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푯대를 향해 달립시다(빌 3: 10- 14)

호걸영웅 2016. 2. 4. 01:03

푯대를 향해 달립시다( 3: 10- 14)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서론)

1. 아프리카에 주로 살고 있는 ‘스프링 벅’ 이라는 산양은 보통 30마리 정도가 무리 지어 사는데, 어떤 때는 수천 마리나 되는 큰 집단을 이룰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도자 격의 큰 우두머리 양이 앞장을 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다른 양들도 몸을 맞대고 그 뒤를 서서히 따르며, 도중에 있는 풀들은 모조리 먹어 치우게 됩니다. 그들은 맹수의 습격이 두려워 결코 대열을 떠나 옆에 있는 풀을 먹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풀을 더 많이 먹으려고 조금씩 동료들을 밀어붙이다가는 얼마 후에는 점점 빠르게 전진하게 됩니다.

 

뒤따르는 양들이 점점 빨라지면 우두머리 양도 자연히 빨라져 마침내 뛰게 되고, 우두머리가 뛰니까 뒤에서도 늦을 새라 더욱 뛰게 됩니다. 결국 모두가 전속력으로 뛰게 됩니다. 우두머리 양은 풀이 많은 새로운 곳으로 갈 예정이었겠지만, 이제는 그 목적을 완전히 잊고 흥분하여 다만 뛰는 것 외에는 생각지 않고 그저 앞으로만 돌진합니다.

 

모래먼지를 날리며 질주하는 산 양떼들은 어느 새 사막을 건너 해안에 이릅니다. 그러나 앞선 양은 멈출 수가 없어져 버립니다. 뒤에서 밀어닥치는 무서운 힘에 밀려, 산양 떼들이 바다 속으로 마구 떠밀려 들어갑니다. 얼마 후 바닷가엔 산양들의 시체로 가득 메어지곤 한다 합니다. 물론 흔한 경우는 아니겠지만 이런 일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 인생의 모습들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보다 더 뒤지지 않으려고 좋은 대학, 좋은 차, 좋은 주택,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고 있는지요! 그러나 질주하고 있는 목적과 목표는 분명치 않고 결국은 사망과 헛된 꿈의 세계로 들어가기 일수였던 것입니다.

 

2. 미국 뉴저지주의 상원 의원인 ‘모로우’씨란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가 뉴욕시를 떠나는 기차를 탔을 때, 역무원이 검표를 나왔는데 그는 기차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차표를 보여주길 기다리던 역무원이 “모로우씨,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상원의원이신데 설마 표를 안 사셨겠어요. 그러나 후에 표를 찾으시면 우편으로 보내주실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모로우씨는 답하기를 “나의 어려움은 그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가는 행선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기차표를 지금 꼭 찾아야만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로우씨는 정확한 행선지도 모른 채 기차에 탔던 것입니다.

3.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이, 인생을 뚜렷한 목표 없이 하루 하루를 떠밀리듯 살아가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또 목표가 있더라도 헛되고 무의미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전도자가 전도서에서 고백하였듯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하며 인생을 후회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참된 삶, 의미 있는 삶,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오늘 읽은 빌3장에서 ‘삶에 분명한 푯대를 가지고 사는 삶’을 강력하게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

본론)

) 삶의 푯대를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결코 위대한 성공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어떤 청년이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농촌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밭을 가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도와드릴 생각이 나서, 청년은 소를 몰고 밭을 갈았습니다. 서투른 쟁기질을 한참 하다 보니 아버지가 간 밭의 고랑은 똑바른데 자기가 간 고랑은 꾸불꾸불했습니다. 아버지는 이것을 보고 『처음 쟁기질을 할 때는 앞에 목표물을 보고 나아가야 똑바로 갈 수가 있어』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은 그 말씀을 듣고, 언덕에 풀을 뜯고 있는 황소를 목표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역시 고랑은 똑바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야! 황소가 자꾸 움직이니까 너의 고랑도 구부러지잖아! 안 움직이지 않은 것에 목표를 둬!』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앞에 우뚝 솟은 포플러 나무에 목표를 두고 밭을 갈았는데 비로소 똑바로 고랑을 갈 수가 있었답니다.

천국이라든지, 사랑, 믿음, 소망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성도들의 삶의 목표들입니다. 고로 우리는 유동적인 것, 움직이는 것, 변하는 것,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 썩어질 것, 일시적인 것을 목표로 하여 시간과 정력을 다 소모하여서는 아니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위대한 목표를 가지고 특별한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의 결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 목표를 향하여 날마다 어떻게 달려갔을까요? 그분의 두 가지 권면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성공적인 삶을 위한 권면 두 가지!

1. 첫째,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라.

『뒤에 있는 것』은 과거를 말하는데, 사도 바울은 과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려고 넘겨주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과거를 생각하면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너무도 미안했을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자꾸 생각하면 과거에 머물러 있고 소심하여 지고 맙니다. 그래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뒤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죄 된 삶이요, 부끄러웠던 삶이요, 후회스런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고 율법주의에 매여 메시야를 지독하게 핍박했던 무지한 삶이요, 쾌락과 자신의 명예를 향해 달려갔던 삶이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잊어버렸습니다.

2. 둘째,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라.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은 (고전9:24-25)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 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하며 미래의 목표를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에 두라고 권면합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마라톤 선수처럼 줄기차게 쉬지 않고 계속해서 앞을 향하여, 목표를 향하여 달려갔던 것이지요. 바울의 『푯대』 즉 목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처럼 화려하고 찬란한 천국에서 영원히 자랑스럽게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순교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 7, 8). 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오직 예수님』을 닮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앞으로 달려갑시다. 예수님을 본받아서 살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18세기 때,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25세에 예수를 믿고,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출세의 길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대영제국의 노예제도를 폐지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정치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30세에 영국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그 후로 오직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그가 48세 되던 해, 영국의회는 노예무역폐지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노예폐지의 비전을 세운 지 35년 만인 62세가 되던 해에 노예제도는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그는 64세에 정계에서 은퇴하였고, 그의 나이가 72세 되던 해에 대영제국 통치지역 전역에서 노예해방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예해방 법이 통과된 지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오로지 노예제 폐지라는 한 가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희생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나를 일평생 재촉하신 이는 나의 예수님이셨다고...

인류의 역사와 교회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명사들과 성인(현인)들은/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바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간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고, 좌나 우나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것을 잡으려고 일편단심으로 달려간』분이었습니다.

4. 미국에 플로렌스 채드윅(Florence Chadwick, 1918~1995)이란 여성 장거리 수영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1950년에 당시 기록인 13시간 20분 만에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수영해 건넜고, 1951년에는 16시간 22분 만에 영국에서 프랑스로 수영해 건넘으로 써 영국 해협을 왕복으로 건넌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1952 7 4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카탈리나 섬에서 롱 비치까지 34킬로의 수영에 도전했습니다. 출발 후 15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몸은 찬 바닷물로 거의 얼어버립니다. 게다가 짙은 안개로 건너편 땅을 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안내선 조차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어들은 주위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TV를 통해서 그녀를 격려했고, 배 위에서는 어머니와 트레이너가 목표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목표를 800미터 남겨두고 포기했습니다. 몇 시간 후, 그녀는 방송 리포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땅만 보였어도 저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었을 거예요.”라고.

 실패의 제일 원인은 피로나 추위보다도 목표를 볼 수 없게 한 ‘안개’였습니다.

 

2달 후, 그녀는 다시 같은 코스에 도전했습니다. 그때도 역시 짙은 안개로 해안선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마음속에서 “땅이 저 건너편에 있다”는 분명한 믿음과 목표의식을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13시간 47분에 그곳을 건너, 당시 남자선수들이 세웠던 기록을 2시간이나 단축시키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답니다.

 

결론)

1. 오늘날의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언덕 위의 황소를 푯대로 바라보고 있진 않습니까? 왜 우리는 종종 그 목표를 잊어버리거나 흔들리며 실패하며 상실하는 삶을 살게 될까요? 목표가 분명치 아니하거나 다른 헛된 것을 자신이 정한 목표로 착각하고 혼동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금년에도 아직 참된 푯대를 정하지 못하진 않으셨습니까? 정했다고 할지라도 흔들리는 것을 목표로 또 정하진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작년보다 금년에 더 나은 목표,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목표는 무엇일까요?  과연 무엇일까요? 깊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내내 그것을 가지고 씨름해 보시길 바랍니다.

2. 이제 여기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모든 인생의 참된 푯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금 바라보십시오.

 

오늘도 우리의 삶의 참된 푯대요 하늘나라의 상급을 주시는 자이신 예수를 바라보며, 그를 따르며, 그를 높이며, 그를 찬양하고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 드립니다.  

참조:한태완 /편집:익선 01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