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왜 사랑이 제일인가? (고전 12:29~13:일부)

호걸영웅 2016. 5. 28. 21:29

왜 사랑이 제일인가? (고전 12:29~13: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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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2: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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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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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서론)

1. 예수를 믿고 나면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 청년들이 군대에 들어가면 군대에서 각종 무기니 옷이니 각종 장비들을 무료로 나누어 주듯이하나님도 예수믿은 성도들에게 선물을 주시는데, 한자어로 은사, 영어로는 Gift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약교회 중에 고린도 교회가 유난히도 그런 은사를 많이 받았어요. 각종 방언이니 병 고치는 은사나 예언하는 은사 등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은사를 너무 받아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앞세우면서 불화와 분열을 일삼았던 것이지요. 고로 사도 바울이 이 교회에 분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귀중한 편지를 고린도교회로 2통을 보냈는데, 그게 고린도전서와 후서입니다. 그는 고린도전서의 편지 말미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
고전 12: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기서 과연 ‘더욱 큰 은사’란 무엇이며 ‘가장 좋은 길’이란 무슨 길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라고 했습니다.

2.
그러니까 ‘더욱 큰 은사’, ‘가장 좋은 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아가페 사랑,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은사는 아무런 유익도 없고 가치도 없고 분란만 일으킨다는 것이지요. 고린도교회는 사랑 없는 여러 은사만 가지고 일하다가 분열하고 파당을 일삼는 교회가 된 겁니다.

3.
성도 여러분,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예언의 능력’, ‘산을 옮길만한 믿음’,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구제’, 이 얼마나 눈부시고 황홀한 은사들입니까? 이런 은사 있으면 정말 좋겠지요? 그러나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고전13장 끝에서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결론을 주셨어요.
물론 교회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 3가지는 항상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만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는 겁니다. (입을 열 때마다 그토록 믿음을 강조하던 사도바울이 왜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들을 찾아보면서 우리도 그 동안 사랑을 소홀히 했다면 아가페의 사랑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 사랑이 제일입니까?

1. 먼저 사랑은 하나님의 가장 대표적인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 그 자체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고 했어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금방 지나갑니다. 육체에 속한 것들은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버립니다(벧전 1:24).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사랑은 영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던 죄인이었을 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했지요?

(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놀랍지요?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먼저 사랑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살리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일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되돌려 준 것, 생명을 살려준 것입니다. 영원히 지옥 불에 던져질 죄인을 살려주신 은혜 그리고 그 사랑!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어요? 여러분! 우리 가족이나 남편이나 부모가 날 위해 죽을 만큼 나를 사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가끔은 있겠지만 어려운 이야기예요.

)또한 사랑이 제일인 이유는? 사랑’만이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영원한 것에 비하여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과 같은 은사들은 일시적인 것들이라 것입니다.  
(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했어요.
우리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엔 믿음과 소망은 더는 필요치 않고 오직 사랑만이 남게 될 겁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없어지지 아니하며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또한 이 땅에서 우리가 아는 것, 체험한 것들은 다 지극히 부분적인 것들입니다. 또 불완전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온전한 것이 오면 다 없어집니다.

(
고전 13: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
고전 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이 온전한 것이 하나님 사랑, 또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오면 다른 것들은 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깨달으면 방언도 예언도 다 별거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은 거울을 통해 보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이 희미합니다. 옛날의 로마시대에는 오늘날 같이 선명하게 보이는 거울이 없었어요. 구리로 만든 거울이죠. 그런 동판거울은 사람의 얼굴이 누르스름하고 윤곽이 희미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얼굴을 직접 뵙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 했습니다.
(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했어요.

)또한 사랑이 제일인 이유는? 구원받은 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1.
여러분,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사랑하는 것을 보아 성도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알고 제자인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형제사랑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아니지만, 천국 백성이 된 확실한 증거라는 겁니다.

(
요일 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여전히 죄와 사망 아래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아직 그 속에 영생이 거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겁니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했어요.

사랑이 이렇게 중요한 겁니다. 당신은 형제를 사랑하는 자입니까?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아십시오. 당신은 형제사랑에 대하여 무관심합니까? 아직도 사망에 머물러 있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형제를 미워하십니까? 당신 안에 영생이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아십시오.
2.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심판 날에 담대하기 위해서도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
요일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라고 했어요.

야고보서는 사랑의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2:14)에서-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
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 했습니다.
사랑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겁니다.

(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3. C.S 루이스 교수는 우리의 신앙적 성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톨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다시 말하면,우리는 육체적이고 이성간에 느끼는 섹시한? 사랑(에로스)에 의하여 태어나고, 혈연적인 가족의 사랑(스톨게)으로 양육되고, 우정의 사랑(필로스)으로 성숙되고, 하나님의 거룩하고 위대한 희생의 사랑(아가페)를 실천하므로 완성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느 사랑의 수준에 있습니까? 아직도 에로스적인 사랑, 이성적 사랑에 매여 있습니까? 아니면 오로지 끈질기게 혈통적인 스톨게 사랑만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정의 사랑, 필로스 정도에 매여 있습니까?

아가페의 사랑은 자기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사랑입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결론) 한국교회 역사에서 보면,
사랑의 원자탄이란 별명을 가진 손양원 목사님이란 분은 문둥병자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주기도 하셨지만, 자기의 두 아들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아 큰 존경을 받으셨던 분입니다. 그 원수와 같이 먹고 마시고 한 지붕아래 살았습니다. 늘 기도해주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결국 그를 목사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는 죄책감에 나중에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지만..여러분!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어느 정도의 사랑입니까? 아가페 사랑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 이런 놀라운 아가페 사랑이 여러분이 삶 가운데 충만하여 넘쳐 흐리기를 진실로 진실로 축원드립니다.

              
참조:신만교 /편집:익선 05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