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믿는 사랑(고전 13:7-8)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서론)
오늘은 사랑의 열세 번째 속성으로서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에 대해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피스투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피스투오”를 원어 사전으로 찾아보면 네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 (사람을 향하여) 믿는다 * (하나님을 향하여) 확신을 갖다
* (하나님을 향하여) 신뢰하다. 의지하다 * (하나님을 향하여) 맡기다 등 입니다.
본론)
가)피스투오=먼저 어머니의 사랑 처럼 믿는 것 !
1.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성에서 세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유형은 사람을 잘 믿다가 속기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은 누구의 말이든지 잘 믿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악한 사람의 말까지 믿고는 악인의 편에 서기도 합니다. 또한 이 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쉽게 이단에 빠지기도 합니다. 종종 남에게 돈을 꿔 주고 사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버스나 전철에서 장사꾼을 만나면 거의 물건을 삽니다. 영어로는 “Gullible”이라고 하는데 너무 잘 믿어서 잘 속아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아무 것이나 믿는 것입니다. 보통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착하기는 하되 어리석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 유형은 첫째 유형과는 정반대 되는 사람으로서 절대로 다른 사람들을 안 믿는 유형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일들에 매우 냉소적입니다. 남에게 배우는 것도 대단히 싫어합니다. 언제나 스스로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 남의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오직 스스로 연구해서 자기가 판단하려고 합니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자신의 개인 사정을 노출 시키지 않습니다. 왜요?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친구가 없기 쉽습니다. 따스함이 없고 인간미가 부족합니다. 일반적으로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외로워집니다.
셋째 유형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이는 상대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믿어주는 사람입니다. 상대를 사랑하기에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믿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종류의 믿음입니다. 즉, 혹시 속을 줄을 알면서도 상대에 대한 궁극적 신뢰의 자세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이러한 믿음은 예컨대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믿음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믿어주는 믿음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 이야기만 나왔지만, 사실 탕자의 어머니 의 마음은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집을 뛰쳐나간 탕자의 어머니에게 이웃과 친척들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 놈! 이제 기대하지 마세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도 없으니…너무 기다리지 마세요"
그러나 어머니는 강한 어조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아니예요, 그 애는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그 아이는 그리 못된 아이는 절대 아니거든요"
우리는 이런 어머니의 믿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어머니의 믿음을
탓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바로 어머니의 이러한 믿음은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신앙이 좋은 아내가 불신자 남편을 두고 그의 구원을 위해 불철주야 기도합니다. 벌써 몇 년 째입니다. 누가 보아도 그 남편이 하나님께 돌아올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그가 하나님께로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이는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믿게 될 것이예요 ! "라고 늘 말합니다.
이 아내의 믿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는
남편이 회개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믿으며”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을 보며 그를 사랑하고, 그가 더욱 좋은 사람이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에게 성도들에 대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또 부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믿음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믿음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믿음 없이 어떻게 목회를 하겠으며, 또한 이러한 믿음이 없이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하며 돌볼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에겐 “그 사람이 지금 여러 가지로 부족하더라도 앞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면 변화하여 점점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에겐“내 아이가 아직 이러 저러한 못된 죄성이 있지만, 언젠가는 주의 은혜가 그를 변화시켜 훌륭하고 귀한 아이가 될 것이다”라는 믿음 말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로 인하여 사람들이 변화되고 우리의 자녀들이 변화됩니다.
감옥에서 갖 나온 장발장이 은 촛대를 훔쳤을 때, 장발장을 두둔해 준 신부님의 믿음…그것이 장발장을 변화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어 준 이러한 “모든 것을 믿는” 사랑은 이웃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자를 향하여 언제나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나)피스투오의 둘째 의미는, “확신을 갖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관한 확신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믿으며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의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복잡하고 어렵고 괴로운 일이 발생할 수가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왜 이렇게 재난들과 비참한 일들과 전쟁과 기근이 수없이 있을까? 정말 하나님은 사랑이신가? 라는 회의가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을 보면 그런 형편에 서 있었던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봅니다.
[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1-32, 35, 37-39)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어 주시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건은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최대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소한 인간사에 있어서도 하나님 사랑이 왜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보내어 주신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늘 부어주고 게시며, 우리로 하여금 직접 그 사랑을 체험케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주의 사랑을 의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롬 5:5-6)에서도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 피스튜오의 셋째 의미는, “전적으로 맡긴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Entrust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1. 먼저는, 우리의 죄 짐을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했습니다.
인간이 감당하기에 가장 불가능한 것이 죄입니다. 사람들은 이 죄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마귀의 공작에 빠지게 되면 깊은 우울증에 있다가 자살도 하게 됩니다. 가롯 유다가 그러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책감을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계속 우리의 죄 짐들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죄인인지라 죄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그 후 성령의 책망에 의해 우리의 양심이 살아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때 성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더욱 깊게 감사하면서 죄를 회개하고 더욱 주를 의지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또한 우리는 우리의 장래를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존재들이요, 내 머리털 한 올까지도 다스릴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를 맡기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3. 또한 우리의 마음과 몸을 모두 맡기시기 바랍니다. 이는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곧, “모든 것을 믿으며”라는 뜻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 욕망과 욕심을 위해 나의 몸과 삶이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 드린 바 되어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몸과 삶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맡김이요, 자녀를 맡김이며, 사업을 맡김이고 나아가 우리의 생명과 죽음 조차도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로 빌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4. 그리고 맡긴다는 의미의 궁극적인 뜻은= “우리의 인생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옵소서” 라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정녕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눅 22:42에서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하신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내 뜻을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구할 때, 바로 그때부터 우리는 -내가 운전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운전해 주시는 안전한 삶,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라는 의미는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될 것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최대의 증거인 역사 속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또한 내 안에 내재하신 성령의 도우심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이며, 내 삶의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의탁하면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것을 믿는”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라는 참된 의미입니다. 이제 우리의 여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믿는” 참된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고:스데반 황 /편집:익선 072816
'설교모음(Korean sermon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혜자의 3대 고발 (잠 30:12-14) (0) | 2016.09.21 |
---|---|
최후 승리를 위해 할 일(슥12:1-5) (0) | 2016.09.21 |
푸른 감람나무처럼 살자! (시 52:8-9) (0) | 2016.08.10 |
여기가 좋사오니? 마태복음17:1~18(마 17:1~8) (0) | 2016.08.10 |
겸손에 대하여(눅 18:9-14) (0) | 2016.08.10 |