 03:57

욥의 변론 제2( 욥기7:1~21)

서론)본문 읽기!

 

오늘 본문 7장은 품꾼이 힘든 일과를 마치기를 바라는 것처럼, 욥은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 고달프고 희망 없는 인생(1~6)

1) 인생은 힘들고 가련하다 (1~2)

[1]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2]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욥은 자신이 날품을 파는 노동자가 일과를 끝내고 한 푼 삯을 받은 다음, 저녁에 그늘에 누워 겨우 쉬는 날품팔이의 인생처럼, 아무 희망이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밤에도 고달픈 통증으로 괴로웠다(3,4)

[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난이 수개월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 불면의 밤을 지내야 했습니다(4)

[4]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밤은 휴식과 평안의 시간이요, 잠은 하루 동안의 피로와 고통을 풀어주는 묘약(妙藥)입니다. 잠만 잘자도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러나 욥은 밤에도 병의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질병은 밤에 더욱 견디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러한 육체적 고통 이외에도,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지 않나 하는 영적 회의와 갈등 때문에도 불면의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4)상처는 보기에도 끔찍했습니다.(5)

[5]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 욥의 피부가 곪은 데에서 구더기가 기생하였고 진물을 흡수하는 잿더미 위에서 생활하다 보니 온통 재투성이에 흙투성이였다는 것입니다.

욥은 자신의 몸에 피부병이 발병한 이래로 여러 달이 흐르는 동안(3), 이러한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쳐야 했습니다. (나의 외할아버지 경우/무릎이 썩어 구더기가 생김)

 

5) 희망 없이 보내는 나날들(6)

베틀이 베실 사이를 지나가는 속도는 거의 0.5초 정도 밖엔 안될 것입니다. 그처럼 인생이 덧없이 속히 지나가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 바람과 구름처럼 사라질 인생의 덧없음(7~10)

[7]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8]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10]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1)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7)

[7]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인생이 바람처럼 덧없음을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한편, 본절에서부터 욥의 변론의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 6:1-7:6까지의 욥의 변론은 엘리바스와 그 친구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으나, 본절에서 부터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2) 죽음에 대한 예견(8)

[8]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욥은 친구들과의 사별(死別)을 언급한대 이어, 하나님과의 단절도 말하고 있습니다.

, 현재 욥은 영적. 육적 생명의 위급함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3) 스올로 내려가는 인생의 한계를 느낌(9)

[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스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올'= `텅 비었다'는 뜻인데, 이는 `깊다'를 의미하는 동사 `솨알'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스올'을 죽은 자의 영혼이 내려가는 어두운 지하 세계로 인식했습니다( 37:35; 16:30, 33; 55:15; 5:14).

. 다만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은 음부에서 지속적으로 머물게 되며 현세로 되돌아오거나 다른 세계로 이동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4) 죽음 후엔 아무런 의식이나 기억도 없을 것임(10)

[10]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 - 음부 세계와 현세와의 단절성을 의인법적 표현을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대 팔레스틴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생전에 그가 살던 집이나 아끼던 물건에 도로 돌아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애굽인들은 영혼이 육체에 돌아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미이라를 만들어 무덤 속에 보관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욥은 그들의 이 같은 종말관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믿음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탄식: 사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11~21)

 

1)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는 욥 (11)

[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본문은 앞으로 전개될 욥의 변론(불평)에 대한 서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욥이 현재 겪고 있는 고난의 심각성으로 인해 심중(心中)에 있는 불만을 이제부터는 기탄없이 하나님께 털어놓겠다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의 감찰에 대한 거부감을 토로함(12)

[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욥은 자신의 일거 수일 투족(一擧手一投足)이 하나님으로부터 감시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불평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프라이버시 조차 없는 그런 상황들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은 어부(漁夫)가 큰 바다 괴물 같은 물고기(고래?)를 잡을 때 그 시선을 집중하며,

작살로 찍고 몽둥이로 치거나 창으로 찌르는 등의 포획 방법을 비유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또는 부당하게)다루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한 밤에도 그런 상황은 변함이 없다. (13)

[13]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14)=[14]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욥이 잠시 잠에 취했을 때 조차, 하나님은 불쾌하고 무서운 꿈으로 괴롭게 하신다고 괴로워합니다. 사실 사단이 욥을 칠 수 있는 전권(全權)을 하나님께로 부여 받았다(1:12; 2:6)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고통은 직접적으로는 사단이 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5) 죽음을 갈망하다(15)

[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성경에서 `'인간의 육체적 생명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실례로 아담이 하와를 `뼈 중의 뼈'( 2:23), 라반이 야곱을 `나의 골육'( 29:14)으로 언급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삼하 5:1; 38:13 ).

그런데 본절에서는 욥이 오랜 질병으로 말미암아 몹시 수척해진 상태를 비유한 것입니다.

 

6) 하나님의 간섭에서 해방되길 바라다. (16)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그러나 이렇듯 욥이 강력하게 삶을 저주하고 죽음을 희구한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구원을 간구하는 욥의 고통스러운 투쟁을 드러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욥이 생사(生死)의 주관자로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7) 좋은 의미의 간섭이기도 하다고 한편 인정하기도 하나 그래도 부담스럽다고 토로함.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크게 여기사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가텔레누'`창대케하다'( 12:2), `더 크게 하다'(왕상 1:37), `(명성, 지위 등을)존귀하게 하다'(대상 29:25), `(키를)자라게 하다'( 44:14)등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8) 잠시도 내버려두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불만. (19)

[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9) 욥의 고난이 자기에게 너무 지나치게 집중되었음에 대한 불만(20)

[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까 - 본문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1) 하나님과 견주어 볼 때 극히 미천한 존재인 인간()의 범죄가 초월적이고 광대하신 하나님( 145:3)께 아무런 영향이 끼치지 않는 다는 의미.

 (2)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너무 높다 라고 탄식하는 상태.

 

이는 다른 누구보다 철저히 경건 생활에 전력했던 욥이 그토록 큰 환난을 당한 데 대해 깊은 의구심(회의)을 나타낸 말이 됩니다.

 

[21]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이 너무 힘겨운 징계를 돌이키셔서, 현 욥의 악화된 상황을 볼 때, 신속한 개입과 용서, 죄 사함을 베풀지 아니하시면, 욥은 곧 죽어버리게 되리라는 고백과 탄식의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따라서 본문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죄 많은 인생은 공허하고 덧없다( 6~10).

우리의 인생은 베틀의 북과 바람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고 구름처럼 사라질 뿐 아니라,

 그 인생이 허무하기까지 하다는 거입니다. 고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시간을 소중히 여겨 귀하고 알뜰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2) 욥은 고통이 그 심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하였다.

하나님께 우리의 아픔과 괴로움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혹시 가족이나 다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괴롭고 속상한 일이라 하여도 하나님과의 기도의 교제를 끊어서는 아니 된다는 점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시고 감찰하신다.

이것은 한 편으로는 두렵거나 부담스런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보호의 근거가 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라!)

 

참고: 빛으로/편집: 익선 11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